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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8 | [문화칼럼]
우리음악에 대한 관심을 국민교육의 차원에서 검토해야
글/천이두 (2004-02-03 10:26:06)
금년 봄에 남원에서 국악 심포지움을 개최한 바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국악이라는 용어 자체를 고쳐야 한다는 견해를 피력한 분이 있었다. 즉 국악이라는 용어는 일본이 근대교육을 실시하면서 만들어 쓰기 시작한 용어로서, 우리 음악까지도 저희들의 음악의 일부인 양으로 포괄해버리려는 저의가 깔려 있는 것인데도 오늘날까지 그대로 쓰고 있으니 이는 마땅히 다른 말로 고쳐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문제에 대하여는 토론자로 참석하였던 나도 소견을 밝힌 바 있었으나 미진한 듯하여 이 자리에서 잠시 이 문제를 짚고 넘어가야 하겠다. 이와 비슷한 문제제기는 꽤 오래전에 문인협회에서 주최한바 「국문학과 국어」라는 주제의 심포지움에서도 제기된 바 있었다. 그 자리에서 어떤 분이 구미 각 국에서는 자기 나라 문학이나 언어를 호칭할 때 미국문학, 프랑스어, 이런 식으로 하는데 우리나라의 경우는 국문학, 국어, 이런 식으로 호칭하고 있다. ‘이는 일본인들이 명치유신 이후 그렇게 호칭하기 시작한 것을 우리가 그대로 쓰고 있기 때문이다’ 라고 주장하였던 것이다. 말하자면 국문학, 국사, 국어가 아니라 한국문학, 한국역사, 한국어 이런 식으로 호칭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국악이라는 용어는 마땅히 고쳐져야 한다는 논지도 대체로 비슷한 맥락에서 제기된 것이라 하겠다. 이러한 견해에 대한 나의 결론부터 말한다면 한국문학, 한국역사, 한국어, 한국음악 이런 식으로 호칭한다고 해도 굳이 나쁠 것은 없으나 국문학, 국어, 국악 하는 식으로 호칭한다 해도 우리의 고유한 어법에서 조금도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갑오경장 이후의 우리의 근대화 과정자체가 일본제국주의의 한국침략의 과정과 병행되어 왔었던 것이 사실이고 우리의 신교육이라는 것도 일제의 식민통치 이데올로기를 기반으로 하고 있었던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한 용어들이 해방 이후에도 상당히 많이 그대로 쓰여 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의미에서 국문학, 국어, 국악 등의 용어 자체에 대한 비판적 점검을 시도한다는 것은 충분히 뜻이 있는 일이라 하겠다. 그러나 국문학, 국어, 국악 하는 용어가 일인들이 쓰기 시작한 것이 사실이기는 하지만 그것들이 우리의 고유한 어법에 근거를 둔 말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일본인들이 이런 용어를 쓰고 안 쓰고의 문제와는 상관없이 그 용어들은 우리의 고유 어법에 완전히 부합한 것이기에 그렇게 쓰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나라”라는 보통명사가 우리어법에서는 흔히 조선 혹은 한국이라는 고유명사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가령 “나랏님”할 때 이는 조선인이 조선의 임금님을 지칭하는 말이요, 훈민정음에 보이는 바“나랏말씀”이라는 말은 조선인이 조선어를 일컫는 말이었다. 국문학, 국어, 국악 하는 말들도 이런 발상의 연장선상에서 연유된 용어로 보아야 할 것이요, 따라서 이 용어 자체를 일제 식민통치와 관련지어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하겠다. 요컨대 국악이래도 좋고 한국음악이래도 좋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거니와 올해를 「국악의 해」라 하였으니 그 호칭에 이의 없이 따르기로 하면서, 그 「국악의 해」를 반절이상 보낸 시점에서 나의 감회를 잠시 피력하고자 한다. 올해를 「국악의 해」로 제정한다고 하여 나로서는 매우 뜻있는 일이라 생각하였었다. 국악의 보급, 진작을 위하여 획기적인 계기가 될 수 있으리라 기대하였었다. 연초에는 아닌 게 아니라 언론에서도 상당한 움직임을 보였었고, 몇몇 출판사에서도 「국악의 해」를 겨냥하여 이에 부합하는 책들을 내기도 하였다. 2월에 들어서는 세종문화회관에서 「국악의 해」선포식과 아울러 화려한 국악의 잔치를 베풀기도 하였다. 더구나 전해에는 『서편제』라는 영화가 유례없는 히트를 하여 국악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감동시켰던 것이다. 『서편제』란 이청준의 소설을 각색한 영화로서, 떠돌이 판소리 광대 일가의 애절한 삶의 이야기를 다룬 것이다. 이 영화는 대통령에 당선된 김영삼씨도, 대통령에 낙선된 김대중씨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여 구경한 것이 신문의 기사에 오를 정도였다. 뒤이어 세계의 유수한 영화상까지 수상하여 더구나 많은 화제를 모았었다. 떠돌이 판소리 광대 일가의 이야기를 더구나 판소리에 곁들여서 진행시킨 영화인데도 이처럼 공전의 히트를 하자 국악에 관계하는 사람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국악 진작에 대한 어떤 가능성을 확신하기도 하였던 것이다. 『서편제』가 저다지 성공을 거두었고 바로 이어서 올해를 「국악의 해」로 제정하였으니 국악의 보급 진작을 위해서 올해에는 아주 아주 획기적인 일이 벌어지게 될 것이다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날을 거듭할수록 「국악의 해」의 열기는 식어가는 듯하더니 근래에는 거의 화제 밖으로 밀려난 느낌이다. 월드컵축구의 열기가 아침저녁의 언론의 뒤덮더니 이어서 김일성의 사망이라는 충격적 사건이 발생, 뒤이어 김정일 체제의 앞날에 대한 궁금증, 이런 일들이 연이어 언론의 전면을 뒤덮고 있다. 40도 가까운 더위에 그렇지 않아도 정신을 가누기 어려운 판에 이런 심각하고 절박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으니 어느 태평세월이라고 국악을 운운하고 있겠는가? 이 혹독한 더위가 시원한 소나기와 더불어 물러가고 소슬한 가을이 다가오면 그때쯤에는 국악에 대한 관심이 좀 되살아날까? 그러나 역시 크게 기대할만한 결과가 일 것 같지는 않다. 사실은 무슨 날이다, 무슨 주간이다, 무슨 해다 하는 식의 일과성(一過性)의 생사나 구호에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기대하는 것부터가 애당초 잘못된 일이다. 또 언론 같은 데서 몇 번 떠들어 댄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우리나라 사람이 우리말을 쓰는 것이 당연한 일임과 같이 우리가 우리 음악을 애호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어야 한데도 그것이 그렇게 되어 있지 않은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는 반드시 바로잡지 않으면 안 될 문제이다. 우리가 우리 음악을 애호할 수 있게 하는 문제, 이는 예술의 차원의 문제이기 이전에 국민교육의 차원에서부터 검토해야 할 문제이다. 우리의 신교육은 이점에서 출발점에서부터 잘못되었던 것이다. 우리 어린이들은 음악에 있어서 만은 남의 음악을 배우며 자라고 있다. 이 잘못은 지금이라도 시급히 고쳐져야 한다. 이 잘못은 진즉부터 지적되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국자들은 아직도 여전히 근본적인 대책을 강구하지 않고 있다. 요즈음의 날씨만큼이나 답답한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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