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2 | [전라도 푸진사투리]
'짬:짬허다'
(2014-02-14 17:21:48)
'짬:짬허다'
짬짬-하다 : 「형」「1」 잠잠하다 의 잘못.
「2」『북』할 말이 없어서 맨송맨송하다.
그는 방에 돌아와서 짬짬하게 앉았다가 옷을 벗고 팔베개로 누웠다.
이 설명으로는 전라도 방언의 ‘짬짬허다’를 이해하기에 부적절하다. ‘짬짬하다’가 첫 번째 설명 ‘잠잠하다’의 잘못이라면 ‘말없이 가만히 있다.’의 뜻에 가까울 텐데 이는 즉, ‘할 말이 없어서 맨송맨송하다’라는 북한 사전의 뜻풀이로 이해하는 편이 더 낫다.
그런데 이 역시 전라도 말의 ‘짬짬하다’와는 그 의미가 사뭇 다르다. 특히 ‘잠잠하다’를 강하게 표현할 때 ‘잠잠:하다’처럼 두 번째 음절을 길게 발음해야 하는데, ‘짬짬하다’를 강하게 표현할 때는 ‘짬:짬하다’로 발음해야 하기 때문에 이 두 단어는 근본적으로 어근분리가 상이한 방식으로 일어난다.
또한 전라남도 방언사전에는 ‘짬짬허다’를 ‘찯 꺼림칙하다. [장성]’이라고 제시되어 있다. 장성은 전북 정읍과 인접한 지역이니까 그 쓰임새가 전라북도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인데 ‘꺼림칙하다’는 뜻으로는 ‘짬짬허다’를 대치하기 어렵다.
나는 주인 없는 집에 들어간 것이 {꺼림칙했다/*짬짬했다.}
아이를 혼자 보낸 것이 {꺼림칙했으나/*짬짬했으나} 어쩔 수 없었다.
밥이 쉰 듯해서 먹기가 {꺼림칙했다./*짬짬했다}
위의 예문에서 ‘꺼림칙하다’ 자리에 ‘짬짬하다’를 대치하기 어려운 것은 ‘꺼림칙하다’와 ‘짬짬하다’의 의미나 기능이 다르다는 사실을 예증하는 셈이다. 이제 ‘짬짬허다’가 사용되고 있는, 한국구비문학대계의 한 예문을 보면서 ‘짬짬하다’의 의미를 가늠해 보기로 하자.
‘앞 노적 저놈을 헐래?’ 뒷문을 열면서 ‘뒷 노적 저놈을 헐래?’ 헐 것이다. 허니 앞 노적 뒷 노적 다 제쳐놓고 그 아랫목에 있는 꿰짝이나 돌라 허라. 이거야. [청중 : 웃음] 이 판자로 짠 나무궤짝. [조사자 : 예, 예 궤짝] 응. ‘그러면 그 짬짬할 것이다. 그러니 짬짬허고 있으면 우리가 거들터이닝게.’ [조사자 : 짬짬하다는 게 뭐예요?] 뭔가 엉거지침허다 이거지. [청중 : 너무나 아까운 마음이 있지] 너무 아깝다 그거지 줄까 말까 이것이 아깝다 그거이지. 그래 인자 그래 약속을 허고 들어갔어.
이 말의 맥락은, “‘앞에 있는 노적을 줄까? 뒤에 있는 노적을 줄까?’하고 묻거든, ‘그것 말고 나무궤짝을 달라’고 해라. 그러면 아마 선뜻 대답을 못하고 주저할 것이다. 그때 우리가 거들어 주겠다.”는 게 요지다. 그러니까 여기서 ‘짬짬하다’의 뜻은 ‘선뜻 대답을 못하고 주저하다’로 이해하는 것이 좋다.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몇 가지 예문을 더 보기로 하자.
① 우리는 천하(天下)에 없는 일이라도 들을 튼게로(들을 테니까) 말씀만 허라고 말여. 그런게 짬짬허고 안 히여.
② 그 한 마리를 잡아 가지고 후딱 던져 주면서, "당신 오늘 바칠 놈이나 바치야 할 것 아니냐?" 허면서 갖다 주라는 것이여, 그러고서. "가시오." 그래놓고는, 짬짬하고 있으닝게
③ 나는 암 것도 가져갈 것도 없고, 저 책상 우에 베루나 하나 저 주시면 소원입니다.
용왕이 짬짬햐. 짬짬하더니, 내 아들이 은혜를 입었응개, 안 줄 수 있냐.
예문 ①의 ‘짬짬허고 안 히여’ ②의 ‘짬짬허고 있으닝게’ ③의 ‘용왕이 짬짬햐, 짬짬하더니’ 모두에서 ‘짬짬하다’는 ‘선뜻 말을 하지 못하고 주저하다’는 상태를 가리키고 있다. 물론 그런 상태가 되는 까닭은 내키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짬짬하다’의 의미는 ‘내키지 않아 선뜻 대답이나 행동을 하지 못하고 주저하고 있는 상태’라고 보면 적당하다.
‘짬짬하다’가 ‘잠잠하다’ 즉 ‘말없이 가만히 있는 상태’에서 출발했을지라도 전라도에서 이 말은 입장이 난처해진 상황으로 한정되어 사용되면서 새로운 의미로 다시 태어난 셈이다. 어쩌면 이 말 속에 입장 곤란한 처지에 놓여 있었을 수많은 전라도 사람들의 ‘짬:짬해’ 하는 모습들이 배어 있는 셈이다. 그러니 ‘짬:짬하다’는 말 만들어낸 까닭도 ‘짬짬해 하는 심리’ 즉, 쉽게 거절하지 못하는 전라도 사람들의 심리 상태와 그 행동 양식이 반영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