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복이’와 ‘영어공부 절대로 하지마라’
남형두 | 연세대 법대 교수 | hdn@yonsei.ac.kr
1958년에 문단에 등단한 소설가 A(원고)는 1977년 ‘불타는 빙벽’이라는 제하의 단편소설을 출판하였다. 그후 1985년에 문단에 등단한 소설가 B(피고)도 같은 제호로 2003년에 장편소설을 창작하여 발표하자, A는 B를 상대로 위 소설의 제호에 관한 저작권이 자신에게 있다는 이유로 B의 장편소설 판매를 중단하라는 소송을 제기하였다.
이 소송의 쟁점은 책의 제호(題號)가 저작권 보호대상이 되는가에 있다. A는 비록 이 제호가 ‘불타는’과 ‘빙벽’이라는 2개의 단어만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이들은 결합이 불가능하고 모순관계에 있는 조합으로 누구도 쉽게 생각하지 못하는 원고만의 독창성과 문학적 개성이 집약된 것이고, 작품내용 전체를 집약적으로 나타내는 독창성 있는 창작물로서 ‘저작물’에 해당하므로, 자신의 허락없이 제호를 사용한 B는 저작권침해의 위법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하여 B는 서적의 제호는 저작물로 보호되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였다. B의 주장은 종래 대법원판례와 일치하였다. 즉 어문저작물인 서적 중 제호 자체는 저작물의 표지에 불과하고 독립된 사상, 감정의 창작적 표현이라고 보기 어려워 저작물로서 보호받을 수 없다는 것이 그간 대법원판례의 일관된 입장이었다.
대법원이 과거 ‘또복이’ 사건에서 ‘또복이’라는 제호에 저작물성이 없다는 판결(1977. 7. 12. 선고 77다90 판결)을 선고한 이래, 하급심 법원은 ‘애마부인’(서울고등법원 1991. 9. 5.자 91라79 결정),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서울지방법원 1990. 9. 20. 선고 89가합62247 판결) 등의 사건에서 제호의 저작물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저작물의 제호라는 이유로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은 반드시 논리필연의 관계에 있는 것은 아니나, 간혹 우리 법원은 제호의 저작물성이 있는지에 대하여 충분히 따져보지도 않은 채 위 대법원 사건(또복이)을 답습하여 제호는 저작물성이 없다고 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또복이’의 경우 단어 하나만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자체로도 창작성 있는 어문저작물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든가 ‘영어공부 절대로 하지 마라’와 같은 제목은 일종의 반어를 사용한 강조적 수사법으로서 무용극 또는 서적의 제목으로서 충분히 창작성이 있다고 보여 진다. 그런데, 우리 법원은 위 두 제호에 있어서 모두 단지 제호는 저작물의 보호대상이 되기 어렵다는 이유로 저작권 보호대상에서 제외하였다.
일반적으로 제호는 서적 등의 내용을 압축, 요약한 것으로서 서적 등의 품질, 내용과 관계되어 그 자체를 저작권 또는 상표법 등으로 보호하게 되면, 당해 저작권자들은 두텁게 보호받아 좋겠지만 후속 창작자들은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당하는 결과가 초래된다. 예를 들어 기본영어, 민법총칙과 같은 제호는 그 자체로 그 책의 내용과 수준을 짐작케 하는 것으로서 특정인의 독점적 사용을 허용할 수 없음은 당연하다.
그러나, ‘영어공부 절대로 하지 마라’,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와 같은 제목은 그 이전에는 서적 또는 무용극의 제호로 쓰인 적이 없던 것으로서 독창성이 매우 강하다고 할 수 있고, 그 제호만으로는 그 내용을 반드시 쉽게 알 수 없는 면이 있다. 무엇보다 ‘또복이’와 같이 하나의 단어만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고 문장으로 되어 있다는 점에서도 다르다. 영국에서는 일반적으로 제호의 저작물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으나 다만 예외적으로 ‘제호가 충분히 길고 독창적인 노력의 산물인 경우’에는 저작물로서 보호해준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위 ‘불타는 빙벽’ 사건 판결의 다음과 같은 결론은 서적의 제호가 무조건 저작물이 될 수 없다고 본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설사 현대 사회에서 제호가 갖는 사회적, 경제적 중요성 등을 고려하여 제호의 저작물성을 일률적으로 부인하지 않고 제호 중 창작적 사상 또는 감정을 충분히 표현한 것을 선별하여 독립된 저작물로 보호하는 입장에 선다고 하더라도, 완성된 문장의 형태가 아닌 불과 두 개의 단어로만 구성되어 이 사건 제호가 독자적으로 특정의 사상이나 감정 혹은 기타의 정보를 충분히 표현한 것으로 보기 어려우므로, 이 사건 제호가 저작물임을 전제로 하는 원고의 청구는 이유없다.’
이 판결 결론에 의하면 ‘영어공부 절대로 하지 마라’와 같은 제호 또는 그 보다 더 길면서 독창성을 갖춘 제호는 저작물로 보호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그러나 충분히 길지 않으면서도 독창성이 강한, 예컨대 ‘대장금’과 같은 드라마 제목은 보호받을 길이 없는가? 우선 그 독특한 필체는 미술저작물로서 보호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그 드라마내용과 관련해서 주연배우들과 함께 퍼블리시티권의 보호대상이 되는 것은 별론으로 하되, 그 제목 자체가 어문저작물의 대상이 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최근 들어 창작성 있는 제호가 많아지고 있고, 경제적 가치가 높은 제호가 많이 나오고 있다. 제호는 무조건 저작물성이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일정 정도 길이를 갖추고 창작성이 높다고 인정되는 제호의 경우 저작물로 인정받을 날이 멀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 않을 경우 ‘수학공부 절대로 하지 마라’라든지 ‘행복은 부자순이 아니잖아요’와 같은, 누가 봐도 원래 유명했던 제호의 유명세에 편승하려는 것이 분명한 제호의 남발을 막기 어렵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