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발자국이 어지럽지 않길 다만 바라며'
이병희 | 전주 남초등학교 영어교사
‘그리고 겨울일세. 지리산과 모악산에도, 석모도에도 첫눈을 받았고 우리들의 발자국은 어지럽지 않게 찍히기를 다만 바라며......’ 이 말은 세 번째 삼인전을 초대하는 엽서에 씌여진 문구이자 전시장 안내판에 있던 글이다.
하지만 바람은 어디까지나 다만 바람일 뿐. 인생 여정이 어찌 어지럽지 않을 수 있겠으며 어지럽지 않은 인생길을 걸어온 들 그 무슨 의미가 있으리요! 한국화가, 아니 소나무화가로 우리에게 더욱 친근한 오광해 화백이 인생의 그러함을 모르는 바가 아닐 터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표현을 한 것은 서로의 일상사를 늘 염려하고 격려하는 차원에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때맞춰 찾아온 감기 몸살 덕에 화려한(?) 전시 오프닝에 참석하지 못했던 죄로, 며칠간 전시장에서 그들과 시간을 함께 했던 필자는 차분하게 세 사람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귀한 기회를 갖게 되었다. 2002년 전주 얼화랑에서 첫 번째 전시회를 갖고 이년 후 서울 팔판동에 있는 이오스 갤러리에서 뭉친 후 이번이 세 번째의 만남이다. 어찌보면 필자는 이들 전시회의 연결고리를 통해 세 사람과 깊다면 깊은 인연들을 맺어온 것 같다.
지리산의 정기를 입은 박 시인의 작품은 한 마디로 씸플하다. 그리고 자신의 삶처럼 친환경적이다. 자연을 소재로 밝고 경쾌하게 붓을 움직인 자태가 역력하다. 그의 초기 시집에 담겼던 글들이 무거웠고 어두웠던 반면 지금의 그는 무척 밝고 가볍다. 작품의 크기도 작다. 3-4호 짜리 소품들을 소담스레 전시장에 걸었다. 마치 자신의 산문집 ‘작고 가벼워질 때까지’를 연상 시키듯…….
그의 집은 경남 하동군 악양면 동매리에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매화를 그린 작품들이 몇 점 눈에 들어온다. 전시회가 끝나고 우연히 들린 그의 집 앞 마당에는 나지막하게 심어놓은 홍매화가 한 그루 있었다. 추운 겨울에도 움이 트고 결국에는 꽃망울을 터뜨려 자신의 아름다움과 당당함을 드러내는 매화 한 송이! 박 시인의 글과 그림이 자신의 삶과 조화를 이루어 보는 이들로 미소를 자아내게 한다.
이어서 석모도의 푸른 작가 오 화백의 솔 그림들이 등장한다. 다양한 크기, 다양한 모습의 소나무들이 자신들만의 자태를 뽐낸다. 한 때, 소나무만을 고집했던 그에게 어떤 해프닝이 일어나 심경의 변화를 일으켰는지 몰라도 벽에 걸린 작품 가운데 반 정도는 제법 색감 있는 나무와 꽃들이었다.
“좋잖아요. 소나무만 나오는 것보다……. 또 흑백 칼라만 보다가 울긋불긋한 것도 맛깔스럽지 않아요?” 자신의 변화를 정당화하려는 궁색(?)한 변명인 줄은 알지만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그래, 인생을 살아가면서 다양성을 빼면 또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변화는 성장이다.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오 화백의 손을 들어주기로 했다.
그 동안 그가 그린 그림의 모델이 되어주었던 소나무들이 서 있는 곳을 필자와 함께 찾았을 때 이런 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소나무도 영혼이 있어요. 제대로 영혼이 깃든 소나무를 만나는 것이 저의 최고의 기쁨이지요.” 소나무에 깃드는 영혼을 볼 줄 아는 영안을 가진 작가. 이것이 오 화백의 매력이고 힘이다.
임택준 화백은 세 사람 중 유일하게 전주를 지키고 있다. 그는 서양화가이면서 또한 퍼포먼스 작가이기도 하다. 다른 두 사람에 비해 도시 냄새가 묻어 나오고 도시적인 생활의 발견들이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된다. ‘새벽 고양이’나 ‘그날 밤’ 등 대부분의 작품 배경이 도시에서 일어나는 삶의 단상들을 그리고 있다.
그는 또한 그룹 활동도 다양하게 하고 있다. 전주 및 도내 선후배들과 어울려 설치 미술전을 기획하기도 하고 타 지방의 작가들과 더불어 퍼포먼스 활동도 활발하게 하고 있다. 그런 반면에 그의 작품에서는 그만이 갖고 있는 도심 속의 고독한 내면을 표출하고 있고 혼돈과 방황으로 점철된 삶의 질곡을 상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전시회를 찾아오는 관객들의 모습도 세 사람의 다양함만큼 가지각색이었다. 강화와 전주 그리고 하동을 잇는 커넥션의 모양처럼 전시장에 나타나는 사람들 역시 각 처에서 몰려왔다고 볼 수 있다. 방명록에 기재된 몇몇 사람들을 들추어 보면 강원도 원주에서, 경북 청송에서, 서울에서, 또 경남 통영에서, 전남 광양에서 등 가히 전국구이다.
엄마와 함께 전시회장을 찾은 한 여자 어린이가 있었다. 살짝 불러 어느 작품이 제일 마음에 드는지 물어 봤더니 주저 없이 한 쪽 벽 끝에 걸려있는 조그마한 고양이 한 마리를 가리킨다. 역시 도시의 아이다운 선택이다. 또한 전시장을 찾은 전주의 서양화가인 L작가도 임 화백의 ‘그날 밤’ 앞에서 넋을 잃는다. 그림과 사람의 조합이 아름답다. 그림을 사랑해서 그림을 그린 사람도 아름답고 그림을 사랑해서 그림을 보러 온 사람 역시 아름답다.
문자 그대로 삼인 삼색전이었다. 도무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세 사람의 하나 됨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지천명의 나이답게 사랑이 무엇인지 인생이 무엇인지를 다른 이들에게 자신들의 삶과 작품을 통해 전할 수 있을 만큼 진솔하게 변화된 모습들이었다. 그 진솔함이 좋았다. 이들의 오랜 세월을 깔고 이어온 사랑과 우정이 좋았다.
좋은 것은 계속 이어져야 한다. 누구의 말처럼 작가들은 아무것도 계산하면 안 된다고 한다. 작가들이 계산하기 시작하면 이미 그 작품은 물 건너간 것이라고 한다. 그들이 굳이 계산해야 한다면 순수한 열정뿐이다. 작품에 대한 대가는 그 작품 자체이다. 그리고 그 작품을 만들 수 있도록 재능을 부여한 신에게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 네 번째 열리게 될 이들만의 비엔날레가 벌써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