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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2 | [문화현장]
학인당, 판소리 다시 울린다.
(2014-02-14 16:55:18)


학인당, 판소리 다시 울린다.
최정학 기자


판소리가 전성기를 이뤘던 조선말기에서 일제시대 초기까지는 우리지역 판소리 공연의 중심지로, 해방공간에서는 백범 김구 선생 등 정부요인의 숙소로, 6.25전쟁 때는 공산당도당위원장이 점거해 사용했던 곳으로, 지난 100년 역사의 부침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학인당(전라북도 민속자료 제8호)이 건축 백주년을 앞두고 시민들에게 전면 공개된다.

1908년 지어진 학인당은 당시 전주의 부유층들이 모여 살던 한옥마을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대저택이었다. 현재는 520평 대지에 사랑채, 안채, 별당채, 뒷채, 헛간, 쌀광 등 일곱 채의 건물만이 남아 있지만, 건축될 당시엔 대지 2000평에 사랑채의 건평만 120평에 이르는 아흔아홉 칸짜리 대저택이었다. 공사기간만 해도 꼬박 3년이 걸렸고, 당시 쌀 4천섬이 들어간 대공사였다. 특히, 밖에서 보면 단층이지만 내부구조는 2층인 사랑채는 규모도 규모지만 독특한 구조를 갖고 있어 대규모 판소리 공연장으로서의 기능을 담당했다.

학인당은 조선왕조 붕괴이후 민간주택에 궁궐의 건축양식이 적용된 대표적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전통을 따르되 당시엔 굉장히 진보적인 양식을 적용해, 우리 한옥의 진화 과정를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로 학계의 주목을 받아왔다. 때문에 지금까지 학인당에는 한옥연구자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학인당도 세월의 흐름을 거부할 수는 없었다. 대저택을 유지하는 것이 어려워 2000평 아흔아홉 칸의 대저택은 조금씩 줄기 시작했고, 현재 남아있는 일곱 채의 한옥도 시급히 개보수를 해야 할 상황이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학인당을 지켜낼 수 있었던 것은, 소유를 수원백씨 인제공파 전주문중으로 돌려놓으면서까지 집을 지키기 위해 애썼던 고 백남혁 씨의 유지가 큰 힘이 되었다.  

현재 전주시는 학인당 건축 100주년을 앞두고 대대적인 개보수를 추진하고 있다. 학인당을 관리하고 있는 종손 백정우 씨는 “개보수가 끝나는 대로 판소리 공연이나 숙박 등 우리 한옥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가장 한국적인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이미, 사랑채로 쓰이던 한옥은 개보수를 마치고 ‘학인당 선다원 전통찻집’으로 문을 열었다. 선다원의 운영은 백정우 씨의 처, 서화순 씨가 맡았다. 선다원은 앞으로 차문화체험과 선체험을 중심으로 운영된다.

서 씨는 “누구든지 와서 편하게 쉬었다가는 곳이 되었으면 좋겠다”며, “단지 형식적으로 차만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서로를 배려하는 다도의 기본 정신과 예절교육을 시킬 수 있는 장소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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