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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2 | [최승범 시인의 풍미기행]
순대전골의 걸쭉한 맛
(2014-02-14 16:51:30)

순대전골의 걸쭉한 맛

‘순대 채우다’는 말이 있다. 농 좋아하고 입담 좋은 친구들이 때로 쓰는 속말이다. 여기서의 순대는 장(腸)을 일컫는다.

음식으로서의 순대는 가축의 창자 속에 파·미나리·숙주나물·당면·무·두부·배추김치 등을 섞어 버무린 소를 넣어 삶거나 쪄낸 먹거리를 말한다. 가축의 창자라 하였으나 일반적으로 돼지의 창자를 사용하였다.

순대의 어원이나 그 조리법이 언제부터였는가는 살펴보지 못하였다. 그러나 순대의 종류는 여러 가지가 있었던 것을 볼 수 있다. 돼지창자가 아닌 쇠창자·염소창자·개창자를 이용한 순대도 있고, 민어의 부레나 오징어·동태의 몸통으로 만든 순대도 있었다.

지난날엔 돼지순대를 광주리에 담아 이고 마을을 찾아드는 장수도 볼 수 있었다. 그 광주리 안에는 이른바 피순대 뿐 아니라 삶아낸 돼지머리나 내장의 부위별 고기도 담겨 있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어느 부위를 사거나, 다른 부위도 몇 점씩 아울러 주는 장수의 인심이었다. 어려서는 피순대 보다도 허파나 간과 같은 다른 부위를 삶아낸 것에 입맛이 당겼다. 그러나 지금은 순대집에서 허파나 간은 사용하지 않는다. 양돈사료에 항생제가 문제인 것 같다.

순대전골이란 이름의 순대 음식을 먹어본 것은 순창(淳昌)에서였다. 그동안은 기껏 술안주로 순대찜이나 겨울날의 점심으로 순댓국을 먹어 왔을 뿐이다. 그런데 하루는
― “우리 순대전골이나 먹으러 갈까”
박남재 화백의 제의였다. 처음 듣는 순대전골이란 말에 우선 호기심부터 일었다. 마침 주말의 오후인지라 박화백의 차로 한 시간 남을 달려 이른 곳은 순창읍 남계리의 5일장터였다.
목조 조립식의 단층 건물에 순대집들이 모여 있다. 그 중의 한 집, 박화백이 단골로 다닌다는 「연다라 순대집」(주인 박옥자, 전화 063-653-3432)에 들었다. 석양배(夕陽盃)를 나누기에도 알맞은 시간이었다. 박화백의 전화연락으로 몇 친구들이 모였다. 이대식, 김성호, 최병호 씨로, 나와도 동창의 인연이 있는 이 고장 유지들이다.
곧 5인 식탁이 차려지고, 소주잔과 더불어 전골냄비가 나왔다. 가스버너에 놓여진 전골냄비는 주방에서 애벌끓이를 한 것이어서 식탁 위에서도 보글보글 끓고 있다. 끓는 소리도 끓는 품도 입맛을 다시게 한다.

“자, 건배”

술잔이 돌기 시작했고, 숟가락 젓가락이 연방 전골냄비를 들랑거린다.
전골냄비에는 피순대 뿐이 아니다. 돼지의 여러 부위 내장들이 아우러져있다. 염통·오소리감투·꼽슬이·새낏보·방석창·막창 등이다. 국물은 돼지뼈를 우려낸 것으로 고추장·된장 풀이에 양념도 푸짐하다. 표고버섯·채소·은행·두부·당면도 입안에 들어 아우러진 맛을 돋운다.  

돼지고기엔 새우젓이라거니와 돼지순대를 먹는데도 새우젓이 어울린다. 이집에서는 새우젓접시와 양념소금접시를 따로 내놓았다. 입맛에 맞추어 먹으라는 마음씀이다. 새우젓도 육젓이다. 피순대에 얹어 먹거나, 그 젓국에 피순대를 찍어 먹자면 짠맛보다도 단맛이다. 염통이나 오소리감투, 막창, 꼽슬이 같은 내장은 양념소금에 찍어 먹어도 짠맛 아닌 단맛이다.

이날의 소주 또한 단맛이었다. 평소의 배는 마신 것 같은데 끝잔 놓기가 아쉬웠다. 걸쭉한 순대전골의 맛의 작용이 주정도(酒精度)를 낮추었던 것인가.
「연다라 순대집」의 순대전골 맛은 쉽사리 잊혀질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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