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 생각이면 먼저 떠오르는 시가 있다.
하인파신필(何人把新筆)
을자사강파(乙字寫江波)
‘그 누가 새로운 붓을 잡아, 새을(乙)자를 강물 위에 그렸는가’의 뜻이 담겨 있다. 고려의 천재시인 정지상(鄭知常)이 일곱 살 때, 대동강의 오리를 보고 지은 시라고 한다.
저때 정지상이 읊은 오리는 집오리였을까, 물오리였을까. 다분히 야생(野生)의 물오리였으리라는 생각이다. 오늘날의 집오리도 원래는 야생인 청둥오리를 중국에서 가금화(家禽化)한 것으로 전한다. 그래, ‘오리’하면 세계적으로 북경오리(Peking duck)를 꼽지 않은가.
나는 지난 세기의 90년대 초 두 차례 북경 여행을 한 바 있다. 그러나 화덕에서 굽는다는 ‘북경 오리구이’의 맛을 즐기지 못하고 말았다. 단독 여행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최근의 외신에 의하면 북경의 오리구이 요리도 ‘패스트푸드’화 하리라니, 영영 맛볼 기회를 잃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어린 시절 고향 마을에는 오리를 기르는 집이 있었다. 그러나 오리는 일반적인 식용보다도 약용으로 기르는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실제로 오리알이나 오리의 피는 풍(風)을 다스리는 데에 약효가 있다는 말을 어른들로부터 듣기도 하였다. 그런가 하면, ‘임신하여 오리고기와 알을 먹으면 아기를 거꾸로 낳는다’는 속설도 있었다.
이러한 민신의 과학적인 근거를 살핀 바는 없다. 이래저래, 나는 중년에 이르기까지 오리고기를 먹어본 일이 없었다. 그 후 가공업체에서 나온 오리고기로스(roast)가 식당가에 널리 퍼지게 되면서부터 술자리에서 이 고기를 맛보게 되었다. 불판에서 지글거리는 오리고기를 보며
? 비리지 않을까.
의 생각이었으나 한 점 기름소금에 찍어 먹어보자, 생각밖에 비린기가 없었다. 육질이 연할 뿐 아니라 맛 또한 입안에 안긴다. 이로부터 술안주로 자주 즐기게 되었다. 이제는 로스뿐이 아니라 여러 가지 조리법에 의한 오리고기 전문 식당도 많아서 점심식사로 즐기게도 되었다.
최근에 알게 된 오리전문점 「오청」(전주시 완산구 서신동 967-1, 전화 063-276-5252)의 식단은 다양하다. 상차림에도 백두·한라·금강의 코스가 있고, 훈제·로스·탕·주물럭의 일품을 위한 것도 있다. 네 사람이 한 상에서 즐기자면 코스로 나오는 식단을 택해도 식대가 과한 것은 아니다.
하루는 진기풍 어른을 모시고 전북도시가스 이영석 회장, 전북체육연구소 이인철 소장, 전라북도교육연구원장을 역임한 백종의 선생과 백두코스(68,000원)를 즐긴 바 있다. 연달아 나오는 오리 음식을 한 시간여에 걸쳐 환담을 나누며 즐길 수 있었다.
「오청」의 김종석 대표는 상호 설명과 더불어 상차림에 오른 청국장 자랑이다. 「오청」의 상호는 ‘오리’와 ‘청국장’의 머리글자를 따서 지은 것이라 하며, 자랑인 청국장은 ‘전북 맛 장인 409’인 정화자 여사의 솜씨라는 것이었다. 아닌게 아니라, 오리고기에 청국장을 아울러 즐기자니, 고기 맛도 청국장 맛도 입안에 쩍쩍 달라붙는다.
이것은 내 입맛 만이 아니었다. 다시 찾을 만한 집이다.
다음엔 4인 일행으로 오리훈제(3만원), 오리로스(2만8천원), 오리주물럭(3만원)도 맛보았으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