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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 | [제주학의 사례를 통해서 본 전주학의 과제]
전주를 전주답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일
(2014-02-14 16:42:50)

전주를 전주답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일
김 창 민ㅣ전주대학교 교수



지역학과 전주학
근래 들어 한국에서 지역학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이는 지방자치제가 실시되면서 지역의 발전을 국가적 발전과 독립적으로 인식하게 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필요성에 논의의 풍성함에 비해 구체적으로 지역학을 어떻게 발전시켜야 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부족하다. 이미 서울학, 부산학, 진도학, 기전학 등에 대한 논의가 있었지만 그런 지역학 연구가 체계적으로 진행되고 있지는 못한 실정이다.
또한 지역학을 어떻게 인식하는가의 문제도 있다. 지역학을 학문(discipline)으로 볼 수 있는가의 문제는 지역학의 성립 자체에 대한 회의로 이어질 수도 있다. 또한 주체를 학자로 볼 것인가 아니면 시민을 포함시킬 것인가의 문제, 지역학의 기능성과 학문 성격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의 문제 등에서 다양한 관점이 있고 아직까지 합의가 이루어진 것도 아니다. 이런 측면은 전주학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전주학이 전주의 발전에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는 있지만 구체적으로 전주학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아직 일천하다. 여기서는 가장 체계적으로 지역학을 해 오고 있는 제주학을 살펴봄으로써 전주학 발전의 과제와 방법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제주학과 제주학회
제주학회는 1978년 제주도연구회로 설립되어 이미 약 30년의 연륜을 가지고 있다. 설립 당시 제주도 연구회는 인문학자 중심이었다. 분과 학문 기준으로 보면 민속학, 국문학, 인류학, 사회학 전공자가 중심이 되었다. 그러나 제주도연구회 내부에서 제주도에 대한 통합적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인문학 연구뿐 아니라 사회와 자연에 대한 연구가 필수적이라는 인식이 공감되어 그 외연이 자연과학 분야로 확장되었다. 회원 구성비로 보면 300여명의 회원 중 인문, 사회, 자연이 각 1/3 정도로 균형을 갖추고 있다. 학회의 운영에서도 회장은 인문과 사회, 그리고 자연 분야에서 번갈아가면서 맡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 결과 제주학 연구는 인문과 자연 그리고 사회가 어우러진 통합적 연구가 가능하게 되었다. 지역학은 어느 한 분과 학문이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학문 분야가 통합적으로 참여하여야 한다. 그렇게 할 때 비로소 지역의 발전 방안을 학문적으로 지원하고 현안 문제 해결을 위한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다는 지역학의 목적이 달성될 수 있다.

회원구성과 역할
제주학회의 회원은 학자와 일반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반인은 관광업 종사자, 농민, 요식업 종사자 등 제주도에서 사업을 하는 실무 종사자들이 주로 참가하고 있으며 공무원들도 다소 회원으로 가입하고 있다. 이들은 학회의 학술대회에도 참가하여 현장의 관점에서 질문을 하기도 하고 토론에 참가하기도 한다. 일반인이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점은 제주학회가 지역밀착형 학술 단체를 지향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연구자들은 지역 주민들의 이해와 현안에 관심을 가지게 되며 지역 주민들은 연구자들의 연구 성과를 후원하는 구도를 가지게 된다. 제주학회가 지역밀착형 학술단체를 지향하고 있음은 학회가 수행한 ‘법정사 항일운동 연구’에서 잘 나타난다. 서귀포 지역의 항일운동이었던 법정사 항일운동은 그 가치가 인정되지 못하여 항일 유적지로 지정되지 못하고 있었다. 서귀포시는 이 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규명하기 위하여 제주학회에 연구 의뢰를 하였고, 제주학회는 연구진을 구성하여 이 주제를 연구하였다. 연구 결과 법정사 항일운동은 기미년 만세운동 이전에 일어난 항일운동으로서 3.1운동의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하였다는 점이 밝혀졌고, 법정사는 항일운동 유족지로 지정되어 성역화하기로 결정되었다. 행정기관과 지역 사회, 지역 종교계, 학회가 협력한 결과 이 연구는 지역 사회에 역사적, 문화적 자원을 발굴하고 지역 주민들에게 자부심을 제고하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제주학회의 학자 회원은 제주에서 학술 활동을 하는 사람보다 오히려 육지에서 학술 활동을 하는 사람이 더 많다. 이 중에는 제주 출신도 있지만 제주 출신이 아닌 사람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이는 제주학회가 제주도라는 지역적 범위를 벗어나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제주학회는 제주도 사람들 그리고 제주도에서 활동하는 연구자들만의 학회가 아니라는 점은 운영 규정에서도 나타난다. 즉, 제주학회의 회장은 제주와 육지에서 번갈아 맡도록 관례화 되어 있다. 이는 학회의 성장과 발전에 육지에서 연구하는 학자나 제주도에서 연구하는 학자가 함께 책임과 의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역학은 지역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 지역의 정체성과 가치에 의미를 두는 모든 사람이 지역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열려진 구조를 갖는 것이 지역학의 발전에 필수적이다.

연구 경향과 주제
제주학회의 연구 경향을 보면 초창기에는 제주학 연구의 내용을 모색하는 기획 주제들이 많이 나타났다. ‘제주도의 보존과 개발(1985년)’, ‘제주도사의 재조명(1986년)’,  ‘제주 무속의 전통과 변화(1989년)’, ‘제주 산업의 현황과 문제(1990년)’, ‘제주도의 육상 및 해양 자원(1991년)’, ‘제주도의 인문 환경과 자연 환경(1992년)’ 등이 기획 주제들이었다. 초창기에 주로 만들어진 이런 주제들은 개별 연구자들의 연구 성과를 한 자리에 모아 정리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즉, 본격적인 학제적 연구나 통합학문적 연구는 하지 못하였으나 개별 연구자들이 가진 주제들을 한 자리에 모아 상호 시너지를 얻을 수 있는 구조였다. 이를 바탕으로 1990년대 이후에는 학제적 연구와 새로운 방법론을 모색하는 시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제주학의 과제와 방법(1997년, 1998년)’, ‘법정사 항일운동 연구(2002년, 2004년)’, ‘제주도의 장수 현황(2003년)’, ‘사계리 호적중초 분석(2003년)’ 등은 학제간 공동 연구이자 새로운 제주학 방법론을 모색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기획 연구 주제들과 함께 개별 연구도 많이 있다. 개별 연구자의 연구 성과는 학회지나 전국학술대회를 통해 공유되어 새로운 연구 주제의 개발에도 영향을 주게 되었다.
제주학 연구는 여러 분야에서 이루어지고 연구자의 수도 수 백 명을 넘고 있지만 인문학 또는 사회과학자들이 가지는 가장 중요한 주제는 제주문화의 정체성 규명이라고 할 수 있다. 제주 문화의 특성이 무엇이며 한국 문화 또는 일본 문화와 구분될 수 있는 특징은 무엇인지가 오랜 기간 동안 여러 학자들에 의해 논의되었다. 이 과정에서 제주의 문학, 역사, 종교, 사회관계 등이 재조명되었으며 학자간 논쟁도 나타났다. 학술적 논쟁은 후속 연구를 촉진하는 계기가 되어 제주학 연구가 지속적으로 활성화 될 수 있었던 셈이다.
제주학 연구의 또 다른 특징은 연구의 범위를 제주도 뿐 아니라 재일교포 사회에까지 확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제주 출신 재일교포는 약 30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이들은 일본에서 마을 단위의 친목회를 조직하고 있다. 일제 시대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제주 출신 재일교포 사회는 마을 개발 사업에 많은 기여를 하기도 하였으며 정서적으로 제주에 많은 애착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제주학 연구에서 이러한 재일 교포는 중요한 주제로 다루어지고 있다.  이 사실은 지역학에서 지역의 범위가 중요하게 논의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역은 현재의 물리적 공간만을 의미하지는 않으며 역사적, 문화적으로도 공간 개념이 규정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전주학에 주는 함의
제주학회의 발전 과정과 운영 방법은 전주학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선 전주학은 전주 사람들의 전유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전주학이 전주사람들 그리고 전주 사회의 전유물이 되면 전주학은 애향 활동 이상이 되기 어려운 구조를 가지게 될 것이다. 전주학의 지향이 전주를 중심으로 보편적인 사회 원리와 지역 사회의 발전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라면 이 논의 과정에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전주학을 통하여 전주는 다른 지역 그리고 세계와 소통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세계화되고 있는 시대에 전주는 전주로서만 존재할 수 없고 외부에 대하여 폐쇄적인 구도를 가지고 있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전주학의 범위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 전주학의 공간적 범위를 현재의 행정 구역에 한정시키는 것은 전주를 지리적인 관점에서만 인식하는 태도다. 전주는 역사적으로 호남의 대표성을 지니고 있으며 문화적으로는 전통을 상징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전주학의 범위는 호남 문화 연구, 한국 전통문화 연구, 종교운동 연구 등으로 확장될 수 있다. 전주를 알면 후백제를 알 수 있고, 전주를 보면 한국 전통문화를 이해할 수 있고, 전주를 통해 호남 문화를 파악할 수 있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이러한 열린 관점이 전주학의 범위를 논의하는 방향이 되어야 한다. 전주학의 범위를 행정구역으로서 전주시의 경계 안에서만 일어난 사건이나 문화에 국한시키는 것은 전주가 가지는 총체성과 보편성 그리고 한국 사회에서 전주가 가지는 역사성과 상징성을 극단적으로 제한하는 것이 된다.
전주학의 태동과 발전을 기대한다면 현 단계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분과 학문의 관점에서 연구하는 개별 연구자들을 지원하는 일과 이들을 조직화하는 일이다. 개별 연구자들의 연구가 활성화되어야만 전주학이 시작될 수 있으며 이런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연구회가 조직되어야만 전주 연구의 성과는 소통될 수 있는 최소한의 기반을 마련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개별 연구자 수준의 연구가 활성화 되고 그러한 연구 성과가 집단적인 논의로 나아가는 것이 전주학의 태동에 필수적인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연구자가 조직되면 학제적 연구나 통합적 연구의 기반도 마련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연구자를 조직화 하는 것과 함께 전주학의 토대가 될 수 있는 논의의 주제를 개발하는 것도 중요하다. 전주학은 전주의 현재와 미래에 초점을 두어야 하기 때문에 이러한 논의의 주제들은 전주의 현재 및 미래의 과제들과 적합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전주의 역사적 정체성과 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논의는 이러한 논의의 주제들에 포함될 수 있다. 전주를 전주답게 하는 문화적, 역사적, 상징적 자원들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것이 전주학의 기초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김창민/ 서울대학교에서 인류학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목포대학교에서 연구교수로 일하다가, 현재는 전주대학교 교양학부 교수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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