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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 | [ 남형두 변호사의 저작권길라잡이]
만날 수밖에 없는 내부의 적
(2014-02-14 16:37:23)

남형두ㅣ연세대 법대 교수 | hdn@yonsei.ac.kr

우리나라는 과거로부터 타인의 지적 창작물에 대하여 공유하고자 하는 인식이 강했고 그러한 인식은 일종의 관행으로 존재해 왔는데, 이러한 관행으로 인하여 국가 간 지적창작물의 거래에 따라 지적창작물을 재산권으로 두텁게 보호하고 있는 나라들과 잦은 충돌을 빚고 있다. 한편, 지난 20여 년 사이 우리나라는 지적재산권 침해국가라는 오명에서 한류콘텐츠 수출국가라는 지위로 급변해왔다.
이와 같은 지위변화의 근본원인은 산업의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 이미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세계의 공장이라 할 수 있는 중국의 값싼 노동력에 의해 우리나라 제조업 분야는 갈수록 그 경쟁력을 잃고 있다. 반면 지난 10여 년 사이 우리나라의 산업구조는 선진화되어 지식산업과 정보통신산업은 차세대 경제성장의 새로운 엔진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런데 산업구조의 변화에 불구하고 그에 걸맞는 인식의 변화가 뒤따르지 못함으로 인하여 지적재산의 수출/수입 국가 간의 충돌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내부에서도 권리자와 이용자 간의 첨예한 대립을 낳고 있다. 특히 인터넷의 광범위한 보급확산은 이러한 지적재산을 보호하는 것이 과거 종이매체 시대의 낡은 유물이므로,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지적재산권 또는 저작권에 관한 규범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목소리도 있다.1)
최근 몇 년 사이 이와 같은 갈등은 지속적으로 증폭되어 왔는데, 우리나라가 문화를 산업화하고 이를 경제성장의 중요한 요소로 여긴다면 그러한 갈등은 조화롭게 해소되어야 할 것이다. 문화산업이 아무리 발전하고 많은 부를 창출할 기회를 부여한다고 하더라도, 그 근본의 권리성 또는 재산권성에 관하여 회의를 품는 시각이 상존한다면, ―물론 그러한 시각이 지나친 지적재산권 보호를 견제하는 순기능을 발휘할 수 있지만― 문화산업화는 내부의 적을 만날 수밖에 없는데, 이는 침해양산의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세계무역기구(WTO)를 주도하는 미국이 과거 농산물시장 개방이라는 우루과이 라운드 때와 달리 지적재산권을 새로운 의제(Agenda)로 다른 나라에 대하여 세계적 기준(global standard)를 지킬 것을 강력히 요구하는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이미 항공기와 군수산업을 제외한 나머지 제조업분야에 있어서 일본, 중국, 우리나라 등에 시장경쟁력을 잃은 지 오래인 미국에서 그간 농업과 함께 지적재산권 및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해 왔기 때문이다. 여기에 인터넷의 급속한 보급은 지적재산권에 관한한 세계를 미국 주도하에 하나의 시장으로 재편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한류열풍으로 대변되는 우리나라 문화상품은 아시아라고 하는 특정 지역에서 미국 위주의 세계시장 구도를 깨뜨리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 지역에서만은 한류를 앞세운 각종 지적재산권에 있어서 미국과 같은 지위, 즉 공급국가로서의 지위를 갖고 있는 것이다. 결국, 우리나라는 최근 10여 년 사이에 지적재산권에 관한한 ‘수요자적 지위’와 ‘공급자적 지위’를 모두 갖는 이중적 모습을 띠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서 “한류상품을 보호하기 위한 법제화 등 지적재산권 강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한편 이런 주장에 대해 “결과적으로 미국만 좋은 일 시키게 되므로 시기상조”라는 반론도 아울러 나온다.
물론 적극적으로 지적재산권을 보호하다가 미국으로부터 역풍을 맞게 될 가능성이 없지 않으나, 중요한 것은 방향성이다. 지하자원 등 부존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가 살 길은 과거 가공무역을 통한 수출이었다. 그러나 제조업도 인건비 상승으로 인하여 중국과 도저히 경쟁할 수 없게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 경제의 활로는 정부가 향후 경제성장의 새로운 엔진으로 지목하고 있는 지적재산권(IP)과 정보기술(IT) 쪽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이 지적재산권을 우리의 ‘미래산업’으로 보는 이상 이를 적극 보호해야 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당위의 차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안전한 재산권의 확보는 해당분야 산업발전의 원동력 중 하나임이 분명하며, 한류신드롬의 지속을 위한 재산권적 보장이라고 하는 법적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하겠다. 한류를 중심으로 하는 문화의 재산권적 보장의 핵심은 저작권법의 역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른바 문화재산권법2) 이라고 불리는 저작권법이 다루는 저작물은 모두 문화 그 자체이거나 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문화의 산업화에 있어서 저작권법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기존의 저작권법을 연구하는 학자들 또는 저작권분쟁을 해결하는데 종사하는 실무가들은 저작권법이 문화에 관한 재산권법임에도 불구하고, 저작권법을 저작권침해로부터 구제수단 정도로, 다소 소극적으로 이해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한류의 예가 보여주는 바와 같이 저작권법은 이제 더 이상 소극적인 법이라기보다는 문화를 산업화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법임에 틀림없다. 향후 이와 같이 문화산업화의 토대가 되는 저작권법에 대한 보다 적극적이고 전향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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