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와 욕망, 그리고 생태적인 삶 ’ ‘한때“지름신”이라는 단어가 인기 검색어에 올랐다. 마음에 드는 물건을 본 순간 사고 싶은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물품을 구매한다는 의미로‘질렀다’라는 인터넷 은어에서 유래한 말이다. 너도나도 소비를 권하고 칭송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지름신의 유혹에 쉽게 지갑을 연다. 전지현의 몸매로, 이효리의 섹시한 춤으로, 김태희의 청순한 얼굴로 나타나는 지름신에 어찌 무너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쉽게 구입한 상품은 쉽게 버리고 유행이 지났다 싶으면 쓰지 않는다. 소비 지수는 경제 지표가 된다. 경제가 어려워졌다는 호들갑 뒤엔 소비가 줄었다는 아우성이다. 이러다 보니 정부도 경제 활성화를 위해 소비를 권장한다. 근검절약 이라는 전통적 가치가 무너지고 소비가 미덕인 사회가 된 것이다. 하지만 소비 권하는 사회는 많은 부작용을 만든다. 사회적 양극화가 확대되고 고착화되는 현실에서 서민들의 박탈감은 더욱 커졌고 상품에 투영된 소비의 욕망은 삶을 파멸로 몰아가기도 한다. 상품 시장과 원료를 확보하기 위한 치열한 싸움은 국경을 넘고 전쟁을 일으켜 억압과 착취를 낳는다. 쉽게 사고 쉽게 버리고는 소비는 가난한 나라 농부의 눈물과 동남아 어린 소년의 장시간 노동력과 저임금에 기인한 것이다. 민주주의를 억누르는 군사정권의 정권유지비용이나 살상용 무기 구입 자금이 되기도 한다. 환경적인 피해도 무척 크다. 상품 원료의 생산, 제조, 운반 과정에서 많은 화석연료가 사용되고 있으며 물과 토양을 오염시켰으며 이산화탄소 배출로 인해 지구온난화를 불러왔다. 카메라폰, DMB폰의 유혹과 정부의 보조금 허용에 너도나도 핸드폰을 바꾸는 것은 지구상에 4천~6천 마리 밖에 남지 않은 아프리카 고릴라의 생존을 위협한다. 핸드폰 배터리의 원료인 콜탄을 둘러싸고 치열한 내전을 벌이고 있는 곳이 고릴라의 서식지이기 때문이다. 배고픈 광부들과 경작지를 잃은 농민들에게 잡아먹히기도 하고 팔려가기도 한다. 라면에 주로 사용되는 팜유를 얻기 위해 열대 우림을 잘라내고 야자수 농장을 만드는 과정에서 동남아시아에만 서식하는 오랑우탄의 서식지가 훼손되고 있으며 애완 상품으로 밀렵되어 팔려가기도 한다. 더 큰 안타까움은 가난한 약소국의 국민과 사회적인 약자가 대량 소비로 인한 환경 피해에 더 많이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다. 세계 에너지 사용량의 22%를 소비하고 이산화탄소 발생량의 25%를 내뿜는 미국이 입는 피해보다는 전체 대륙을 통틀어 에너지를 2% 밖에 사용하지 않는 아프리카 사람들이 입는 환경 피해가 훨씬 크다. 기후 변화는 아프리카 사막화를 가속화하며 대 가뭄을 불러와 농작물에 피해를 주고, 오염된 식수는 아프리카 주민의 삶을 송두리째 위협하고 있다. 수천 명이 사망한 동남아시아의 산사태나 산불도 열대우림을 훼손하면서 더욱 커졌다. 지상 낙원처럼 아름답고 평안했던 남태평양 투발루라는 작은 섬나라는 해수면 상승으로 가라앉을 위기에 처해있다. 얼마 전부터 국민 전체가 이웃 뉴질랜드와 호주로 이민 수속을 밟고 있다. 이처럼 우리의 거칠 것 없는 소비는 지구를 병들게 하고 있으며, 지구상 어딘가의 가난한 농민의 삶을 더욱 피폐하게 만들고 아이들의 미래를 어둡고 거칠게 할 것이다. 이런 소비사회에 대한 반성을 바탕으로 일상생활 속에서 진보적인 가치와 대안적인 삶을 위한 구체적인 실천 운동이 새로운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노동력의 대가를 정당하게 지불하고 공정한 무역으로 유통하자는 평화의 커피가 화제가 되고 반도덕적인 기업의 상품을 불매하자는 운동이 벌어지기도 한다. 사용한 물건을 기증해 재사용을 유도하는 재활용품 가게나 나눔 장터도 자리를 잡았다. 지난해 말(2006년 11월) 전주 한울생활협동조합에서 조합원 공모 재활용 실천사례 발표회가 있었다. 재활용품은 낡고 군내 날 것 같다는 일반의 선입견과는 달리 작은 탄성을 자아내게 할 정도로 아기자기하고, 예쁘고, 폼나게 멋졌다. 자잘한 알뜰살뜰 살림 지혜가 담겨있는 아이디어가 담긴 재치파, 버려진 가구를 멋진 장식장이나 유용한 소품으로 만든 실력파, 도시재건축 주택에서 쓸만한 것을 다 가져다 시골집에서 재사용하는 실속파의 손길로 땅에 묻히거나 태워질 물건들이 유용한 생활용품으로 다시 태어났다. 땅속에 버려지면 족히 200년~500년 동안 흙과 지하수를 오염시키고, 소각장에서 태우면 다이옥신을 비롯한 유해가스를 내뿜을 스티로폼 박스와 추억의 5촉 짜리 전구는 청국장 제조기가 되었다. 엉덩이를 붙이는 좌변기 부분과 페인트 통으로 변기를 만들고, 페트병을 잘라 쌀겨용 삽을 만드니 어엿한 첨단 생태화장실이 탄생했다. 다듬고 난 채소, 과일 껍질은 복합효소를 만들어 양념으로 사용하고 파뿌리와 귤껍질은 말렸다가 감기치료제로 사용한다. 양파 껍질은 천연염색 염료로 사용한다. 녹차 찌꺼기는 탈취제로, 밀전병 재료로, 김치를 담글 때도 넣으면 된다. 그대로 놔두면 음식물쓰레기다. 흔하게 굴러다니는 비닐은 한데 모아 페트병에 넣은 후 티슈를 뽑듯 한 장씩 빼 쓴다. 생태적인 삶은 어딘가 불편하다. 생활의 편리함과 욕망을 채우려는 하루 생활에는 1kg 남짓한 생활쓰레기와 250g 정도의 음식물쓰레기와 8kg 정도의 이산화탄소가 따라 붙는다. 하지만 생태적이고 대안적인 삶에는 불편함 대신 몸의 건강과 정신적인 풍요, 이웃과 나눔, 자연과 공존하는 즐거움과 행복이 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좁은 아파트에 살고 낡은 자동차를 타고 다니며 가끔씩 일회용품을 쓰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활 속에서 실천적인 삶을 사는 분들을 참 존경한다. 정책과 제도를 만들도록 조언하고 행정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것이 주요한 일인 나와 삶과 환경을 일치시켜 가는 이분들은 서로가 역할을 나눠 환경운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생태적인 삶은 단순히 자연을 위한 삶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 삶을 보장하는 경제가 미래에도 지속되기 위한 것이다. 생태와 경제는 물과 기름 같은 관계로 생각하는 것은 시대적 흐름에 맞지 않는다. 이미 환경과 생태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가 사는 길이다. 일례로 폐지 고철 등 한 해 수입되는 쓰레기 자원이 1조 6천억 원을 넘는다. 재활용을 10%만 늘려도 1600억원의 수입대체 효과를 얻을 수 있다. 50%에 미치지 못하는 생활쓰레기 재활용 율을 선진국 수준인 70%까지 늘린다면 경제적 기대효과는 엄청나게 커질 것이다. 이산화탄소 배출량 세계 9위인 우리나라는 기후변화협약에 의해 2012년부터 의무 감축대상이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지 못하면 그만큼 돈을 내야한다. 지역별로 감축 목표치를 세우지 못한다면 더 이상의 개발 행위를 정부가 허가해 주지 않을 수 도 있다. 생태적인 사회로 가는 데는 도시민들의 소비와 삶의 태도 변화가 결정적이다. 도시를 탈출하고 싶은 마음이야 꿀떡 같지만 생활을 위해 꿈은 접어두어야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아파트 숲과 도로를 꽉 메운 차, 무더운 도시를 떠날 수 없다면 도시의 일상 속에서 대안적인 실천을 모색하는 즐거움과 행복도 작지 않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