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숙/ 경북 경주에서 태어난 정현숙 씨는 서울에서 10년 넘게 국어선생님을 하다가 “젊은 시간을 몽땅 바쳐 밥벌이하는 생활”에 회의를 느끼고 농촌으로 들어가 지금은 정읍, 전주한살림 대표와 전국귀농운동본부의 이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드디어 눈이 왔다. 하루 밤낮을 펑펑 쏟아지더니 탐스럽고도 인심좋게 수북수북 눈이 쌓여 있다. 온 산은 하얗고 감나무 위의 미처 따지 못한 감에도 눈이 쌓여 하얀 눈과 까만 나뭇가지, 빨간 감이 아름다운 그림을 이룬다.
눈은 왔지만 와서 좋다는 얘기는 아니다. 당장 우리는 두문불출, 외부와 격리된 신세가 되었다. 피치 못할 일이 있어 면사무소를 가야 했던 남편은 걸어서 산을 내려갔다. 그리고 어진이. 학교는 당근 결석하고 비장의 무기 유희왕 카드를 쫙 펼쳐놓고 두어 시간 열심히 들여다보더니, 드디어 눈밭을 나섰다. 양발 세 켤레, 바지 세 개, 윗도리 네 개로 완전무장을 하고 비료포대 썰매를 탄다고 눈에 뒹굴다 자기보다 훨씬 큰 눈사람 몸통 하나 만들어 놓고 어둑해서야 돌아왔다.
어진이는 내가 늦게 결혼해서 늦게 낳은 아들이다. 귀농하던 첫 해에 낳아 이제 아홉 살, 모자랄 것도 유난할 것도 없이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다. 우리가 볼 때 지극히 평범하고 정상적이지만 혹 다른 사람들이, 또는 도시사람들이 볼 때 어진이는 좀 특이할 지도 모르겠다. 우리 집 환경 때문이다.
우리 집 생태화장실에 기겁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건 사실 별것도 아니다. 식구들은 세수비누나 치약을 쓰지 않고 화장지도 쓰지 않는다. 세수나 목욕은 맹물로만 하고 치약대신 죽염을 쓰거나 물로만 양치를 한다. 그래서 어진이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세수비누와 샴푸를 쓴 일이 서너 번 정도밖에 없고 엉덩이는 겨울에도 찬물로 씻는다.
세수한 뒤에는 아무것도 바르지 않는다. 아기 때도 로션이니 샴푸, 가루분 따위를 쓴 적이 없다. 마사지 해 줄 때 간혹 천연 오일을 쓴 것 말고는 피부에 뭘 바르지 않았다. 비누든 치약이든 먹어서 좋을 정도가 아니면 피부에도 안 닿는 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을 오염시키고 싶지 않은 이유도 있다.
나도 시골 내려오고 지금까지 얼굴에 로션 같은 걸 바르지 않고 산다. 물만 찍 해서 세수하고 이빨 헹구면 외출준비 끝이다. 처음에는 일이 바쁘다 보니 안 바르게 되었는데 안 바르니까 괜찮아지는 건지 피부가 좋아져서 안 발라도 되는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 것도 안 쓰니까 참 편하다.
어진이 머리는 올 들어 처음 미장원에서 깎였을 뿐 늘 내가 잘라줬다. 눈 동그랗게 뜨고 앞머리 직선으로 단발머리 한 사진을 보면 지금도 참 이쁜데 머리 기르자고 하면 이제는 애들이 놀린다고 절대 안 한다. 길러서 꽁지머리 묶자고 하면 기겁을 한다. 약간 긴 단발을 하고 어진이가 처음 학교에 갔던 날 전교생 스무남은 명이 전부 창문에 매달려 ‘쟤 남자야, 여자야?’ 했다. 하도 여자애냐는 말을 많이 들어 어진이는 요즘 여자애 같은 무엇은 절대 안 한다.
실제로 어진이는 정말 남자애답게 씩씩하다. 산골에서 자라 저절로 씩씩해졌을 것이다. 학교에서 동네까지 2키로 가까운 길, 동네에서 우리 집까지 1키로 넘는 산길을 어둑할 때 걸어오고서도 무섭지는 않은데 다리가 아프다고만 했다. 1학년 때 한번은 전화도 없고 불도 없는 깜깜한 집에 혼자 돌아와서 2시간 넘게 어두운 방에 혼자 엎드려 있었는데, 친구집에서 노는 줄 알고 태평스럽게 늦게 오던 내가 혼비백산해서 달려와 보니 아주 쬐끔만 울었다고 했다. 엄마 없으면 다시 동네로 내려가지 그랬냐고 하니까 목소리도 당당하게 ‘내가 그 헛수고를 왜 해?’ 그랬다. 그날은 정말 내가 놀라버렸다.
사방 깜깜한 겨울밤에도 어진이는 ‘나 똥 싸고 올게.’ 하고 태연하게 문을 열고 나간다. 저것이 진짜 혼자 가려나 싶어 가만있었더니 어딘가로 가서 볼일을 잘 보고 다시 드르륵 문 열고 들어와 엉덩이를 씻는다. 어릴 때부터 그래 놔서 이젠 으레 그러려니 한다. 훌륭한 어진이!
내가 한 게 있다면 ‘두려움’을 가르치지 않은 정도다. 명상을 배우면서 인간의 내면에 잠재한 그 두려움이 참으로 뿌리 깊구나를 느낀 다음, 나는 어진이에게 두려움을 말해 주지 않기로 작정했다. 그래서 어떤 일에도 저게 무서운 거야라고 말하지 않았다. 귀신도 유령도 호랑이도 도둑도 무서운 거라고는 말해 주지 않았다.
그게 효과가 있었다면 다행이지만 어진이를 키우면서 느낀 것은 아이란 내가 의도하고 가르친다고 해서 그걸 배워서 뭘 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이다. 아이는 내 인연에 맞게 태어나고 자기가 가지고 온 자질로 이 세상을 배우고 경험하며 살아갈 뿐이지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한다 해서 꼭 그게 교육이 되고 자질이 되는 건 아닌 것 같았다. 왜냐하면 어진이에게 우리가 의도하고 가르치고 한 것은 정말 없는데 스스로 힘을 내고, 신중하게 움직이고, 아기 때부터 밥알 한 톨 안 남기고 깨끗이 그릇을 비우는 걸 보면서, 아 저건 내가 가르친 건 분명 아니야 라고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자기 갈 곳을 정확하게 잘 찾아 우리에게 깃든 어진이는 때가 되면 다 갖춰지고 필요한 것들이 착착 생겨 아쉬울 것이 없다. 땅을 마련하지 못했을 때, 우리는 혹시 깊은 산 속에 산지기로라도 가면 학교는 못 보내겠다 생각까지 했는데, 적당한 거리에 학교가 있고, 그 와중에도 반 친구들이 여덟 명이나 있는 행운을 누린다.
어진이네 학교는 전교생 서른 명도 안 되는 작은 학교다. 정읍시에서도 하나밖에 없는 벽지학교라서 급식도 책도 다 공짜다. 학교 마치면 태권도 학원가는 형들이 몇 있긴 하지만 그게 전부고 영어학원도 수학학원도 반 경 십 몇 키로 안에는 없다. 학교 앞에는 그 흔한 문방구 하나 없어 군것질이나 요상한 게임 같은 것은 꿈도 못 꾸는 대한민국 특별구 학교다.
지난겨울 졸업식에 갔더니 달랑 두 명이 졸업하면서 무슨 상 무슨 상을 둘이서 번갈아가며 받고 졸업식 노래 2절 ‘잘 있거라 아우들아 정든 교실아’도 두 명이서 부르고 졸업했다. 조그만 급식소에 면장님 파출소장님 무슨무슨 회장님을 모시고 전교생이 모여서 달랑 두 명을 두고 하는 졸업식이 어찌나 안쓰럽던지 졸업식 노래를 부를 땐 공연히 큰 소리로 목청을 돋우어도 끝내 눈물이 났다. 그 다음 입학식에 갔더니 또 달랑 두 명이 입학해서 전교생이 같은 수를 유지했다.
다행히 어진이네 학년은 무슨 조화로 일곱 명이 입학해서 한 반이 되었고, 그 후 학교가 좋다는 소문이 나서인지 두 명이 더 전학 와서 아홉 명이 되었다. 한 반이 못 되는 1학년과 5학년은 두 반이 엎쳐서 복식수업을 한다. 그 중에서 달랑 남녀 하나씩 두 아이만 있는 1학년 교실이 나는 정말 궁금하다. 걔네들은 앞으로도 5년 더 붙어 다녀서 초등학교 6년을 죽으나 사나 둘이서 마주 보고 공부하고 놀고 싸우고 할 것이 아닌가. 모-든 교육과정과 모-든 놀이과정을 6년 동안 둘이서만 하는 걔들은 재미있을까, 싫증날까, 사이가 좋아질까, 나빠질까.
그러다보니 내년에는 학급이 어떻게 될까가 관심사였는데, 며칠 전에 어진이네 선생님 말씀이 신입생 한 명이 모자라 독립반이 못된단다. 원래 일곱 명이 있었는데 그새 한 아이가 어디로 주소를 옮겨갔나 보았다. 아뿔싸! 어디 급히 입학할 애가 없나 머리를 싸매 봐도 갑자기 여덟 살짜리가 어디서 뛰어올 리는 만무하고, 어진이네 학교는 내년에도 서른 명 채 안 되는 애들이 올망졸망 네 학급이나 다섯 학급으로 지내야 하려나 보다.
애들이 몇 안 되다 보니 선생님들에게서 자주 듣는 얘기가 애들이 조금만 더 있어도 라는 얘기였다. 그랬다. 체육대회를 하려 해도 연극을 하려 해도 도대체 애가 몇 명이나 있어야 뭘 해 보지. 몇 분 안 되는 선생님들이 애들보다 더 신이 나서 눈을 반짝이면서 다음에는 뭘 할까를 궁리하시는데, 정말 지치지도 않고 낮에도 학교, 밤에도 학교, 놀토에도 학교, 방학에도 학교에서 뭣인가 꾸미고 계획하고 준비하셨다.
학교에 붙박이로 있기는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선생님들 배려로 늦게까지 공부를 하고 그러고도 신명이 남아 축구랑 게이트볼이랑 때때로 판소리까지 하고 나면 다섯 시가 넘은 늦은 시간에야 아이들은 집으로 향한다. 같은 방향끼리 죽 늘어서서 걷다 놀다 집으로 돌아오는 아이들은 저문 날을 만난다. 껌껌한 어스름 저녁 산길을 혼자 올라와서 엄마! 부르는 소리를 들으면 아이는 웃는데 내가 오히려 가슴이 덜컥한다.
아무튼 어진이네 학교 선생님들은 그래서 더 이상 못 참고 산촌유학 프로그램을 계획하신다. 도시생활에 염증을 느낀 어린이(?), 자연을 벗 삼아 살고 싶은 어린이(?), 경쟁사회에서 벗어나 대안교육을 꿈꾸는 어린이(?)들 모여라 해서 아주 재미있고 알찬 수곡 초등학교를 만들고 싶어 하신다. 부디 성공하시기를!
그리고 우리 아들 어진이. 훌륭하게 자라기를 바라긴 하지만 우리는 현 자본주의 체제에 별 미련이 없으므로 뭘 별로 강요하고 싶지는 않다. 수학과 한자공부를 좋아하고 책읽기를 너무 좋아해서 덜컹거리는 차 안에서 손으로 돌려서 불 켜는 후레쉬 돌려가면서도 책을 읽는 어진이는 앞으로 농사도 짓고 과학자도 되고 싶다고 한다. 돈을 벌어야 되니까 농사지어서 먹고 살고, 연구를 하고 싶으니까 과학자가 된다나. 그래서 누가 살짝 가르쳐 줬다. ‘어진아, 농사 안 짓고 과학자만 되어도 먹고 살 수 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