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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 | [김남규의 전라도 푸진사투리]
"배는 짓도 안 허고 깡다리보톰 장만허냐.”
(2014-02-14 16:23:06)

김규남 | 언어문화연구소장

도서관이나 학교에서 게시하는 문구 중에 ‘잠을 자는 사람은 꿈을 꾸지만 책을 읽는 사람은 꿈을 이룬다.’는 말이 있다. 마음에 담아두고 졸릴 때마다 떠올리면 좋을 만한 문구다. 꿈이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아니 꿈이 있어야 삶이 팽팽해진다.
꿈을 꾸는 것 가운데 배를 만드는 마음 역시 상당한 긴장감을 예고한다. 차단된 공간을 넘어 아직 감추어져 있는 새로운 세계를 향한 욕구 그리고 그 과정에서 겪어야 하는 고난과 영광 그리고 그 이후에 다가올 다각적이고 총체적인 변화의 과정은 우리가 역사를 통해 익히 알고 있는 바이다. 우주를 향한 현대의 꿈 역시 우주선 혹은 spaceship을 통해 동양과 서양이 같은 발상과 기대를 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전라북도의 바다는 그런 원대한 꿈의 바다가 아닌지도 모른다. 어느 여름 피서를 목적으로 혹은 상심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나서는 바다쯤으로 전락한 것인가. 아니 이게 전라북도만의 문제가 아니라 어쩌면 동해와 남해 바다를 끼고 있는 여타 지역의 경우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삼면이 바다이고 조선 강국이라는 명성과 어울리지 않게도 우리는 바다에서 꿈을 꾸지 않은 지가 너무나 오래 된 것 같다.
지난 학기 내내 주말을 이용하여 바다를 끼고 있는 마을을 돌아다니며 어로 생활에 대한 방언 조사를 하였다. 바다와 사투를 벌이며 목숨을 연명하던 옛 사람들의 삶을 엿보며 우리에겐 원대한 꿈의 바다가 아니라 주어진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바다인 것 같았다. 꿈을 꾸지 못하는 바다로 전락한지 오래도 너무 오래 된 것 같아 순응한 역사의 나약함이 쓸쓸하게 다가왔다.
새로 맞이하는 시간, 새해 벽두. 방언으로 하는 덕담 한 마디를 하고 싶은데 과문이 병이라 마땅한 것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서 준비한 ‘깡다리’는 바로 옛 섬사람들이 나무로 배를 짓는 과정에서 사용되는 무엇이다. 우리 배의 특징은 물이 낮은 데서도 떠다닐 수 있도록 배밑을 평평하게 만드는 특성이 있다. 임진왜란 때 해전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운 충무공도 역시 조선배의 특성을 잘 이용한 결과이기도 하다.
어떻든 배를 만들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산에서 나무를 베어다가 배를 지을 수 있을 때까지 건조시키는 과정에서부터이다. 그리고 수년이 지나 배를 짓기에 적당한 강도로 나무들이 건조되었을 때 비로소 배를 짓는다. 배를 지을 때는 먼저 두껍고 기다란 통나무를 깐다. 이 통나무를 보통 원밑이라고 한다. 원밑을 깐 후 원밑 끝에 사선으로 통나무를 댄다. 이것은 묘시라고 한다. 묘시는 배의 맨 앞부분이다. 원밑을 깔고 묘시를 세운 후에 원밑을 중심으로 양 옆으로 통나무를 대가며 배밑을 만든다. 그리고 배밑이 만들어지면 뱃전을 세우기 위해 나무를 수직으로 세워 올린다. 뱃전을 올릴 때 묘시와 뱃전을 연결하기 위해서 나무를 휘게 하는 것도 목수가 갖추어야 할 특별한 기술이다.
배의 테두리가 만들어지면 배의 공간을 나누는 간막이를 한다. 간마다 이름이 다르다. 궁간, 투싯간, 막간 등등이 그 예인데 간마다 모두 제각각의 기능이 있다. 궁간엔 잡은 고기를 넣어두고, 투싯간에서는 음식을 해먹고, 막간에 허드렛 물건들을 넣어둔다거나 하는 식이다. 간막이를 만들면서 함께 하는 것이 돛대를 세우는 일이다. 돛대는 보통 두 개를 세우는데 배의 중심부에 하나를 세우고 그 앞쪽에 하나를 세운다. 전라북도에서는 앞돛대를 이물돛, 가운데 돛대를 대꼬작 혹은 허릿대라고 한다. 그리고도 이런저런 순서로 배가 완성되어 가는데 해도 좋고 안 해도 좋은 선택 사양 가운데 하나가 ‘깡다리’다.
깡다리는 배의 가장 뒷부분 가로로 놓인 굵은 통나무 위에 ‘Y’자 형으로 세우는 나무 받침대이다. 돛이나 노 등을 사용하지 않을 때 이 ‘깡다리’ 위에 걸쳐 두어 배가 파도에 너울거릴 때 돛이나 노가 제멋대로 움직이지 않도록 고정시켜 두기 위한 장치다. 이것은 선주가 목수에게 주문해서 달기도 하지만 대부분 선주 자신이 필요에 따라 스스로 만드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배를 짓는다는 것은 꿈을 실현하는 과정이다. 어려서부터 망망한 대해를 향해 이글거리는 눈빛을 꽂아 왔던 굵고 억센 바다 사나이들이 삶의 중반기에 접어들면서 희망의 돛을 펴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러나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죽음의 손짓들 때문에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바다와 바다 위에서의 삶을 준비하는, 배 짓는 과정 하나하나 역시 작은 실수가 곧 생명의 위협이 되는 것이니 긴장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일생을 걸고 한번 할까 말까 하는 배 짓는 일. 이 꿈을 이루기 위해 살아온 고단한 삶과 그 배와 함께 할 여러 목숨들과 그 목숨들에 연계된 또 다른 연명과 기다림들, 이것이 배 짓는 일이다. 새로운 삶의 출발점이며 오래도록 가슴에 담아두었던 꿈일 뿐만 아니라 너와 나 그리고 우리가 함께 살고 함께 죽는 일이다. 그 꿈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깡다리’부터 장만하는 것은 터무니없어도 어지간히 터무니없는 짓이다.
새해 벽두 꿈꾸는 바다를 기대하며 방언으로 올리는 덕담 한 마디 ‘배는 짓도 안 허고 깡다리보톰 장만허는 짓은 허덜덜덜 말자고라우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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