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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 | [안도현시인의 어른을 위한 동화]
한 채의 집을 짓기 위하여
(2014-02-14 16:13:13)

집을 짓던 목수들이 점심을 먹으러 갔습니다. 공사장이 절간처럼 고요해졌습니다. 목수들이 스스럼없이 내뱉던 욕지거리도 나무에다 망치로 못을 쾅쾅 박는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목수들이 이쑤시개로 이를 쑤시며 돌아올 때까지는 고요가 마당 한켠에 쌓인 기왓장처럼 얌전하게 누워 있을 듯합니다.
이 기와집이 완성되면 마을에서 제일 멋있고 큰 집이 될 것입니다. 집의 주인이 될 사람은 우리 마을에서 가장 돈이 많은 부자입니다. 우리 마을에는 언제부터인가 돈 많은 부자가 제일 멋있고 큰 집에 사는 이상한 풍습이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참 이상한 일이지요?
주인은 이미 입에 침이 마르도록 집에 대해 자랑을 늘어놓은 적이 있습니다.
“우리 집을 짓는 목수들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구. 서울에서 왕궁을 고치던 사람들이야. 내가 이 사람들을 삼고초려해서 어렵게 모셔왔지. 어디 그뿐인 줄 알아? 이 집을 짓는 데 쓰일 목재들은 저 대관령 너머 강원도에서 실어온 것들이고 말이야.”
개도 주인을 닮는다는 말이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이 집의 기둥이 되고 마룻대가 되고 서까래가 될 나무들도 주인 못지않게 남 앞에서 거들먹거리기를 좋아했습니다. 목수들이나 집 짓는 일을 구경하는 마을 사람들이 없으면 나무들은 저희끼리 이렇게 수군거리며 다투기 일쑤였습니다.
그 중에서 강원도에서 왔다는 덩치 큰 소나무의 목소리가 누구보다 크지요. 그는 불룩한 배를 앞으로 내밀며 말했습니다.
“나는 배흘림기둥이 되어 이 집의 지붕을 턱 받치고 서 있을 몸이야. 내가 미리 말해 두는데, 제발 내 앞에서는 까불지들 말라구.”
그는 산중에서 150년을 살아온 나무였습니다. 사람보다 두 배 가까이 세상을 더 살았던 겁니다. 그 정도면 입을 자물쇠로 채우고 있어도 나이 어린 나무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으며 지낼 법도 합니다. 하지만 그가 사사건건 나서기를 좋아하는 통에 나무들은 아무도 그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입을 함부로 열지 않았으면 다른 나무들도 시비에 휘말리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마룻대가 말했습니다.
“기둥만으로 집이 완성되는 건 아니지. 지붕 꼭대기에 올라앉을 나무는 바로 나, 마룻대가 제격이 아니겠나?”
그러자 서까래가 나섰습니다.
“서까래 없이 지붕을 얹는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을 걸.”
그 다음에는 대들보가 나섰습니다.
“어허, 집안의 대들보라는 말도 모르는 모양이지?”
이렇게 크고 작은 목재들끼리 다투는 것을 지켜보던 누군가가 카르릉, 하는 소리를 내며 앞으로 나섰습니다. 그는 나무가 아니었습니다.
“나무들아, 너희는 모두들 자기 자신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떠드는데, 내가 너희들을 자르지 않으면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을 걸. 너희들의 운명은 오직 내 손에 달려 있을 뿐이야. 그렇게 길다란 몸으로 땅에 누워 있기만 하면 뭘 하나? 토막을 내서 장작으로도 쓸 수 없는 몸이라는 것을 알기는 아는가?”
보기에도 흉측한 날카로운 이빨을 밖으로 드러내고 소리치는 그는 톱이었습니다. 난데없이 톱이 앞으로 나서자 나무들이 기가 꺾인 듯 숙연해졌습니다. 하지만 기세등등해진 톱날은 오히려 햇빛을 받아 반짝, 하고 빛났습니다.
그 때 먹줄이 꼿꼿하게 검은 눈썹을 치켜세우며 말했습니다. 먹줄이 화가 났다는 뜻입니다.
“힘이 있다고 그걸 멋대로 자랑하는 일은 미련한 일이야. 어험! 그렇고 말고. 우리는 지금 집을 지으러 여기에 모였지 싸움을 하러 온 게 아니야.”
먹줄은 헛기침까지 해가며 제법 점잖은 듯이 말을 꺼냈습니다.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지. 톱으로 나무를 자르려면 적어도 내가 반듯하게 치수를 맞추어 줄을 친 뒤에 잘라야 옳지 않겠나? 나무를 삐딱하게 잘라서 집이 기울어지기라도 하면 그때는 누가 책임을 질 텐가?”
먹줄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누군가가 쯧쯧,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쯧쯧, 한심하고 어리석은 친구들 같으니라구……”
그는 대패였습니다.
“도대체 나무껍질도 벗기지 않고 먹줄을 갖다 댄다는 생각을 어떻게 할 수 있나? 내가 반질반질하게 나무를 다듬어야 저 거친 나무가 비로소 좋은 목재로 쓰일 수 있는 거야. 대패로 매끈하게 다듬지 않은 나무는 뒷간을 만드는 데나 쓰인다는 걸 모르는 건 아니겠지?”
이렇게 나무와 톱과 먹줄과 대패가 아옹다옹하는 사이, 묵묵히 귀를 기울이고 있던 망치가 주먹으로 땅바닥을 꽝 내리쳤습니다.
“이제 그따위 소란 좀 그만 피우라구. 아무리 나무의 질이 좋고 톱날이 날카롭다고 한들, 그리고 아무리 먹줄이 정확하고 대패로 매끈하게 나무를 다듬는다 한들, 망치인 내가 못을 박지 않으면 나무와 나무가 이어질 수 없다는 걸 모르고 하는 소리들이야.”
그러자 나무와 톱과 먹줄과 대패가 망치의 위력에 눌려 입을 다물어 버렸습니다. 망치는 더욱 신이 났습니다.
“내가 곧바로 시범을 보여주지. 망치가 한 채의 집을 어떻게 완성하는지를 말이야.”
망치는 서둘러 못을 찾았습니다. 그 때 작은 쇠못 하나가 땅바닥에 떨어져 나뒹굴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본 나무와 톱과 먹줄과 대패는 비웃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쇠못이 너무 작아서 망치를 도와 줄 수도 없겠는 걸.”
작은 쇠못이 볼품없이 생긴데다가 몸에는 흙까지 묻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망치는 그만 무안해졌습니다. 망치는 작은 쇠못에게 나무라듯이 물었습니다.
“쇠못아, 너는 왜 그 모양으로 생겼니?”
그러자 작은 쇠못이 아주 낮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너희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해도 좋아. 나는 나무와 나무를 이어주기만 하면 돼. 그 다음에는 곧바로 나무속으로 숨어버릴 거야.”


안도현 /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에 시 '낙동강'과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서울로 가는 전봉준'이 당선되면서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 후 '서울로 가는 전봉준' ,'모닥불','그대에게 가고 싶다' ,'외롭고 높고 쓸쓸한','그리운 여우','바닷가우체국','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등의 시집과 '짜장면','사진첩','증기기관 미카','민들레처럼','나비','관계' 같은 어른을 위한 동화를 꾸준히 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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