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1 | [삶이담긴 옷이야기]
덧없음의 시대
최미현/ 패션디자이너(2004-01-28 11:10:34)
<삶이 담긴 옷이야기>
덧없음의 시대
사람들 앞에서 핸드폰을 꺼낼 때마다 무기인지 핸드폰인지 구별이 안 된다거나 박물관에 기증하라거나 하는 소리를 듣는다. 잘 들리고 좋기만 한데 왜 그러냐고 하면 그렇게 시대에 뒤 처져서 어떻게 하느냐 하고, 나는 기계만 좋으면 시대에 잘 따라가는 것이냐고 반문하고는 한다. 핸드폰 대리점에 가보라, 얼마나 많은 종류의 기계들이 쌓여 있는지. 쓸데없어 보이는 작고 사소한 것들에 사람들은 집착을 하고 그 미세한 차이들을 즐기며 기쁨을 느낀다.
어떤 때 이것들은 도가 지나치다 싶다. 더 새로운 것들이 나오면 그때까지 자신이 그다지도 만족했던 물건의 매력은 한 순간에 사라져 버리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 덧없는 순간을 즐거워하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기꺼이 즐기면서 이 시대를 미끄러져 가고있다.
옷을 멋있게 입고 항상 새로운 유행하는 옷을 쫓아가는 사람을 우리는 더 이상 패션인으로 부르지 않는다. 차인표를 보기 위해 중국에서부터 날아오고 서태지의 공연을 보기 위해 비행기를 전세 내는 사람들, 평면 TV를 사기 위해 잘 쓰던 텔레비전을 버리는 사람들, 좀 더 작고 좀 더 나은 핸드폰을 갖고 싶어 자주 바꾸는 사람들, 자신의 얼굴을 성형수술로 미련 없이 바꾸는 사람들을 오히려 패션인으로 불러야 할 것이다.
그 시대가 주는 유혹이 자극하는 대로 움직이며 그것을 최상의 가치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야말로 패션 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대상에 깊은 통찰력이나 애착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덧없고 피상적인 것에 따라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여기저기 물 덤벙 술 덤벙 하느냐면 그것은 아니다.
작고 시시하고 경박한 것들이 그들을 유혹하더라도 절대적으로 자신의 주관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이다. 이들을 소위 신 개인주의자라고 부르는데 이런 유형에 속하는 현대인들은 다른 사람의 눈치를 살피며 물건을 소비하지 않는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사는 순간에 즐거움을 느끼면 그만이고 새 것을 찾고 소비하는데 다른 사람의 시선이 장애물이 될 수 없다.
또 그들은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으며 어디까지나 자신의 의지로 결정을 내리고 그 과정에서 자율성을 획득한다. 쉽게 말해서 장사군의 농간에 넘어가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소비자들을 대하는 것은 훨씬 어렵다.
유럽 사회에서 보자면 68년의 학생운동 세대가 지난 다음이고 우리 사회로 하자면 90년대 후반부터라고 할 수 있을까. 이들은 사회변혁의 열정이 식고 그 자리에 패션의 시대가 자리매김을 한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그들은 예전같이 어떤 포부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렇게 그 시대가 제공해 주는 매력에 이끌려 간다고 하겠다. 덧없고 가볍고 경박하고 하잖고 공허하고 유혹적인 시대의 흐름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덧없는 것 같고 한편으로는 개인이 주체가 되는 시대에서 우리 젊은이들은 물고기처럼 매끄럽게 헤엄쳐 나간다.
개인주의와 시대적인 공동화 현상 사이를 잘 조율하면서 그들은 새로운 문화를 만끽하면서 살고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