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1 | [문화저널]
영자송과 태진아의 ‘사랑은 아무나 하나’
남형두/ '남형두의 저작권 길라잡이'로 연재를 시작한 남형두 변호사는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2004-01-28 11:09:16)
<남형두의 알기쉬운 저작권 이야기>
영자송과 태진아의 ‘사랑은 아무나 하나’
대한민국의 성인 남자로서 최근 20년 사이 군대를 다녀온 사람은 누구나 “영자야 내 딸X아, 몸 성히 성히 성히 자알 있느냐 ~”로 시작하는 이른바, 영자송을 안다. 이 노래는 80년대 대학가에서도 곧잘 불려졌는데, 위 시작부에 이어서 “여기에 있는 이 오빠는 사장님이 아니란다...”등으로 변형되어 일종의 사회비판적인 운동가요로 불려지기도 하였다.
지난 대선과 총선 등 각종 선거 때 선거로고송으로 가장 많이 애용된 곡 중 하나는 “사랑은 아무나 하나”였다. 태진아의 곡을 개사하여 “정치는 아무나 하나,..”라는 식으로 각 후보마다 특색있게 바꿔 불렀는데, 위 두 곡, 즉 영자송과 “사랑은 아무나 하나”는 조금만 흥얼거려보면, 멜로디가 같은 곡임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런데, 최근 태진아 곡의 주인이 자기라고 하면서 나타난 사람(원고)이 있었다. 그는 자신이 군대에 있을 때 알게 된 영자송을 토대로 “여자야”라는 곡을 만들었는데, 태진아가 자신의 노래를 그대로 복제하였다고 주장하면서, 태진아를 상대로 법원에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다. 이에 대하여 태진아측은 자신의 노래가 구전가요인 영자송을 토대로 만든 것이기는 하나, 원고의 곡을 베낀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법원은 원고와 태진아의 곡이 모두 구전가요인 영자송을 토대로 한 것이라는 점과 나아가 태진아의 곡이 원고의 곡과 유사하다는 점을 인정하였지만, 원고의 곡 중에서 구전가요부분을 제외한 것으로서 원고가 창작한 부분이 새로운 창작물이라고 볼 수 있는 정도의 것(2차적 저작물)이 아니라는 이유로 원고의 청구를 배척하였다. 원고는 이에 불복하여 현재 이 소송은 서울고등법원에 계류중에 있다.
이 소송에서 쟁점이 된 ‘2차적 저작물’이라함은 원저작물을 기초로 이를 변형하여 새로운 저작물이 창작된 경우에 그 새로운 저작물을 말한다. 요즈음 어린이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해리포터의 소설을 영화화한 것은 그 대표적인 예가 될 수 있다. 이때 소설은 원저작물, 영화는 2차적저작물이 되는 것이다. 2차적저작물은 원저작물과 별도로 엄연히 독자적인 저작물이며 원저작물과 별도의 보호를 받게 된다. 따라서, 2차적저작물로 인정되면, 독자적인 저작권자로서 보호받기 때문에, 예컨대 위 사건의 원고는 태진아로부터 저작권침해에 따른 손해배상으로서 태진아가 그동안 “사랑은 아무나 하나”라는 곡으로부터 벌어들인 수입의 상당부분을 돌려받을 수 있게 된다. 2차적저작물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첫째, 원저작물을 기초로 하여야 하고, 둘째, “실질적인 개변”(substantial variation)이 있어야 한다고 이해되고 있다. 첫째의 요건에 대하여는 특별히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없으나, 문제는 위 사건에서 보는 바와 같이 “실질적인 개변”이 있느냐 없느냐에 있다. 사회통념상 별개의 저작물이라고 인정될 정도의 개작이 있어야 하며, 기존저작물에 다소의 수정, 증감을 한 데 불과한 것은 2차적저작물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위 사건에서 1심 법원은 원고의 “여자야”가 구전가요 영자송을 사소하게 변화시킨 것에 불과하고 실질적인 개변에까지 이르지 아니한 것으로서, 원저작물과 동일한 것일뿐 2차적저작물이 아니라고 보았다.
아직 최종 판결이 나온 것은 아니나, 문화를 더욱 풍요롭게 하는 2차적저작물의 인정범위에 대한 하나의 좋은 사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