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1 | [문화저널]
무상의 행위를 신앙처럼 여기는 일
이상조/ '화가의 산 이야기'로 연재를 시작한 이상조 교수는 홍익대를 미술학과를 졸업하고 (2004-01-28 11:04:39)
<화가의 산 이야기>
무상의 행위를 신앙처럼 여기는 일
글 이상조 화가·산악인
화가와 산
현대미술에서 딱히 이러한 등식을 성립시키긴 어려우나 모델은 화가에게 창작할 수 있는 영감을 제공하기 때문에 화가의 영원한 동반자이다. 미술이 순수 조형에 빠져들기 이전, 화가는 그림 그릴 대상이나 소재를 찾아 지독히도 방황했었다. 세잔느가 성 빅토아르 산이 보이는 곳에 칩거하며 형태의 구조를 연구하고, 고갱이 타이티 섬으로 흘러들어 원시의 야성을 그려내고, 로트렉이 파리의 그 유명한 무랑루즈나 홍등가 속에 묻혀 지내며 걸작들을 양산해낸 일화는 뜨거운 피를 지닌 화가들에게 언제나 신선한 충동을 제공한다. 미술사 속에 드러난 화가와 모델의 유명한 찰떡 궁합의 예는 르노아르와 그의 모델을 꼽을 수 있다. 르노아르 특유의 아이스크림 같이 달콤한 필치로 표현된, 샛별이 담겨진 듯한 이름다운 눈을 가진 풍만한 몸매의 모델은 실은 직업 모델이 아닌 그의 처제로 르노아르의 예술과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여인이다.
우스개 얘기로 화가와 모델의 사이를 맛으로 친다면 어떤 맛이라 표현할 수 있을까? 꿀맛일까 아니면 쓴맛일까? 단정할 순 없지만 모델이 바뀔 때마다 이혼과 결혼을 반복하며 많은 훌륭한 작품들을 토해낸 피카소는 분명 꿀맛이었을 것이고 미성년의 소년 소녀들을 에로틱하게 그려낸 이유로 감옥살이를 한 에곤 쉴레(Egon Schiele)는 쓴맛이었을 것이다. 그러면 대부분의 작품들이 모델과 사랑을 나눈 후 모델의 나른한 표정을 그렸으며 연적에 의해 살해당했다는 뒷 이야기가 있는 모딜리아니는 단맛 쓴맛을 다 봤다고 해야하나...
아무튼 화가가 그림 그릴 대상에서 영감을 찾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필자의 모델은 산(山)이다. 6살 어린 시절, 같이 살던 사촌형의 손에 이끌려 올라 북한산 기슭에서 지낸 하루 밤의 기억은 컹컹거리던 늑대 소리와 함께 내 삶의 그 어떤 기억보다 더 달콤하다. 그 다음부터 사주(四柱) 어디에도 보이지 않던 배낭귀신과 등산화 귀신이 해질 녘 산 그림자처럼 스멀거리며 찾아들어 사흘이 멀다하고 충동질해 데는 통에, 급기야는 히말라야 원정대장이네 하는 화가로써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계급(?)까지도 인생경력에 몇 줄이나 올랐으니 생각하면 쑥스럽다. 그러나 우스운 사실은 나의 그 첫 번째 산행은 무엇인가 잘못을 저지른 사촌형이 어른들에게 혼날 것이 두려워 새총을 만들어 준다며 꼬드겨 날 산으로 유괴(?)하였던 것이었다. 그래서일까? 아직도 나를 산으로 유괴하려는 악동들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며 미끼를 던지고 있으니 이런 악동들은 도대체 어디에다 신고를 해야하나? 정신차리고 볼 일이다.
화가는 예술품을 만들어 내고 산악인은 산을 오른다. 화가와 산악인은 겉으론 전혀 어울릴 수 없는 부류의 사람들이다. 그러나 내면을 조금만 헤집고 들여다보면 둘이 같은 부류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삶의 방법이나 행동의 양식을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화가와 산악인에게서 공통분모를 찾기는 쉽다. 화가가 그림을 그리는 행위와 산악인이 산을 오르는 행위는 대가를 전제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 대표적 공통점이다. 그리고 이 무상의 행위를 신앙처럼 여기는 것에서 둘은 한통속이라는 것이 확연히 드러난다.
화가의 산 이야기...
사람들은 산악인에게 산에 왜 오르느냐고 즐겨 묻는다. 등산의 역사가 시작된 지 250년이 지났건만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물음, 왜 산을 오르는가? 이 질문은 다시 말하면 내려 올 것을 왜 힘들여 올라가느냐는 물음에 다름 아니다. 이 질문은 그레이트 트랑고 타워(파키스탄 카라코룸 산맥 발토로 빙하에 위치한 6283m의 거대한 바위 봉우리)를 등반하러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서다 '내가 다시 이 문으로 돌아 올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송곳처럼 아프게 마음을 후비던 필자의 오래된 기억과 함께 언제나 풀 수 없는 산악인의 화두일 것이다. 정말 우리는 왜 산에 오르는가?
등산은 산과 사람의 만남에서 시작되지만 사람과 산의 만남이 모두 등산이 아니다. 도를 닦으려 입산하거나 약초를 캐며, 짐승을 잡으러 산에 가는 것은 등산이 아니다. 등산은 오르는 행위 자체가 목적이어야 한다.
등산의 의미와 개념은 시대에 따라 변해 고전적 의미와 현대적 의미로 나뉜다. 전자는 모험과 도전의 의미가, 후자는 현대문명에서의 탈출 수단의 의미가 그것이다. 등산은 산을 오른다는 뜻이지만 서구적인 개념이다. 등산은 알피니즘(Alpinism)을 번역한 것으로 알피니즘이란 말은 스위스를 가운데 두고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오스트리아 등 다섯 나라에 걸쳐 있는 유럽 알프스의 고산 지대에 그 역사적 기원을 두고 있다. 1760년 스위스 제네바의 자연과학자인 베네딕트 소쉬르(Horace Benedict de Saussure)가 샤모니에서 하늘 높이 치솟은 알프스의 최고봉 몽블랑(Mont Blanc, 4807m)을 보고 감동하여 정상에 오르는 사람에게 현상금을 걸었다. 그는 아무도 오르지 못한 이 높은 산의 신비한 정체를 밝히고 싶었다. 그리고 26년이 지난 후인 1786년 8월 8일 샤모니의 의사 미셀 가브리엘 빠가르(Michel Gabriel Paccard)와 포터로 고용된 수정 채취업자 자크 발마(Jaque Balmar)가 정상 등정에 성공한다. 이로써 '흰 산'이란 뜻의 신앙과 공포의 대상이던 몽블랑의 신비가 막을 내린다. 이 등반 이후 알프스의 많은 봉우리들이 많은 개척자들의 도전을 받게 되고 하나 둘씩 등정되는 역사를 갖는다
알피니즘은 이러한 알프스 등반의 역사에 기원을 두고 있지만 '알프스 등산이라는 좁은 뜻이 아니라 널리 일반적인 등산을 뜻한다' 영국에서 나온 등산백과 사전<Encyclopedia of Mountaineering>에는 알피니즘을 '눈과 얼음에 덮인 알프스와 같은 고산에서 행하는 등반'으로 풀이하고 있다. 알피니즘의 무대는 대자연이다. 이 자연은 고산과 칼날 능선, 깎아지른 암벽, 눈과 얼음, 그리고 넓은 공간과 허공 등으로 펼쳐지는 별세계이다
그렇다면 왜 산을 오르는가? 라는 의문은 등산이라는 대자연을 오르는 행위를 이해함으로써 해결의 가닥을 잡아 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