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2004.1 | [문화저널]
사람의 향기, 세상의 향기
용타큰스님/24세에 출가해 청화대선사를 은사로 모셨다. 1980년부터 현대인의 새로운 수양(2004-01-28 10:58:16)
<나를 키운 세상의 노래> 사람의 향기, 세상의 향기 글 용타스님 세상은 온통 나를 키워주는 노래들이다. 석가모니의 생애와 가르침이 그 노래요, 모차르트· 베토벤의 음악, 내 부모·내 친구들, 각종의 성공들, 다양한 좌절들, 우연한 행운과 재난들, 흐르는 구름, 장엄한 일몰, 서리 내린 가을의 앙상한 담장이 넝쿨, 놀이터 모퉁이에 있는 이름 없는 잡초, 등등 무수한 존재 일체의 것들이 다 나를 키운 세상의 노래들이다. 60 평생 살아오면서 나를 키워 주었던 세상의 노래들을 회고해 볼 때, 가히 무수함을 느끼면서 감사해 마지않는다. 김영배씨로부터 이 글을 부탁 받을 때는 4주일 전에 열반하신 나의 스승이신 청화 큰스님을 그 노래로 엮어보리라고 마음먹었는데, 원고지 20매 정도에 나의 인생에서 최고의 존재 의미를 지닌 나의 스승을 담아낸다는 것은 무리일 듯 하여, 내 인생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던 두어 개 사례를 엮어보기로 문득 마음을 바꾸었다. 근원(槿園) 구철우 선생님 지금은 이미 작고하신 분이지만 선생님은 호남 광주에 계셨고, 서예(書藝)로 한 세계를 여셨던 분이시다. 나는 붓글씨의 필법을 최초로 그 분께 배웠다. 그 분은 내 인생에 두 가지의 큰 교훈을 주셨다. 붓의 원융(圓融)함과 간이문(簡而文)이라는 촌철이다. 서예계를 보면 거의 천편일률적으로 중봉법을 주장한다. 그런데 근원선생님은 편봉법을 개발하셨다. 근원선생님의 제자들은 편봉법으로 기초 필법을 익혔다. 해서(楷書)의 교과서라 할 수 있는 법첩으로 '구양순예천명'이 있는데, 근원선생님께서는 예천명을 교재로 해서 글씨 수업을 하실 때 중봉법으로는 불편함을 느끼곤 하셨다. 이것이 근원선생님의 편봉법 개발의 계기이다 어느 날 선생님을 방문했을 때‘예천명’을 펴시고 글씨의 획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시면서, “이런 획들은 중봉법으로는 편치 않지. 붓이란 원융한 것,‘중(中)이니 편(偏)이니’에 집착을 할 일이 아니지.” 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씀은 나의 서예의 삶만이 아니라 인생사 전반에, 어떤 법도를 절대적으로 국집하지는 않도록 계도해주는 촌철이 되어주었다. 사실 원리 원칙이란 선천적인 법도가 아니고 상황적인 방편일 터인데 얼마나 많은 역사가 원리 원칙을 진리시하여 집착하면서 목적과 방법의 혼동을 겪었던가? 나는 글씨를 씀에 있어서 중봉을 위주로 하되 편봉을 허용함으로써 자유함를 느끼는 것이 참 좋다. 어느 누가 나와 다른 입장의 신념을 주장하더라도 그분의 관점과 차원에서는 그런 주장이 나올 수 있겠지 하고 존중되어진다는 것이 참으로 좋다. 또 어느 날 근원 선생님을 방문하였을 때, “선생님, 모모 화백의 그림을 보면 여백이 적어 보여 답답함을 느끼곤 하는데, 선생님 보시기에는 어떠합니까?”하고 물으니, “간이문(簡而文)이라, 간단하지만 꽉 차게 그리려면 마음이 순화가 되어야 해. 그저 열심히 쓰고 그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붓을 놓고 고전(古典)을 읽는 시간을 많이 가질 필요가 있지. 예술이란 마음의 반영 아니겠나. 모모가 아직 젊어서 그래.”하셨다. 나에게 ‘아하!’ 하는 탄성이 일어났다. '어찌 예술만이겠는가? 사람의 인격도 그러하다. 일주의 향(香)이지만 그 향기는 방안에 가득하듯, 5~6척 단신의 사람이지만 그 덕화는 온 고을에 퍼져 뭇사람을 감화시킴이라!' 하는 자각과 함께 간이문(簡而文)의 촌철은 나에게 좌우명의 하나로 각인되었다. 간이문은 내 인격과 생활의 여러 측면을 계도해준다. 적게 먹게 해주고, 적게 소유하게 하고, 말수를 줄여주고, 겉모습보다는 속모습을 유념하게 해주고, 인격을 말로 드러내지 않고 침묵과 행동으로 드러내게 해준다. 많은 교분은 없었지만 나의 인생에 중대한 선지식이 되어 주신 근원 구철우 선생님께 감사한다. 노희원 교장선생님 노선생님은 내가 여수고등학교에 교사로 봉직할 때 잠시 모셨던 교장 선생님이시다. 교감으로 봉직하시다가 교장으로는 첫 임지가 전남 여수고등학교였고, 훗날 교육감까지 봉직하셨던 분이시다. “교장 발령을 받자마자 여러분들이 나에게 여수고등학교에 대한 문제 중심 정보나 조언을 주고자 했을 때 나는, ‘내가 봉직하러 가는 학교에 일체의 선입견 없이 가고 싶다.’고 하였습니다.”라는 인상적인 취임인사를 들었을 때 벌써 조짐이 좋음을 느낄 수 있었다. 취임 후 그 분으로부터 두어 개의 교훈을 얻을 수 있었음은 나의 행운이었다. 위대한 침묵과 바로 지금 깨어있기이다. 취임 이후 그분께서 일관되게 보여주신 모습은 침묵과 사색, 그리고 말씀이 있을 때면 명료 간단하되 만근의 무게로 꽂히어 옴 등이었다. 매일 조석으로 관행되어지는 교직원 회의에서 교장선생은, “ 교감 선생님과 부장 선생님들이 하신 말씀은 곧 교장의 말입니다. 이 점을 유념해주세요.” 라고 한 마디 하시고는, 교감의 자리 옆에 적은 의자에 눈을 감은 채 쭈그리고 앉아 있는 것이 고작이었고, 1~2 주에 한 번 정도, 교감과 부장들의 말씀이 선생님들에게 심히 먹혀들지 않는다고 여겨지는 경우에만 긴 이야기가 아닌 몇 마디 말씀을 하시는 것이었다. 어느 날 교장선생님과 함께 하는 전 교직원 회식의 자리에 취미 생활이 무엇들이냐 하는 주제로 이야기들이 회자되고 있을 때 교장선생님은, “나는 사색하고 있는 시간이 제일 행복한 것 같아요.”라고 했던 말씀을 들을 수 있었는데, 그 분의 많은 침묵의 시간의 내용이 무엇인가를 알게 해주었다. 아무튼 교직원의 회의에서는 교장이 항상 지루하게 말을 많이 한다는 교육계 풍토 속에서 그 분의 침묵하는 모습은 나에게 평생의 교훈이 되어준다. 어느 날 교장 선생님의 침묵의 입이 열리면서,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우리 선생님들, 하루 24시간 중에 잠자는 시간 8시간을 제하면 16시간이 활동하는 시간인데, 16시간 중 선생님 역할 하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요? 학교에서 교안 작성하고, 가르치고, 학생들 생활 지도하고, 시험 출제 준비야 채점이야 가정 방문이야 특별활동 지도야 등등 시간에, 귀가해서까지 자기 시간을 갖기보다는 학생들 관계의 일이나 이야기로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적지 않을 터, 다 계산하면 활동하는 16시간 중 12시간은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선생님 인생의 4분의 3이 선생노릇을 하는 데 바쳐집니다. 만일, 만일에 말입니다. 선생 노릇하는 시간 동안 행복하지 못한다면 자신의 인생 4분의 3의 행복을 스스로 포기하는 결과가 되고 말겠지요?........”젊은 선생인 나에게는 가히 폐부에 스며드는 설법이었다. ‘그렇다, 자신이 종사하는 일이 무엇이든 그 일 자체에서 삶의 행복을 느껴야 한다.’ 라는 깨침이 각인되었고, 이 각인은 나의 인생 전반에 화이트웜으로 작용하고 있다. 노희원 교장선생님께 감사의 마음을 올린다. 나의 컴퓨터에는 <잊혀지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폴더가 있다. 우선 30여 분의 이름만 쓰여 있는 폴더이다. 다행히 이번에 <나를 키운 세상의 노래>라는 주제 아래 그 작업의 일부가 되어짐에 감사한다. 그 폴더가 어렵지 않게 채워져 갈 것 같은 조짐이 느껴지며 잔잔한 감동이 인다. 이러한 작업을 다른 분들께도 권해보고 싶다. 인생의 실박한 재산이 되어 줄 것이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