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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 | [특집]
책임과 권한의 경계 찾기, 막다른 골목에 서다
김회경(2004-01-28 10:44:52)
<특집> 한옥마을 민간위탁시설 책임과 권한의 경계 찾기, 막다른 골목에 서다 우진문화재단 수탁 포기, 무엇을 남겼나 글 김회경 문화저널 기자 전주전통문화센터의 운영을 맡은 우진문화재단(이사장 양상희)이 3년 계약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중도 하차함으로써 한옥마을 민간위탁 문화시설이 또 다시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 2002년 전주시로부터 전통문화센터의 경영권을 위탁받은 우진문화재단은 지난 12월 3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시설 위탁을 포기하겠다는 공식 입장을 전달, 1년 4개월(2002. 8월~2003. 12월)동안의 운영실태를 보고하는 것으로 수탁 여정에 마침점을 찍었다. 우진문화재단은 이날 '전통문화센터 수탁 운영 포기와 관련한 우진문화재단의 입장'이라는 문건을 통해 "만 15개월여 동안 지역의 대표적 문화거점이자 관광 진흥을 위한 교두보로서의 소임을 착실히 수행해 왔다"면서 "전주시가 시민들의 염원과 안팎의 기대를 모아 출범시킨 전통문화센터를 개관 1년 5개월만에, 그 수탁 운영을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된 데 대하여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전주시는 우진문화재단의 수탁 포기 결정에 따라 1년 2개월의 잔여기간을 채울 새 수탁자를 공모, 지난달 한국의집 KOUS 운영자이자 남산골 한옥마을을 수탁 관리하고 있는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을 우선협약대상자로 선정했다. 1월 1일부터 수탁 운영에 들어가는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은 지난 1980년 창립돼 대표적인 문화관광시설인 한국의집과 남산골 한옥마을을 운영하며 문화시설 운영의 노하우를 쌓아온 단체로, 전통문화에 대한 전문적 식견과 풍부한 경험, 공익목적의 사업추진 경력 등을 주요 강점으로 내세웠다. 이들은 전통문화센터 운영방향으로 전통문화도시 전주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문화공간, 전주 지역사회와 연계한 시너지 창출, 전통문화의 현대적 계승과 접합, 테마 사업 운영 등을 구상해 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입금' 정면 충돌…수탁단체 의무 어디까지인가 우진문화재단은 지역 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해 온 경력과 안정적인 재정능력, 기획 노하우 등에서 높은 점수를 받으며 전주 전통문화를 성장시켜나갈 유력 단체로 평가받아 전주전통문화센터의 수탁기관으로 선정됐었다. 그러나 개관 직후부터 시설보완 등의 문제로 전주시와 마찰을 빚으면서 감정의 골이 깊어진데다, 상호민간위탁을 통한 기대치와 일 처리 방식 등을 놓고 크고 작은 의견 차이를 보이며 틈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감정의 앙금을 씻어내지 못하고 상호 신뢰에 금이 간 상태에서 전통문화센터가 3년 계약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중도 하차를 결심하게 된 데에는 '전입금' 문제가 결정적인 도화선이 됐다. 지난 9월 전주시로부터 사업제안서 상의 전입금 문제가 제기됐고, 전입금 조항이 법적 의무사항이냐 아니냐를 놓고 법적 공방까지 벌이는 등 첨예한 갈등을 겪다 끝내 우진문화재단이 수탁 포기를 선언하고 나선 것. 전주시와 우진문화재단은 전입금 명목에 대해 각기 다른 법적 해석과 의도를 드러내면서 본격적으로 충돌했다. 수탁 심사를 받기 위해 전주시에 제출한 최초의 사업제안서와 '위-수탁 협약서'에 전입금과 관련한 명시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 이 같은 혼선의 원인이 됐다. 전입금 문제는 특히 새로운 수탁자를 만난다 해도 여전히 안고 가야 할 과제인데다, 한옥마을 내 다른 문화시설에도 파장을 몰고 올 것이라는 점에서 전주시 민간위탁 방식의 복병으로 등장했다. 우진문화재단은 최초 사업제안서에서 전입금과 관련해 "수탁 1차년도에는 각 시설에서 수익이 발생하면 자체시설에 재투자하여 질적으로 발전시키고, 적자시설은 민간협찬이나 재단 전입금으로 충당하여 수지의 균형을 맞춘다"(제안서 111쪽 재정운영계획)라고 명시하고 있다. 적자가 발생하지 않는 한, 전입금을 내야 할 의무가 없다는 것이 재단의 주장. 사업제안서에 비해 법적 효력이 강한 민간위탁관리 위·수탁 협약서에는 " '을'(재단)은 수탁사무의 처리에 있어 법령을 준수하고, '갑'(전주시)에게 제출한 사업계획서 등을 성실히 수행하여야 한다"(위수탁 협약서 제6조 2항)라고 명기돼 있다. 문제는 '성실히 수행하여야 한다'라는 애매한 표현이 책임과 권한에 대한 명쾌한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 전주시는 수탁자 선정시, 재단의 경제적 능력이 중요한 심사기준으로 작용했고, 재단 역시 재정능력을 타 수탁 희망단체에 비해 강점으로 내세운 것 아니었냐는 주장이지만, 재단은 수익에 대한 권한은 없고 손실 책임만 있는 불평등 계약에 '쌈짓돈'(전입금)까지 투자해가며 시설을 운영해야 할 필요가 있느냐는 주장을 내세웠다. 관의 지원은 적고 민간의 책임과 의무만을 강조하고 있는 전주시에 감정적 불쾌감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입장. 전주시 역시 관의 지원만을 기대하기보다는 '능력'이 되는 민간 문화재단이 지역 문화발전을 위해 어느정도 '성의'를 보여야 할 의무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중을 보이고 있다. 전주시와 우진문화재단이 법적 자문을 구한 변호사들의 의견도 각기 다르다. "시설 경영권을 갖게된 만큼 위탁에 따른 수수료를 재단 측이 전주시에 줘야 하는 게 당연하다"는 견해는 전입금을 내놓아야 한다는 쪽에 무게가 실린 해석. 반면 "시설 운영에 경영의 개념이 도입된 만큼 자본주의 논리에 맞춰 수탁 경영에 따른 수익금은 경영자가 취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의견은 우진재단 측에 유리한 해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전입금 조항이 제기된 시점도 문제가 됐다. 우진재단이 "수탁 2차년도인 2003년의 예산편성과 집행이 끝난 시점에서 갑자기 제안서의 예시조항을 문제삼아 재단의 전입금 납부 의무를 거론하는 것은 시기적으로 그 정당성을 잃은 주장"이라고 맞서면서 전주시 입장이 난처해졌다. 실제로 전주시가 1차년도 예산 집행 시에는 전입금 조항을 문제삼지 않아 당시 행정 지도와 감시를 맡았던 담당 공무원 역시 책임을 면치 못할 상황이기 때문이다. 전입금, 수탁단체 보호 위한 전주시의 '선의'였다 난처해진 전주시가 사태 확산을 막기 위해 우진문화재단 측에 협상의 여지를 갖고 물밑작업을 벌였음은 물론이다. 우진문화재단이 중도에서 수탁을 포기할 경우 수탁포기에 따른 위약금 손실 부분을 명시하지 않아 여론의 비판을 피해갈 수 없는데다, 당장 새 수탁자를 물색해야 하는 부담을 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같은 부담을 안으면서도 전주시가 전입금 납부를 지속적으로 요구한 것은 나름의 '선의'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전주시 문화관광과 조희숙 문화팀장은 "전입금 문제로 설왕설래하면서 양측 모두 에너지 소비가 너무 많았다. 담당 공무원이 바뀔 때마다 행정적으로 배려하지 못한 측면도 인정한다. 하지만 전주시 예산계나 시의회에서 수탁단체가 시 예산에만 의존해 시설을 운영하려 하는 것 아니냐는 인상을 받게 되면 결국은 수탁단체 이미지나 예산 확보에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수탁단체와 시설을 보호하려는 선의 이외에 다른 뜻은 없다"고 밝혔다. 우진문화재단 역시 전주시와 공방을 벌이는 동안 적잖은 상처를 받았지만, 운영 실무자들에 대한 인사권을 갖고 있는 만큼 수탁포기로 인해 일자리를 잃게 된 직원들에 대한 도의적 책임은 면키 어렵다는 지적이다. 전주시가 새 수탁자 공모 과정에서 운영 실무자들에 대한 고용승계를 가산점으로 추가하겠다는 복안을 내놓기도 했지만, 새 공모자로 선정된 한국문화재보호재단측은 현재 직원의 66%만을 승계할 계획임을 밝혀 일부 직원들의 실직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우진문화재단이 내부 직원들의 의견이나 이해를 구하지 않고, 재단 이사회의 일방적 결정만으로 수탁 포기를 결정한 것은 도의적 책임을 소홀히 한 것 아니냐는 비판. '수탁단체의 희생을 강요하는 정당치 못한 요구다' '수탁단체와 시설을 위한 선의다'라는 입장차이만을 확인한 두 단체는 좀처럼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법적 공방까지 벌이다 우진문화재단이 결국 지난 10월 전주시에 수탁포기를 알리는 공문을 보냄으로써 전주시나 재단 모두 '중도 하차'에 따른 불명예를 안게 됐다. 사업제안서나 협약서의 법적 구속력의 범위와 해석이 표면적으로 두 단체의 싸움을 판가름하는 결정적 단서가 될 전망이지만, 두 단체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민간위탁' 방식 내에서 책임과 권한이 누구에게 얼마나, 어떻게 부여될 것인지에 관한 기대치와 전망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재확인시키고 있다. 전주시는 문화관광산업의 미래적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문화 하드웨어를 늘려가고 있는 만큼, 민간의 능력과 협조가 불가피하다는 판단으로 민간위탁을 선택했다. 전통문화센터 역시 수탁을 맡은 우진문화재단이 자체의 기획력과 재정능력을 보다 적극적으로 투자해 줄 것을 기대할 수밖에 없는 입장. 반면, 우진문화재단은 경영권을 위탁받아 놓고도 경영상의 수익을 취할 수 없는 불평등 계약인데다, 제안서 제출 후 여러 여건이 달라진 점을 감안하지 않고 전입금만을 지키라고 요구하는 것은 책임만 있고 권한은 없는 온당치 못한 요구라고 일축하고 있다. 전주시와 재단 양측은 전입금 싸움을 법정으로까지 끌고 갈 것인지에 관해서는 전주시나 재단 모두 신중한 입장을 밝히고 있어 그 결과가 주목된다. 전통문화센터의 중도 하차는 '민간위탁' 방식을 추진하는 데 여러 시사점을 남겼다. 무엇보다 이번 사태의 남긴 가장 큰 후유증은 전주시와 민간 문화예술인 사이에 불신의 골이 깊어졌다는 데 있다. 전주 문화예술의 발전과 문화관광도시로의 도약이라는 공동의 지향을 갖고 있지만, 전주시와 문화예술인 사이에 파트너십과 신뢰를 잃는다면 그 목표에 도달할 수 없다. 더욱이 민간위탁 방식은 자치단체의 의지와 적극적 지원, 그리고 전문 문화예술인들의 지역 문화에 대한 공익적 마인드와 사명이 어우러질 때 빛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표면적으로 전통문화센터의 전입금 문제가 전면에 불거져 나왔지만, 공예품전시관, 한옥생활체험관, 전통술박물관 등 타 시설 수탁단체와 운영자들 역시 전주시와 미묘한 감정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여기에는 전주시의 지원과 민간의 노하우를 접목한 공익성과 효율성의 증대라는 민간위탁의 기본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실제 경영상의 우선순위나 전략을 세워가는데 있어서는 '동상이몽'을 품고 있다는 게 가장 큰 갈등 요인으로 잠복해 있다. 전주시는 여론과 의회의 압력을 무시할 수 없는 데다 행정의 본질 상 가시적 성과를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어서 관광과 수익을 우선 목표로 두고 있는 반면, 민간 운영자들은 민간문화예술인들의 성장 기회제공과 장기적인 문화발전 등을 앞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공무원과 민간인 사이의 사무 처리 방식 또한 감정싸움을 부추기는 요소다. 또 공무원 순환보직제로 인해 민간 운영자들을 대상으로 한 행정 지도나 방침이 자주 바뀔 수밖에 없어 민간 운영자들의 불만은 증폭돼 있는 상태다. 민간위탁 수행 과정에서 불거진 다양한 문제점과 마찰 요인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신뢰 회복과 열린 논의구조의 확보, 그리고 갈등 요소를 정교하고 구체적인 매뉴얼 정립을 통해 하나하나 풀어가야 할 것이란 여론이 높다. 이 같은 합리적 장치가 갖춰지지 않는다면, 전통문화센터 수탁자 교체 등의 소용돌이가 또 다시 되풀이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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