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1 | [문화와사람]
10년 사투 끝에 히말라야를 거머쥔 '그림자 사나이'
김회경(2004-01-28 10:42:11)
10년 사투 끝에 히말라야를 거머쥔 '그림자 사나이'
히말라야 14좌 완등한 산악인 한왕용
글 김회경 문화저널 기자
산악인 한왕용(38). 지난해 7월, 그는 히말라야 8000m 이상의 열 네 봉우리를 완등한 세계 열 한 번째 산악인이 되었다.
히말라야 14좌(해발 8000m 이상의 14개 봉우리) 완등은 모든 산악인들의 꿈이다. 그 꿈을 그는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10여년의 치열한 사투 끝에 마침내 이룩해냈다. 그에게 따라붙은 찬사는 인간의 한계에 도전해 그것을 이룩해 낸 한 인간과 그 웅대한 기상에 보내는 세인의 뜨거운 존경이다.
동료 산악인 사이에서도 그는 '히말라야 휴머니스트' '그림자 사나이'라는 명예로운 별칭을 얻고 있다. 그가 이끄는 원정대원 가운데 단 한 명의 목숨도 잃지 않은 이례적인 기록만으로도 그의 별칭은 빛난다. 앞에서보다는 뒤에서 묵묵히 대원들을 챙기다보니 자연스레 붙여진 '그림자 사나이', 그리고 K2에서 죽음과 싸우고 있는 어느 대원에게 자신의 산소마스크를 씌워 줘 뇌혈관 수술까지 받게되면서 얻은 '히말라야 휴머니스트'. 산악인으로서 그가 이뤄낸 대기록의 바탕엔 그렇게 따뜻한 인간애가 흐르고 있어 감동은 더 깊고 크다.
산은 포기하는 지혜도 가르친다
그가 근무하는 산악장비 전문업체 '에델바이스'에서 '자연인' 한왕용을 만났다. 좀처럼 이름이 입에 붙지 않아 애를 먹었는데, 왕(王)용(龍)이라는 예사롭지 않은 이름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마 함부로 불리지 않게 하려는 부모님의 전략(?)이 주효한 탓이었으리라. 이름 이야기부터 꺼내자 그가 껄껄 웃는다.
"하하... 일전에 동사무소에 갔더니 직원이 웃더라구요. 제 이름도 그렇고, 우리 아이들 이름도 대성(大成), 대산(大山)이거든요."
까맣게 그을린 얼굴에 멋대로 자라난 수염, 그 수염 끝에 매달린 고드름. TV에서 보았던 그 '험상궂은' 얼굴이 아니다. 히말라야 14좌 완등에 빛나는, 그 산악인 한왕용이 맞단 말인가? 예상밖의 해사한 웃음에 잠깐 주춤했다. 그리고는 안드로메다에 사는 이방인을 만난 듯 슬금슬금 찾아들었던 그 알 수 없는 긴장감도 눅어졌다. 14좌 완등 후, 근황을 물었다.
"회사 다니고, 요즘은 강좌도 나가요. 얼마 전에는 경제인들 모임에서 강의를 한 적 있는데, 그 쟁쟁한 CEO들이 제 이야길 진지하게 듣더라구요. 산에 오르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위기상황 대처나 조직 관리, 산 철학 등등 그런 이야길 했어요. 끝나고 나니까 신입직원 강의도 해달라고 하더라구요."
서른 여덟의 삶, 그리고 산악인으로 살아온 열 여덟해. 이미 자신의 삶을 장악해버린 산과의 인연은 좀 싱거운 우연이 불러왔다.
"대학에 들어와 우연히 산악부 선배와 술자리를 한 적이 있어요. 산악부 가입을 권하길래, 술기운에 그러마고 대답을 했죠. 술 깨고 나니까 후회되더라구요. 그래도 이미 뱉어놓은 말, 어쩌겠어요. 훈련이 어찌나 혹독하든지 1학년 때는 도망도 가고 그랬어요. 사회에도 학교에도 등수가 있잖아요. 대학 때 산악인으로서 등수를 매기면 저는 꼴등이었어요. 뺀질이에 요령만 피우고 다녔거든요."
우석대 85학번, 군산 출생. 간간이 뒤섞여 나오는 사투리가 편하고 구수하다. 14좌 등정의 대장정은 초오유 봉우리를 오르면서부터 시작됐다. 첫 번째 봉우리를 올랐을 때 기분이 어땠냐고 물었다.
"10년 전 이야기를 하라구요? 저, 기억력 별로 안 좋아요. 뇌수술을 네 번이나 했는데... 그냥 아무 생각 없었어요."
산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넙죽넙죽 질문을 해대는 사람들에 대한 일종의 '거부감' 같다. 설명할 수 없는 걸 설명하라고 하니, 답답할 노릇이었을 것이다.
"비행기 뜨는 높이가 대부분 8000m에서 10000m 사이라고 해요. 서울에서 제주도 갈 때는 5000m구요. 정상에 서면 그냥 어떻게 하면 안전하게 내려갈까 그 생각해요. 우리는 삶과 죽음 사이에서 도박을 해요. 죽음에 대한 공포는 늘 느낄 수밖에 없죠. 산에서 화(禍)를 부르는 건, 더 얻기 위해서 욕심을 내기 때문이예요. 그러면 한 순간에 모든 걸 잃게 되죠. 살아가는 것도 어디까지가 적정선이고 적당한지 정답이 없듯이 산도 마찬가지예요. 저는 욕심을 좀 덜고 적당한 선에서 물러나는 걸 잘 해요. 그래서 사고가 없었던 것 같아요."
산을 오르는 것은 짜릿한 성취감을 맛보기 위해서 만은 아니다. 산은 물러설 때 물러설 수 있는, 포기하는 지혜도 가르친다. 13좌 가셔브롬을 오를 때도, 마지막 14좌 브로드피크를 오를 때도 그는 정상을 눈앞에 두고 발길을 돌렸다. 손에 잡힐 듯한 달콤한 성취의 유혹을 물리칠 줄 알고 다음을 기약하며 좌절하지 않는 것, 산에 오르는 것은 삶을 살아내는 것과 너무도 닮아 있다. 그것이 또 산악인 한왕용의 특기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