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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2 | [문화저널]
12월의 문화산책
최정학 기자(2003-12-29 18:31:52)
이학문화예술상 수상한 박문규 할아버지 옛날부터 언어(言語)가 있는 곳에는 잡신이 범접하지 못한다는 말이 있어. 헌데, 죽은 이들은 언어가 성하던 곳에서 어둡고 적막한 곳으로 가는 거 아니겠는가. 상부소리는 망자들에게 '언어'를 풀어줘서 잡귀들이 달려드는 걸 막아주려고 해주는 것이야." 박문규 할아버지(78. 고창군 공음면). 그는 올해 '상부소리'로 이학문화예술상을 받은 주인공이다. 소싯적부터 목청 좋기로 유명했던 그는 40대에 이르러 주위의 권유에 못 이겨 상부소리를 배우게된 늦깎이 소리꾼이다. 그 뒤 30여 년 동안 망자들이 가는 길을 지켜줬다. 그에게 상부소리를 가르쳐준 사람은 동네 후배인 유동렬씨, 한 때 절에서 생활했던 유씨는 하산하는 길에 회심곡이 적힌 책을 가져와 박 할아버지에게 전수해주었다. "장사(葬事)지내는 일은 죽은 사람들을 보내는 일이기도 하지만, 남은 사람들을 위한 잔치기도 하지". 박 할아버지는 시끌벅적 꽃상여를 나르던 옛날을 회상하며, 장례문화가 점점 현대화 되가는 것을 안타까워한다. 요즘은 시골에서도 사람들이 직접 꽃상여를 나르는 일은 형식적으로만 할 뿐, 거의 대부분 장례차로 이동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가 진정 안타까워하는 것은 상부소리를 전수해주지 못하고 있는 것. 얼마 전부터, 목청 좋기로 소문난 이웃동네 사람에게 상부소리 배우기를 권하고 있지만, "그런 것을 뭐 하러 배우느냐"며 한사코 거절한단다. "언젠가 임실에 갔는데 방구(북)로 상부소리를 하더라고, 나는 필경(종)으로 하거든." 그는 상부소리는 지역마다 달라서 다른 지역 사람들과는 같이 주고받을 수 없다며, 자칫 공음 지역 고유의 상부소리가 사라지지 않을까 걱정한다. 판소리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서 우리 전통 문화에 대한 관심이 뜨거운 지금, 토속문화에 대한 관심 또한 절실한 대목이다. 명고수 가리는 최고의 경연장 제23회 전국고수대회 '일고수 이명창', '숫고수 암명창'이란 말이 있다. 판소리에 있어 고수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얘기다. 지난 11월 4일과 5일, 소리문화의전당 연지홀에서는 명고수를 가리는 제 23회 전국고수대회가 열렸다. 1981년 처음으로 열린 이 대회는 그동안 이성근·김청만·주봉신 등 명고수들을 배출해오며 명실공히 최고의 고수대회로 자리매김 했다. 올해 초 정부의 국악행사 통폐합 정책으로 대통령상이 취소되었다가 부활되는 진통 끝에 예년보다 5개월 정도 늦게 열리긴 했지만, 이번 대회에서도 명고수의 반열에 오르기 위 한 참가자들의 열기는 뜨거웠다. 한국국악협회 전북지회(회장 김학곤)와 KBS전주방송총국(총국장 오태수)이 공동추최한 이번 대회에는 대명고수부·명고부·일반장년부·일반여자부·일반청년부·신인장년부·신인청년부·노인부·학생부 등 총 9개 부분에 74명의 고수들이 출전해 그동안 갈고 닦아온 기량을 겨뤘다. 대통령상이 주어지는 대명고수부 장원은 전북부안 출신의 홍석렬씨(52. 전주시 전동)가 수상하였다. "고수대회의 가장 큰 심사기준은 박자의 정확성이다. 홍석렬씨는 그동안 수많은 명창들과 장단을 맞춰봤던, 경험이 많은 사람이다. 때문에 소리의 가락을 잘 이해하고 있어, 정 확한 박자와 적절한 추임새가 그 누구보다 뛰어났다." 여기에 북치는 자세 또한 예술가다운 면모를 지니고 있었다는 것이 배기봉씨(현 전주대사습놀이 보존회 이사장. 심사위원장)의 심사평이다. 대체적으로 이번 대회 출전자들의 실력 또한 예년에 비해 많이 향상된 것으로 평가했다. 특히 이번 대회에는 뛰어난 실력을 지닌 여성 고수들이 많이 출전한 것이 가장 큰 특징. 초등학생에서부터 청년부· 장년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여성고수들이 남성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머지않아 여성 명고수가 등장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했다. 하지만, 대회 운영상에 있어 몇 가지 문제점도 지적되었다. "대회의 시상내역이 너무 방대하다. 청년부와 장년부가 나뉘어져 있고, 또 이것이 신인부와 일반부로 세분화 되어있다. 이런 방대한 시상 내역 때문에 행사운영이 번거롭고 상금도 축소되는 폐해가 생기는 것이다." 배기봉 심사위원장은 "신인부·일반부·명고수부·대명고수부 정도로 통폐합시킨다면 훨씬 내실 있는 대회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소리꾼의 불친절(?)도 지적되었다. 소리꾼들의 정확하지 않은 내드름(판소리·산조·농악 등에서 한 악절을 시작할 때 제시하는 선율이나 가락) 때문에 고법에 익숙하지 못한 고수들은 제대로 시작하지도 못하고 탈락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밖에 기량을 보여주기에는 15분이라는 경연시간이 충분하지 못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초겨울의 길목, 그리운 노래들 전주시립교향악단 정기연주회 지난 14일 소리문화의 전당에서 전주시립교향악단 제 124회 정기연주회가 열렸다. 이번 연주회에서는 재일 동포 성악그룹 '아애(AE)'가 협연하여 특별한 관심을 끌었다. 아이를 사랑한다는 뜻의 '아애(兒愛)'는 재일 교포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의 미래를 도와줄 목적으로 도쿄에 거주하는 30, 40대 청년상공인들이 1998년 5월에 창단, 지금까지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코러스 그룹이다. 이들 음악의 특징은 민족적인 색채가 강하다는 것. 이번 공연에서도 '소방울 소리', '아버지의 축복', '황혼(재일작가 김정수 작사, 김정철 작곡)' 등 그들이 만든 곡뿐만 아니라, 북한의 가요와 민요부터 남한의 민중가요와 민요까지 민족적 색채가 강한 음악들을 선보였다. 특히 주목받은 작품은 '황혼'과 '임진강'. 어려움 속에서도 민족의 넋을 전하기 위해 애쓰는 재일교포 가수의 고단한 삶을 노래하는 '황혼'은 재일작가인 김정수가 노랫말을, '아애'의 대표인 김정철이 곡을 지었다. '임진강 맑은 물은 흘러흘러 내리고 물새들 자유로이 넘나 들며 날건만∼ 협동벌 이삭마다 물결 위에 춤추니 임진강 흐름을 가르지는 못하리라' 분단의 고통과 통일에 대한 염원을 노래한 북한가요 임진강은 관객들에게 뜨거운 감동을 자아냈다. 이밖에 이번 공연에서는 러시아의 민족성과 풍경, 정서를 가장 잘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서정서사시인이라고 불리는 가리니코프의 '교향곡 제 1번 사단조'도 연주되었다. 1997년 국제적인 명성을 자랑하는 러시아 국립 교향악단에서 동양인 최초의 수석 지휘자로 발탁되어 국내 음악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던 박태영이 지휘를 맡았다. '창극 - 다섯바탕 눈대목'전 창극의 새로운 ‘더늠’을 꿈꾸다 창극은 판소리를 주 소재로 노래와 음악, 춤이 빚어내는 종합예술이다. 판소리가 전성하던 시대에 소리꾼들은 변화하는 관객의 욕구에 맞춰 다양한 음악적 '더늠'을 추구해 왔고, 연극 등 서구문물이 유입되기 시작하던 1900년대에는 이를 토대로 창극이라는 새로운 무대예술을 탄생시켰다. 창극은 그 시대 소리꾼들이 할 수 있었던 형식적인 '더늠'이었던 것이다. 작년, 창극이 시작 된지 100주년을 맞아 대대적인 창극 축제를 벌였던 남원국립국악원에서 올해도 스케일이 큰 창극 한편을 올렸다. 감독 김무길·소리지도 유영애·음악지도 심상남·연출 지기학 외 국립민속국악원 단원들이 출연한 '창극 - 다섯 바탕 눈대목 전'이 그것이다. '눈대목'이란 판소리 중 최고 절정 부분을 일컫는 말. 이번 공연에서는 전설의 소리꾼 가왕 송흥록의 일대기를 중심으로 판소리 오대가를 다양한 형식의 창극으로 구성하였다. 지금까지의 창극이 기존 판소리의 줄거리만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던데 비해, 이번 작품은 송흥록의 일대기에 판소리 눈대목을 접목한, 이를테면 창극의 새로운 '더늠'을 추구한 작품이다. 모두 다섯 바탕으로 이뤄진 이번 작품은 '수궁가 중 토끼 화상 그리는 대목 - 소릿길 떠나는 송흥록', '춘향가 중 적성가와 방자 가 춘향 부르러 가는 대목 및 사랑가 - 독공', '흥보가 흥보 놀보에게 매 맞는 대목, 박타령과 돈타령 - 피를 세 동이는 토해야 참 명창이 되겠소', '적벽가 중 적벽강 불지르는 대목, 심청가 중 심청이 임당수에 빠지는 대목과 심봉사 눈뜨는 대목 - 가왕 송흥록' 그리고 '가왕의 노래' - 내소리 받아 가시오'로 구성되었다. 특히 마지막 마당 '가왕의 노래 - 내 소리 받아 가시오'에서 죽은 송흥록(황갑도 분)이 내지르는 귀기(鬼氣)서린 절규와 여러 배우들의 귀신 메아리는 관객들의 소름을 돋우기에 충분했다. "현재 공연되는 창극들은 연극인들에 의해 기획된 것들이 대부분이다. 때문에 창극에 있어 본질적 요소라고 할 수 있는 판소리의 특성을 살리기보다는 극적 장면이나 무대 연출 등 연극적인 요소를 강조하게 되어 창극보다는 가무극의 형태가 돼버리는 경우가 많다." 이남철씨(남원국립민속국악원 장악과)는 이번 작품은 그런 연극적 요소보다는 판소리에 중심을 두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내년에는 이런 맥락을 바탕으로 명창들을 초청하여 창극 눈대목 한바탕을 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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