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12 | [새책 및 새비디오]
[오빠의 탄생 ], <시카고>
문화저널(2003-12-29 18:07:54)
『오빠의 탄생』----이경훈 지음, 문학과 지성사 펴냄
한국 근대문학사 연구자인 이경훈 교수의 평론집. 독특한 제목부터 눈길을 끄는 이 책은 '오빠'라는 코드로 우리 문학에 반영되기 시작한 근대성을 포착한 '한국 근대 문학의 풍속사'라 할 만하다.
임화의 시를 비롯해, 이광수, 김동인의 소설 등 근대문학에서 자주 등장하는 '오누이'관계는 부모-자식의 가부장적인 질서를 해체하고 복종, 명령의 종적관계를 연대의 관계로 바꾸어 나가는 근대적 삶을 투영하고 있다고 작가는 지적한다. 작품의 내용뿐 아니라 <소년>이나 <청춘>처럼 변화된 잡지 제목은 근대를 이끌어온 주체의 변화, 계몽의 실천자로서 '청년의 탄생'을 웅변하는 것이라고.
작가는 '청년'이라는 울타리 안의 동지적 관계로서가 아닌 자유연애의 대상으로서 '오빠'의 등장도 우리 사회의 근대성을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이라고 주장한다. 근대소설에서 오빠가 '남녀의 연애를 표현하는 기호'로 작용하면서 평등하고 독립된 일인칭과 이인칭이 맺는 계약 구조로서 사랑의 약속이 기능하게 됐다는 지적은 사뭇 흥미롭다.
『랍스터를 먹는 시간』----방현석 지음, 창비 펴냄
소설가 방현석씨가 두 번째 창작집을 내놓았다. 이번 소설집에 수록된 중편 「존재의 형식」으로 올해 오영수문학상과 황순원문학상을 한꺼번에 수상했다. 「존재의 형식」과 표제작 「랍스터를 먹는 시간」은 오늘의 베트남과 한국 근현대사가 맞물려 있다.「랍스터를 먹는 시간」에서 랍스터는 자신의 고통을 끊어버리고자 하는 인간의 고독한 결단이 암시되어 있다.
베트남 주재 한국 조선소에서 일하는 건석에게는 베트남 혼혈의 이복형이 있다. 어린 시절 건석은 동네에서 '베트콩'으로 불렸던 형을 내내 부끄러워했다. 형은 공장에서 일하며 건석의 학비를 댔고, 파업 농성을 하다가 경찰의 강경진압 중에 숨졌다.
70, 80년대 노동운동 현장을 비장하게 그려온 방씨는 이번 소설집에서 절망이 거듭되는 상황에 얽매이지 않고 지난 세대의 악습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애쓴다.
『푸른 망고의 집』 ----데이비드 데이비다르 지음, 공경희 옮김, 문이당 펴냄
인도 남단에 자리한 푸른 망고 숲이 어우러진 마을을 무대로 도라이 가문의 3대에 걸친 운명을 세밀하고 기교 넘치는 문체로 그려낸 소설이다. 인도 작가 데이비드 데이비다르의 첫 작품으로 인도의 역사, 종교 등 문화적 토대를 실질적으로 그리고 있다. 웅장한 서사시처럼 펼쳐지는 도라이 가문의 이야기는 인도의 현대사와 연결되어 흘러간다.
독립운동의 시작, 마하트마 간디와 국민회의파의 출현, 세계대전, 마침내 새로운 인도가 탄생하기까지 19세기부터 20세기에 걸쳐 이어지는 굵직한 사건이 가족사의 배경으로 등장한다. 또한 인물들의 생생한 캐릭터와 남인도의 풍요로운 색채가 드러나는 이 작품은 인도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키기에 충분하다.
작가 데이비드 데이비다르(David Davidar)는 저널리즘 분야에서 일을 시작해, 현재 펭귄북 인디아 출판사의 대표로 있다.
『내 인생의 밥상』 ----원재훈 지음, 바다출판사 펴냄
시인이자 소설가 원재훈의 음식 에세이집. 어릴 적 방랑을 일삼던 큰아버지와 함께 먹었던 짬뽕, 영등포 사창가의 포창마차에서 만난 윤락녀와 기계국수 등 저자는 음식에 얽힌 과거의 추억들을 들려준다. 음식을 매개로 한 저자의 추억담 속엔 미덕처럼 유머와 따스함이 배어있다. 돈까스 한 번 먹어보지 못한 친구가 좋아하는 아가씨와의 첫 데이트에서 돈까스를 시켰다 일어난 해프닝은 배꼽을 쥐게 하고, 첫 원고료를 탄 선배가 한 턱 낸 떡볶이에서는 매콤 달콤한 떡볶이 한 접시에서 사람 살이의 훈훈한 인정이 묻어난다.
여기에 여러 문인들과의 일화도 흥미롭게 펼쳐진다. 곽재구 시인과 함께 5.18 묘지를 둘러보고 찾아간 광주의 허름한 식당에서 맛 본 갈치구이. 우리 삶의 근원에 가닿는 절박하면서도 간절한 음식 이야기에서 사람 사이의 온전한 교감과 따뜻한 인정이 흐르고 있다.
<시카고>
단조롭고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길 꿈꾸며 연예계를 동경하는 순진한 록시 하트(르네 젤위거), 나이트 클럽의 코러스 싱어로 일하던 록시는 착하고 헌신적인 남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이트 클럽의 사장과 절친한 친구인 프레드와 내연의 관계를 맺는다. 그가 단순한 장사꾼일 뿐이라는 것이 밝혀지고 스타가 되려는 꿈이 좌절되자 우발적인 살인을 저지르고 감옥에 들어간다.
매혹적인 시카고 최고의 보드빌 배우 벨마 켈리(캐서린 제타 존스)는 어느 날 여동생과 남편이 한 침대에 누워있는 것을 목격하고 두 사람에게 총을 쏜다.
이미 언론에 의해 희대의 살인자로 낙인 찍힌 벨마는 최고의 변호사 빌리 플린(리처드 기어 )을 소개받는다. 한편, 벨마와 같은 감옥에 수감된 록시는 우연한 기회에 빌리 플린을 만나게 되고, 록시의 사연에 흥미를 갖게 된 빌리에게 록시의 남편 아모스가 거액의 수임료를 제시한다. 빌리는 벨마 대신에 록시의 변호를 담당하기로 하고 이로 인해 야심만만한 두 여인의 운명은 완전히 뒤바뀌게 되는데….
<금발이 너무해 2>
하버드 대학교를 발칵 뒤집어 놓았던 금발 미녀 '엘 우즈'(리즈 위더스푼). 보스톤의 일류 법률회사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는 그녀는 하버드 대학 교수인 '에밋'과 결혼을 앞둔 예비 신부.
그런 엘의 행복을 깨뜨리는 초대형 사건이 터진다. 결혼식의 VIP 목록에 오른 애견 '브루저'의 생모가 동물실험 대상으로 화장품 회사에 잡혀간 것이다. 엘은 브루저의 생모를 실험실에서 빼오려다 실패하고, 결국 동물실험 반대 법안을 의회에서 통과시키기로 결심한다.
하버드 선배인 '빅토리아 러드' 하원의원의 보좌관이 되어 '브루저'와 함께 워싱턴으로 날아온 엘. 온통 핑크빛으로 차려 입은 바비 인형의 출현에 국회 의사당이 들썩이기 시작한다. 의원들의 부담스러운 시선을 받게 된 엘은 당당하게 동물 실험 반대 법안의 필요성을 역설하지만, 단번에 묵살 당하고 마는데….
그러나 여기에서 포기할 그녀가 아니다. 첫 번째 타깃인 보수 강경파 의원 '막스'에게 접근한 엘. 엘은 애견 브루스의 도움(?)으로 '막스'를 공략하는데 성공하고….
<굿바이 레닌>
동독의 열혈 공산당원이자 교사인 크리스티아네는 베를린 장벽 제거를 주장하는 시위대에서 아들이 끌려가는 모습을 보고 그 충격에 쓰러져 혼수상태에 빠진다.
그 후 8개월 후…. 그녀는 베를린 장벽과 함께 사회주의 동독이 이미 무너진 후 의식을 되찾게 된다. 아들 알렉스는 기뻤지만 그 기쁨도 잠시, 크리스티아네의 심장이 약해 조금의 충격이라도 받으면 목숨이 위험하다는 의사의 경고를 받게 된다.
이때부터 엄마를 위한 아들의 지상최대 거짓말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우선 엄마가 사는 아파트를 과거 동독 시절의 모습으로 되돌려놓는 것은 물론, 쓰레기통을 뒤져가며 엄마가 즐겨 찾는 구 동독 시절 오이피클 통조림을 구하고, 급기야는 엄마를 위해 동독의 발전과 서독의 붕괴를 담은 TV 뉴스까지 친구와 함께 제작하기에 이른다.
알렉스의 거짓말 시리즈가 매일 부풀려갈 무렵 엄마는 다시 위독해지고 알렉스에게 소원을 부탁하는데...
<아카시아>
오래된 아카시아 나무 한 그루가 인상적인 전원주택에서 '미숙'은 산부인과 의사인 남편 '도일'과 자상한 시아버지와 함께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다. 자신의 꿈이었던 직물공예 작업을 하며 일상의 즐거움을 누리던 그녀에게도 고민은 있었다. 결혼 생활도 어느덧 10년이 다 되어 가는데 그토록 기다리던 아이 소식이 없었기 때문.
남편인 '도일'은 '미숙'에게 입양을 제안하고 '미숙'은 결국, 고민 끝에 아이를 입양하기로 결정한다. 입양문제로 찾아간 보육원에서 한 아이가 그린 묘한 나무 그림에 매료된 '미숙'은 그 그림을 그린 '진성'이란 6살 난 남자아이를 입양하게 된다.
아카시아 나무와 대화를 나누는 아이, 나무를 엄마라고 부르는 아이... 천둥 번개가 치는 어느날 밤, '진성'이 갑자기 사라지고, 그 이후로 바짝 메말라 잎도 하나 없던 아카시아 나무에는 꽃이 피기 시작한다. 단란했던 가족들에게 밀려오는 끔찍한 일들은 걷잡을 수 없이 빠른 속도로 그들을 파멸로 몰고 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