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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2 | [건강보감]
문명의 발전과 복잡한 정서, 그리고 두통
천상묵 | 전주 호남한의원 원장. 천주교 양업회 회장과 전주시 한의사회 부회장으로 일하고 (2003-12-29 17:51:36)
오십세 초반의 유 계장님. 그는 요즘 근심이 하나 더 늘었다. 심상치 않은 몸의 이상증세를 느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심한 두통과 함께 온 몸의 무기력증과 간간이 얼굴로 열감이 치솟아 오르는 증상을 느끼는 것이다. 또한 심장박동이 불규칙하게 두근거림이 필시 중병에 걸렸음을 예감한다. 직장에서 정기적으로 하는 건강검진에는 정상으로 나오지만 큰 병일수록 나타나지 않는다는 직장 동료의 말이 더욱 근심을 더해주는 것이다. 두 딸과 아내에게 증상을 숨겨온 터라 6개월간 속앓이를 해온 것이며…. 얼마전 TV의 건강프로에서의 뇌종양에 관한 설명이 자신의 증상과 흡사했으며, 자신의 친척 한 분도 뇌수술 도중 세상을 떠났음이 근심에 어두운 그림자를 더욱 드리운다. 정밀검사를 권하는 동료도 있지만 병원 찾기가 두렵고 여의치 않다. 그와 처음 만난 것은 직장동료의 막무가내 손잡이에 이끌려 우리 한의원에 내원해서였다. 그는 전형적 소음인(少陰人) 체질이었으며, 내성적이고 보수적 성격을 지닌 대한민국의 성실한 공무원의 전형이었다. 뇌혈류 검사(T.C.D) 생혈액 검사 및 체열검사 등 세밀한 진맥결과 담궐두통(痰厥頭痛)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두통의 일반적 분류는 편두통형 혈관성 두통, 근수축성 두통(일명 긴장성 두통), 비혈관운동성 반응 두통, 혼합성 두통 등 대략 15종 정도로 나뉜다. 그가 뇌종양이나 다른 심각한 질병을 의심했던 질환은 한의학에서 담궐두통(痰厥頭痛)으로 분류하는 두통의 대표적 증상이었던 것이다. 여성의 전유물로 여기던 두통이 그에게 있었던 이유는 여성의 상징적 질병인 홧병(火病)이 또한 그 원인이 되었다. 문명화되면서 실질적 인간의 정서는 복잡해진 세태의 한 단편이라 할 수 있는 현상인 것이다. 두 딸과 아내를 말할 때는 눈물을 글썽이던 유 계장님. 공무원 노조에 가입여부의 갈등과 과도한 업무, 병중에 계신 큰 형님의 뒷바라지, 재판중인 시골집과 선산, 학교 포기하고 백댄서가 되길 바라는 작은 딸과 서울의 사립대를 고집하는 큰 딸, 못난 남편 탓에 고왔던 손이 다 갈라진 초라한 아내의 모습 등이 그에게 무형의 혹을 머리에 솟게 한 이유였음을 그와의 대화에서 알 수 있었다. 중완혈(中脘穴)과 족삼리(足三里), 곡지혈(谷池穴)에 뜸을 뜨고 태양혈(太陽穴)과 풍지(風池) 등에 강한 자극의 침을 시술하였다. 한편으로는 반하백출 천마탕(半夏白朮天麻湯)의 처방에 몇가지 약물을 가감하여 약을 지어 주었다. 여러 차례의 치료 후 그의 두통은 소멸되었다. 퇴원하는 그에게 또 다른 두통을 조심하라고 당부하였음은 물론이다. 강함을 상징하는 남자, 강함을 이룩함이 최대의 성취였던 남자. 복잡해진 세상의 틀 속에서 어느덧 남자들은 길들여지고 삐걱거리는 톱니바퀴가 오늘도 남자들의 머릿속에 무형의 혹을 돋게 하는 것 아닐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나에게도 두통이 오는 듯 하다. 천상묵 | 전주 호남한의원 원장. 천주교 양업회 회장과 전주시 한의사회 부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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