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12 | [한상봉의 시골살이]
마음 속 불꽃나무 한 그루
한상봉 농부(2003-12-29 17:49:50)
집 옆에 작업실을 새로 짓게 되면서, 골방에 있던 책장을 옮기고, 작업실을 아늑하게 꾸미기 위해 소품을 정리하고, 벽에 그림도 몇 장 걸었다. 격자 창문 위에는 '뜰에 불꽃나무 한 그루'라는 이철수 님의 판화를 붙여 놓았는데, 아내가 무슨 부적(符籍) 같다면서 떼기를 요구하였다. 애초에 마음 속에선 부적 같은 효과를 기대한 것이 사실이었지만, 정작 아내가 그 의도를 꼭 집어 말하니, 난감했다. 나는 '마음에 불꽃나무 한 그루'를 지니고 살고 싶었다.
세상이 생각보다 냉혹하고, 내 마음이 인간관계와 생활고(生活苦)에 부딪쳐 어지러울 때, 이 모든 장애를 태워버릴 불꽃나무 한 그루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일종의 정화의 불길일 텐데, 묵은 상념을 불살라 버리지 않고서는 말끔한 얼굴로 매일을 새롭게 다시 시작할 길이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과거에 끄달려 살지 않고, 내일을 위해 지금 나를 조금은 가볍게 뛰어넘을 수 있는 어떤 힘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어머니 태중에서부터 시작된 천주교 신앙이 그동안 삶을 받쳐 주었다고는 하지만, 그걸 내 의식 수준에서 다시 정화하여 나만의 고유한 거룩한 에너지로 형상화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길 기대한다.
결국 그 판화는 내 책상 한 귀퉁이에 올려놓는 것으로 타협을 보았다. 내가 책을 읽을 때나 글을 쓰거나, 차 한잔 마시며 멍청하게 앉아 있을 때, 그 불꽃나무가 어떤 감흥을 주리라 생각한다. 이젠 가을걷이가 모두 끝나고, 내일 모레쯤 할 예정인 김장만 담그고 나면, 길고 긴 겨울 안거(安居)에 들어갈 것이다. 처음 귀농할 때 이상으로 삼았던 '주경야독(晝耕夜讀)'은 실상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낮에 일한 만큼 저녁엔 쉬어야 하며, 낮에 함께 하지 못했던 아이들의 놀이에도 참여해야 한다. 그래서 겨울 빛이 서서히 다가오면, '주야독서(晝夜讀書)'를 꿈꾸곤 한다. 밤낮 없이 이른바 마음의 양식을 얻기 위해 씨를 뿌리고, 그동안 못 만났던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그 씨앗에 양분을 주고,
이윽고 봄빛이 여물면, 겨우내 수고했던 마음의 양식을 수확하여 봄 여름 가을 세 계절을 감당하리라 생각한다.
지난 한 주일 동안 서울에 있는 어느 수도원에서 지내다 왔다. 출판사업을 겸하고 있는 수도원에서 책 만드는 일을 돕다가 왔는데, 식사시간과 잠을 잘 때를 빼고는 꼬박 책상 앞에 앉아서 원고를 다듬었다. 이렇게 하루를 온전히 묵상하고 글을 쓰는 일에 바쳐 본 것은 참으로 오래간만에 맞은 경험이었다. 수녀들의 새벽기도에 참석하고, 그 수녀님들이 묵상과 일상을 매일같이 통합시키며 살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숙연해지기도 했다. 진지하면서 기쁘게 사는 방법을 그들은 터득하면서 살고 있는 것 같았다.
마을에 돌아와 보니, 다들 김장을 끝내고 언제한번 모여서 한바탕 놀아보자는 이야기가 들어와 있었다. 한 해의 수고를 이웃들과 모여 갈무리하자는 뜻일 것이다. 어른들도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놀이가 필요하다. 그 놀이를 통하여, 바쁘고 번거로운 생활 속에서 서로 매듭짓지 못했던 상처도 다독거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홀가분한 마음으로 겨울을 준비하자는 뜻도 담겨 있을 것이다. 마음 속 불꽃나무에 에너지를 주기 위해서, 필요한 장작을 모으러 가야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