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12 | [안영이노의 문화비평]
무엇이 좋은 청소년 문화공간인가
안이영노 | 연세대 사회학 석사와 홍익대 예술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연세대 사회학과 박사과정(2003-12-29 17:26:18)
무엇이 문제인가
현재의 청소년 문화공간이 지닌 문제점은 대략 네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는 정책적으로 교육내용이나 사람보다 공간 우선의 지원이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사람과 교육내용을 균형 있게 함께 키우진 못한 것은 지난 몇 해 동안 하드웨어만 있고 소프트웨어는 없는 정책방안이라는 비판에 직면하게 만들었다.
둘째, 청소년 문화공간의 위탁운영자들은 대부분 현실적 여건을 들어 공간운영의 애로사항이 있음을 지적한다. 강좌 프로그램에 치중한 공간운영이 두드러지며, 수익사업을 통한 재정운영의 불가피함으로 대관에 의지하는 청소년 수련관의 수입정책을 못 벗어나고 있다. 하지만 운영관리자들이 공간운영의 혁신을 꾀하는 것을 시급하지 않게 생각하는 경향은 외부에서 이 공간들을 바라보는 시선이나 기대수준과는 큰 거리가 있음이 밝혀지고 있다.
셋째, 이는 열악한 인력의 문제에 기인하며, 또 다시 이로 귀결된다. 지난 10년 간 새로운 세대가 등장하면서 청소년 문화의 수준이 발전한 것을 바탕으로 볼 때, 전문가에 의한 프로그램 기획과 교육이 필요한 시점이다. 가장 큰 문제는 공간의 설립목적과 각 지역별 특성, 그 공간의 고유한 목적사업의 특징 등을 지키지 못 하고 표준적인 운영방식을 지향하는 전술적 태도다. 프로그램이 분화하고 공간이 전문화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태도다. 따라서 앞으로는 공간의 방향성과 특성을 좀더 세목화 하고, 그 특성에 맞는 인력양성을 모색할 필요가 크다.
넷째, 프로그램과 인력의 문제로 인해 그 공간의 주인이자 주요 향유자인 청소년들의 공간에 대한 관심이 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희와 학습이 어우러질 공간이 부족한 한국의 상황, 달리 소비를 지불하기 힘들어지는 경제 불황 등을 놓고 판단할 때, 지금보다는 더 많은 청소년들이 문화기반 시설로 몰려왔어야 한다. 청소년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프로그램을 만들다 보니, 청소년 입장에서는 문화공간의 활용도가 떨어지고 특별한 소수만이 이용하는 것이다. 이는 한편으로 공간운영자들의 적극적인 마케팅과 홍보부족에서 오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고객의 눈높이에 맞추어 프로그램과 서비스를 개발하려는 연구자세가 부족한 데서 오는 것이기도 한다. 보통 청소년들이 이러한 문화공간에 대한 관심 뿐 아니라 기본적인 인지도가 약한 것이 대부준 지역에서 나타나는 일이다. 청소년 스스로에게 매력적인 공간으로 인식되지 못 할 때, 문화공간의 운영인력들이 이러한 욕구에 기초하여 총소년들에게 먼저 다가가야 한다는 의식을 갖지 못 할 때, 청소년 문화기반시설은 계속 '능동적인 소수'를 놓고 운영하는 안이함에 빠지게 된다. 한마디로 기획의 부재다.
국내외에 본받을 사례들도 많다
프랑스의 청소년 문화정책은 단순한 문화수용자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비판적 논술의 수준을 갖추도록 돕는다. 아마추어 창작자 수준의 체험을 통해 문화감수성을 높이며, 전통적인 의미의 예술문화를 넘어 대중문화와 실용적인 생활문화를 포함한다.
독일의 교육정책은 지역기반의 활동을 강조한다. 청소년들의 완전 자율공간을 강조하며, 시민운동적 분위기, 대안교육이 방과후 학습으로 결합하는 등 독특한 예가 많다. 독일의 사례는 기본적으로 민주도에, 관지원이 가능한 지방자치단체 구조를 갖추고 있다. 웨딩지역에서 운영되는 <후씨텐가의 청소년센터>, <팡케 모험놀이공원>, <소녀들과 청년여성을 위한 국제센터 메데아> 등은 모두 철저한 민간주도 프로그램의 대표적인 예다.
또 아헨 시의 청소년 프로그램인 <청소년 실업자조직>은 상이한 자금원에서 자금을 조달함으로써 상이한 능력을 가진 다양한 조력자를 만나고 청소년 프로그램의 전문성과 심도도 깊게 하는 전략을 쓴다. 사를로텐부르크 지역의 <고트프리트 켈러 김자지움>은 교과목에서 해결하지 못 하는 것을 수행학습하는 방과후 교육에서 대안적인 문화향수 프로그램을 적극 도입한다. 한편 <베를린 시중앙>은 청소년들이 직접 사유지를 점거하여 문화공간으로 사용하게 된 자율운영 공간의 대표사례다.
미국의 아트홀이나 대규모 문화센터도 그런 교육활동을 많이 한다. <뉴욕시티센터>, <링컨센터 교육예술기관>, <뉴욕심포니스페이스 프로그램> 등 전문예술단체가 운영하는 청소년을 위한 예술교육 프로그램이 많다. 또 역사, 수학 등 학교수업에 예술적 방식을 도입하여 창의적 표현을 증진하는 교육예술 프로그램을 지역학교와 연계하여 운영한다.
일본의 사례 중에는 부등교자와 탈학교 청소년을 위해 주민이 힘을 합쳐 시민운동의 형태로 만들어낸 대안학교 <도쿄슈레>를 들 수 있다. 또 청년 예술가들에 의해 만들어진 지역아트센터로 청소년 문화자치공간의 모델이 될 만한 <쿄토 아트센터> 역시 음미할 만 하다.
국내 사례 중에서는 <청소년문화공동체 품>이 운영하는 학교 CA활동과 연계한 연극제 사업 및 청소년 자치로 진행하는 지역축제를 들 수 있다. 또 <부천 복사골문화센터>내 청소년 수련관이 진행하는 것으로 동아리 자치활동에 도움이 되는 전문강좌 지원이 있다. 청소년 자치의 지역축제 기획자를 기르기 위한 장기간의 워크숍이 그 강좌의 한 예다. <서울시립하자센터>는 청소년 스스로 준비하는 문화기획 프로젝트들을 운영하고 있다. <다음세대재단>의 청소년 공모프로젝트는 청소년이 직접 프로젝트를 운영하도록 자금 뿐 아니라 전문가와 자문역 등 사람들을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이다.
청소년 문화공간을 활성화하는 길
위의 사례들과 우리의 문제점을 놓고 볼 때, 청소년 문화공간을 활성화하는 방안은 대략 다음과 같이 제안할 수 있다.
우선, 프로그램의 운영방식을 다각화하고 강좌 위주의 빈약했던 내용을 풍부하게 만들기 위해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형태로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 하나는 청소년 자율공간을 운영하는 것이다. 이것은 청년 작가들이 만들어 운영하는 지역 아트센터처럼 완전히 청소년들이 운영을 맡아 자치하는 공간이다. 다음은 청소년 스스로 문화제작을 할 수 있는 공방과 창작스튜디오를 운영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청소년들의 자기관리와 미래를 준비하는 프로그램을 준비해주는 직업체험 센터로서 청소년 문화공간을 운영하는 것이다. 단순히 문화향수나 문화제작 기술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이를 직업이나 장래의 일로 만들도록 지원하는 곳이라고 하겠다. 청소년들의 관심분야에 따라 동아리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인큐베이터 센터도 생각해볼 수 있다. 이곳은 시설만 제공되고 청소년들의 동아리 활동에 따라 결과물을 제출하는 동아리방 지원센터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단순한 교육강좌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청소년 스스로 학습할 수 있도록 돕는 정보지원센터의 형태로, 청소년이 원하는 분야를 찾아 탐구할 수 있도록 사람과 기술, 자료 등을 도와주는 기능을 위주로 한 자율공간이다.
두 번째 방안은 청소년이 문화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한 지역 내에 통합된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이다. 복지센터를 포함하여 도서관과 박물관, 문예회관과 문화원 등 지역기반 시설과 자치정부가 지원하는 협조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은 낭비 없이 한 청소년의 문화환경을 지원하는 데 있어 중요하다.
세 번째 방안은 시민참여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프로그램의 다양성을 보장하기 위해 공모에 의해 시민들이 청소년 프로그램을 직접 만들고 관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시민단체, 민간인 개인, 작은 청소년 단체들과 청소년 동아리에게 전적으로 프로그램을 맡길 수 있도록 하는 제도가 성립해야 한다.
네 번째는 인력 양성이다. 시민단체, 청소년을 기르고 발굴할 수 있는 사람을 기르는 체계적인 계획이 필요하다. 특히 청소년지도사보다는 문화공간을 경영하고 지역문화 속에 청소년을 연결시킬 수 있는 문화기획자를 기르는 것이 더 시급하다.
마지막 방안은 연계시설의 적절한 활용이다. 문화기반 시설, 학교, 복지회관 등 연계시설을 활용하여 청소년들이 활용할 수 있는 문화공간을 다변화하여야 한다.
청소년 문화공간이 지향해야 할 프로그램은 전문 예술교육은 아니다. 문화향수 기회를 폭넓게 제공하면서도, 청소년 스스로 관심을 갖게 된 것을 배우고 깨달아 결과물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을 통해서 전문화된 심도 있는 미래를 준비하는 일석이조의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이러한 것은 좁은 의미의 문화 개념을 벗어나 청소년의 관심과 삶에 일치하는 전일적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
문화예술 교육의 궁극적인 목표는 문화에 대한 비판적인 읽기를 바탕으로 청소년들이 스스로 창조적인 문화를 만들어나가는 생산소비자를 만드는 것이다. 이는 소비자였다가 점차로 생산자로 성장하는 젊은이의 모습을 가리킨다. 이를 위해서는, 자기 삶의 선택과 미래의 직업 등을 위한 관리를 도울 수 있는 정보지원이 교육의 핵심에 자리잡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