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12 | [저널초점]
순탄치 않은 행보, 합리적 원칙과 절차가 아쉽다
김회경 기자(2003-12-29 17:21:04)
민간에 위탁 운영되고 있는 전주시 한옥마을 문화시설이 위-수탁자 사이의 갈등으로 '수탁 포기' '법정 대응' 등 극단의 상황을 맞고 있다.
전주시가 정책적으로 교동·풍남동 근처에 형성한 한옥마을과 그 안에 들여놓은 문화시설은 전주를 새로운 문화관광도시로 끌어올릴 야심 프로젝트로 집중적인 관심을 모았다.
지난해 5월부터 전주역사박물관, 전주전통문화센터, 전주한옥생활체험관, 전통술박물관, 전주공예품전시관 등이 속속 개관하면서 새로운 인력들이 배치되기 시작했다. 전문가들의 경영능력과 노하우를 투입시킴으로써 시설의 경쟁력과 자립성을 높인다는 이른바 '민간위탁' 방식이 채택됨에 따라 희망단체의 공모를 받아 선정된 인력이었다.
그러나 한옥마을 문화시설의 민간위탁은 개관 이후부터 줄곧 순탄치 않은 길을 걸었다. 개관 1주년을 맞은 올해는 전주시와 민간 운영자 사이의 갈등이 극에 달했고, 일부 시설은 직원들의 대거 이탈로 파행 운영이 불가피한 상황을 맞기도 했다. 게다가 전주시와 수탁단체 사이에 법적 대응이란 극단의 상황이 전개되는 등 두 입장이 얽히고 설킨 채 곪은 상처를 도려내지 못하고 안타까운 행보를 보이고 있다.
전주시와 수탁기관이 지원 예산의 적정선을 합리적으로 도출하지 못해 예산에 대한 불만은 상존해 있고, 공무원-민간 운영자 사이에 서로 다른 업무 처리 방식과 정서 등으로 갈등의 골은 깊어질 대로 깊어진 상태에 와있다. 게다가 운영 중에 발생하는 사안마다 그 책임이나 권한이 불분명해 각자의 입장과 정서만을 앞세워 해결점을 찾아가고 있어 상호 신뢰에 금이 가기 시작한 지는 이미 오래. 이 때문에 '민간위탁' 방식을 백지상태에서 다시 합의해 가야 할 것이라는 지적과 위수탁자 사이의 책임과 권한을 규정하는 명확한 매뉴얼의 정립이 필요할 것이라는 여론이 높아졌다.
이같은 불협화음 속에서 최근 전주전통문화센터의 전입금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갈등은 회복하기 힘든 상태로 치달았다. 계약이 명시된 '위-수탁 협약서'대로 수탁자인 우진문화재단이 전입금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 전주시의 입장이라면, '위-수탁 협악서' 어디에도 그 같은 책임이 명기된 조항이 없다는 것이 우진문화재단의 입장. 전주시는 수탁자 선정시, 자체의 경제적 능력이 중요한 심사기준으로 작용했고, 우진문화재단 역시 재정 능력을 강점으로 내세운 것 아니었냐는 주장이지만, 우진문화재단은 수익에 대한 권한은 없고 손실 책임만 있는 불평등 계약에 '씸짓돈'까지 투자해가며 시설을 운영해야 할 필요가 있느냐는 주장을 앞세웠다.
마찰 끝에 우진문화재단이 지난 10월 수탁 포기를 알리는 공문을 전주시로 보내 공식적으로 입장을 정리했지만, 전주시는 협상의 여지를 남겨두면서 공식적인 입장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었던 상태. 위약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조항이 어디에도 없어 여론의 비판을 피할 수 없다는 점이나, 계약이 만료되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수탁자를 공모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11월 25일 전주시는 협상 재개를 접고, 수탁자 재 공모 결정을 내렸다. 전주전통문화센터는 3년간의 계약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운영 1년 2개월만에 '운영 불가'를 선언함으로써 민간위탁 방식의 효율성 문제에 또 한번 회의를 안겨주게 됐다.
공무원과 민간 사이의 '태생적 한계'는 극복될 수 없는 것인가. 신뢰의 문제는 이미 감정적이거나 정서적 측면에 기댄 '화해'만으로 풀 수 없는 먼 강을 건넜다. 이제 민간위탁에 관한 조례제정이나 구체적 매뉴얼을 마련하고,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원칙과 절차를 통해 그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