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12 | [문화와사람]
우리는 두드린다, 고로 존재한다
김회경 문화저널 기자(2003-12-29 17:03:59)
남성적인 이름에 공교롭게도 단원들 역시 온통 남자들뿐이다. 게다가 때리고 두드리는 악기를 다루는 남자들이니, 혹시 '마초' 기질이 숨겨져 있을지도 모를 일!
그렇게 이름에서부터 단원 구성까지 '동남풍'의 이미지는 강렬하고 남성적이다. 그런데 막상 그들을 대면하고서 '마초'라는 연상작용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지, 편견은 쉽게 무너졌다.
2030 세대들로 뭉친 타악그룹 '동남풍'. 동양사상의 심오한 깊이에서 나온 따뜻한 바람, 문화의 바람을 의미한다고 하니, 제갈공명이 예견한 그 '동남풍'과는 멀어도 한참을 먼 부드러운 바람이었던 것이다.
'동남풍'(리더 조상훈)은 척박한 토양에서도 한 눈 팔지 않고 한 길만을 뚝심 있게 걸어온 연주단체다. 변변한 후원이나 지원 없이 순수 민간의 힘으로 10년을 끈덕지게 버텨온 것도 그렇거니와, 무엇보다 음악적 지향이 건강하다는데 동남풍을 새롭게 보는 이유가 있다.
지난 1994년 결성해 다양한 시도와 모험으로 음악적 변신을 도모해온 '동남풍'. 10년 세월의 연륜을 쌓아오는 동안 가벼운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그들만의 자존을 지켜낼 수 있었던 건 호남 우도농악이 음악적 기반으로 든든히 뿌리를 내리고 있었던 덕택이다. 사물놀이와 풍물, 서사적 구조를 가미한 타악연주의 화려한 시도에 이르기까지 두루두루 젊은 감각을 놓치지 않았지만, 언제나 '동남풍'의 뿌리는 호남 우도농악에 있었다. '동남풍'이 지역이 배출한, 아니 홀로 성장해 음악께나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대견한' 단체로 인정받고 있는 것은 바로 뿌리에 대한 애정과 꾸준한 탐색 때문이다.
"동남풍의 기초는 당연히 우도농악입니다. 새 것에 대한 열정도 많지만, 무엇보다 우리 음악의 기초라 할 풍물굿을 어떻게 하면 풍성하게 하고 재창조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과거에도, 또 앞으로도 치열하게 헤쳐가야 할 과제입니다."
리더 조상훈(35)씨. '동남풍'의 창단멤버이자 실세(?)로 단체에 대한 자부심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청산유수의 달변에 음악과 문화에 대한 소신도 뚜렷하다. 다섯 살때부터 풍물소리만 들으면 밥을 먹다가도 뛰쳐나갈 정도였다는 동네 어르신들의 전언을 농담처럼 끄집어내는데, 장단이야 주고받아야 신명이 나는 법. 신동이란 말이 괜히 나왔겠느냐고 했더니, 한바탕 큰 웃음을 지어 보인다.
1994년 창단 공연을 치러 공식적인 결성은 그때라고 할 수 있지만, 1년 전부터 신중한 준비기간을 거쳤다. 조상훈씨를 비롯해 박종석, 진재춘, 배상철, 고남수씨 등이 참여해 대학 풍물패 출신들을 규합하고 풍물굿과 사물놀이에 대한 이론적인 학습부터 시작했다. 단원들 사이의 실력 편차는 오히려 서로에게서 배우고 익히는 긍정적인 자극제가 되었다.
창립 이후 10여년 동안 1500회의 공연에 20여개국의 해외 공연을 치른 만만치 않은 경력, 그리고 '동남풍'을 따라 배우고자 하는 전수자 그룹('打人', '차이' 등)의 탄생까지, 이런 식의 '문어발식 확장'이라면 뉘라서 시비를 걸 것인가. 오히려 이 든든한 연륜 뒤에 숨은 단원들의 고민이나 치열함에 마음이 쏠린다.
"아무래도 재정적인 문제가 가장 큰 어려움이었죠. 단원 한사람 한사람의 희생이 없었다면 유지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그 상황은 지금도 마찬가지구요. 단원들 사이에 음악적 충돌도 없지 않지만, 그건 고충이라고 할 수 없어요. 믿고 맡기면서 서로에게 신뢰를 배우고, 절충하고 조화를 찾아가며 음악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으니까요."
지역은 물론 전국적으로 타악그룹은 대중성을 얻어가고 있고, 레퍼토리도 점차 화려하고 다양해지고 있는 추세. '동남풍'만의 차별화는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한 마디로 기본기가 충실하다는 겁니다. 단순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저희는 오로지 두드리는 것에 승부를 걸어요. 물론 다양하고 화려한 수사를 동원할 필요도 있지만, 타악 연주자라면 우선 연주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요. 저희 동남풍은 기본 베이스 위에 가랑비에 옷 젖듯 서서히 변화를 가져온 단체가 아닐까 싶어요. 그 기초는 동남풍의 정신이라고 할 수 있는 온고이지신에 있습니다. 옛것을 충실히 익히면서 거기에 장단의 색채, 느낌, 감각을 항상 달리하며 변화를 추구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가랑비에 옷 젖듯' 차분히 변화를 시도해 왔지만, 동남풍의 음악적 지평을 넓히게 된 계기가 있다면, 임창동 선생과의 만남을 통해서다. 두드림과 음악의 섬세함을 새롭게 인식하고 배울 수 있었기 때문.
하지만 사물놀이나 타악그룹의 현대적 시도가 발랄함이나 새로움을 넘어 자칫 전통을 왜곡하고 훼손하는 것으로 비판받을 수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조상훈 리더의 생각은 확고하다.
"우리들을 에워싸고 있는 환경이나 조건은 이미 변화하고 있어요. 삶에 진정한 문화가 담겨 있다고 보는데, 그것을 외면한 채 문화예술 행위를 하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해요. 외형적인 게 본질은 아닙니다. 외형이 변화한다고 해서 전통을 지키고 가꿔나가겠다는 정신이나 마음이 변한 건 아니니까요. 모든 예술적 행위는 표현의 자유 속에서 확장되는 것이고, 새롭게 시도하고 모험을 하는 것이 예술의 본질이라고 생각해요. 예술가들은 늘 치열한 자기와의 싸움을 해야 하고, 그 결과물이 대중에게 보여지는 것인데, 그 결과물을 취사선택하는 것은 대중의 몫이지 예술가의 몫은 아닌 것 같아요."
'동남풍'은 자신들의 무대가 재미있는 무대이길 바라고, 소리의 울림이 '옹골차게 가벼운' 것으로 표현될 수 있길 원한다. 재미있는 무대는 그렇다 해도, '옹골차게 가벼운' 소리는 또 어떤 경지란 말인가.
"타악에서 울림은 아주 중요한 건데, 가볍고 뜨는 듯 하면서도 옹골찬 느낌이 있어야 하거든요." 선뜻 이해할 수 있겠다는 대답이 나오질 않는다. 알다가도 모를 것이 예술의 경지가 아니겠느냐고, 어디서 주워들은 이야기를 갖다 부치고는 두루뭉실 결론을 내렸다.
"쇠를 만지면 가끔 사람의 살을 만지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그건 소통의 문제예요. 쇠와 연주자가 소통하고 있다면, 그걸 관객도 함께 느낄 수 있어요. 뭔가를 좋아한다면 자연스럽게 몰입할 수 있게 되고, 그 다음은 관객과 나 사이에서 소통이 이뤄지죠. 그리고 나서는 결국 나와 다시 대면하게 되는 것 같아요. 첫 마음으로만 가면 이룬다고 하잖아요. 마지막 단계는 나와 맞닥뜨리게 되는데, 그럴 땐 내가 쇠를 치고 있다는 의식조차 못 하게 되거든요. 악기와 내가 하나의 존재감을 느끼게 된다고 할까..."
땀에 젖은 머리카락, 신들린 듯한 두드림, 온 몸으로 울려오는 강렬한 비트, 시원한 파열, 그리고 통쾌한 카타르시스. 타악 연주자들에게서 종종 보게 되는 '몰아의 경지' 쯤은 이해할 수 있다. 그 몰아의 경지가 관객들에게 전이될 때, 조상훈씨의 설명처럼 연주자와 관객 사이의 '소통'이 가능해질 테니.
'동남풍'은 내년에 10주년을 기념하는 대규모 풍물판을 구상하고 있다. 또 한번 건실하게 서 있는 '동남풍' 10년 연륜의 백미를 감상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때쯤엔 '옹골차게 가벼운 소리'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