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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2 | [문화시평]
변화와 '일탈'을 향해 나서라
구혜경 객원기자(2003-12-29 17:00:34)
지금, 미술이 우리 삶에 어떤 가치가 있는가? 이런 질문을 맞닥뜨리면 창작활동을 하는 작가들은 어떤 대답으로 응할까. 그리고 다른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무엇이라 생각할까. 열 명 중 여덟, 아홉은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하나의 수단쯤으로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삶에 있어서 미술이라는 것이 없어도 아쉬울 것 없지만 또 없으면 서운한 것이 이것이다. 한때 전북에는 고정 콜렉터 부류가 형성되면서 작가들의 왕성한 활동에 활력을 불어넣기도 했다. 어떤 형식으로 지원이 되었든 크고 작게 이루어진 움직임들은 나름대로 자리를 잡아가는 상황이 되었으나 이것도 옛말이듯 경기침체라는 이유로 콜렉터들은 동면상태에 들어가 버린 실정이다. 1993년 전북판화가협회가 결성될 당시에도 미술시장은 꽤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래서 판화가협회는 매년 상반기에 '생활 속의 판화전'과 하반기 '전북판화가협회 회원전'을 치르면서 협회 기금을 마련하여 운영하여 왔다. 전북 판화인구의 저변확대와 활성화라는 취지로 만들어져 자본력까지 갖추게 되니 꽤 순조롭게 운영이 되는 듯도 했다. 거기에 1998년 '전북판화공모전'-3회에 그치고 말았지만-까지 만들어 판화작가의 육성이라는 바람직한 모양새도 보여주었지만 그렇게 10년을 지내오면서 현실의 반응은 점점 싸늘하게 식어 가는 상황이다. 이것은 판화가협회만의 체감은 아닐 것이다. 미술시장 전반에 걸친 영향으로 작가들에겐 더욱더 높은 현실의 벽으로 내몰리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라는 문제는 작가 개인이 고민하기에는 여전히 역부족인 듯 싶다. 이에 전북 판화가협회가 결성된 이후로 지금까지 활동의지를 보여주면서 협회 자체든 작가 개인이든 고민한 흔적들을 진단해보고자 한다. 전북판화가협회가 힘을 잃어 가는 첫 번째 이유는 판화에만 작업열정을 보이는 작가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대부분 판화가는 서양화를 전공하고 거기에 부전공식으로 기법을 익혀 서양화의 한 부분처럼 활동하는 작가들이 많다. 그렇다보니 인식 자체에서도 서양화의 일부분일 뿐 독립된 회화로서의 인식이 잡히지 않는다. 이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도 마찬가지로 판화작업에만 주력하는 작가는 거의 없고 대부분 다른 생업에 종사하거나, 작업활동을 하는 작가더라도 캔버스 작업에 열중하는 작가들이다. 이것은 참여하는 작가들 스스로가 적당히 한 발을 빼고 있는 형상이 아닐 수 없다. 물론 현대미술에서 작가들이 어느 한 장르에만 국한된다는 것 자체가 무리일 수 있지만 그만큼 집중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두 번째는 의식구조의 변화가 필요하다. 판화는 우리가 알고있는 판화지에 목판, 동판, 석판, 실크스크린 기법으로만 보여질 수밖에 없는지 궁금하다. 판화 고유한 기법이야 어찌할 수 없다지만 보여지는 방식이나 표현하는 시각을 변화할 수는 없는 건지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요즘 한지에 수묵화적인 느낌이 나는 판화도 보이면서 변화를 꾀하려 하지만 아주 작은 일부분일 뿐 대부분 판화는 그 틀이 정직하게 잡혀져 있다. 여타 다른 장르들이 빠르게 움직이고 변화하고 넓은 시각을 갖는 것에 비해 너무 느긋하게 그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현대미술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장르를 넘나드는 자유로운 표현이라고 할 수 있는데 반해 판화는 유독 정통을 너무 고수하는 경향이 있다. 한 번쯤은 일탈을 꿈꾸어도 괜찮지 않을까 한다. 세 번째는 판화작가 육성의 맥이 끊어져 있는 것이다. 현재 미술대학의 순수미술 전공학생들 중 판화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적다. 관심을 보이다가도 곧 사라지는 것은 지금 세대들이 편하게 작업하려는 성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다른 작업들도 마찬가지지만 판화는 더더욱 노동력이 투자된 만큼 성과가 나타나다 보니 자연스럽게 기피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그래서 지금 판화가협회가 공모전을 중단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전북이라는 작은 무대에서 공모전에 참여하는 아마추어 작가나 학생들의 부재현상이 크기 때문이다. 이것은 현실이 만들어 낸 순수미술을 기피하는 미술시장 전체의 당면문제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판화의 고유한 특성인 에디션으로 탄탄한 시장을 형성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콜렉터나 관람자들은 판화가 여러 장을 복제할 수 있는 것 자체로만 예술성을 평가하는 시각이 있다. 물론 다른 순수회화가 가지는 유일한 고유성은 떨어지지만 판화가 가지는 나름의 예술성마저도 기계적으로 복제되는 포스터 개념을 가지고 있는 인식이 문제다. 그렇다 보니 미술시장에서도 낮은 가격으로 유통되고 있어 판화가 부재는 여러 정황의 악순환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다른 면에서 보면 대중들에게 파고들기에 좋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처음 전북판화가협회가 생활 속의 판화전을 보이면서 가졌던 초심이 판화인구 확대에 있듯이 작가가 제작한 작품을 손쉽게 가질 수 있다는 즐거움을 제공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마저도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지금까지 한 여러 얘기가 꼭 판화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이 판화전을 빌미로 전북미술 전반에 자리잡고 있는 안일한 태도에 대한 것이다. 이번 전시가 '전북 현대판화의 동향'이라는 거창한 제목으로 포장은 근사하게 되었지만 막상 그 속으로 들어가 보면 여러 가지 문제점과 허점이 많이 산재해 있음을 알 수 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일차적으로 시각적인 평범함으로 흥미유발이 안되고, 나열되어진 작품들은 여러 작가가 다양성을 추구한다고 하지만 표면적인 차이만 있을 뿐 비슷비슷해서 구분이 잘 되지 않는 아쉬움도 남는다. 단순히 전시를 보여주는 것에만 국한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보여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예를 들면 직접적인 이벤트성 참여나 그것이 안 된다면 판화의 여러 기법을 알려주는 정보제공이나 작품설명을 하는 간접적인 참여를 시도하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이러한 방식이 지속되면 점차적으로 판화인구는 확대될 것이고, 자연스럽게 단일 회화의 영역으로도 자리잡게 될 것이다. 그래도 전북판화가협회는 이번 전시에서 그나마 관심을 보이는 대학생들의 작품을 같이 참여시키고 있어 중단된 공모전 성격을 지속시켜보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아직은 제대로 형식이 만들어지지 않은 불안정한 상황 속에 전북판화의 미래가 놓여져 있지만 기성 판화가들 스스로가 여러 개선 방향을 모색하고 적극적인 자세로 드러낸다면 전북판화가 정착되고, 크게는 미술 전반에 대한 의식변화의 기점도 만들어지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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