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12 | [특집]
해설이 있는 판소리로 누린 ‘호사’
김순석 판소리 동호회 '더늠' 부회장(2003-12-29 16:47:26)
"누나! 판소리 공연 보러갈까?"
"너 판소리 좋아하냐?"
"좋아한다기보다 어우러질 수 있으면 좋겠다 싶어 짬이 나는 대로 가보곤 하지."
"좋은 취미인지, 애늙은이 되는 건지 하여간 네가 여유로워 보여 부럽다. 근데 TV에서 보는 판소리하고 직접 보는 것하고는 정말 너무 틀리게 다가오더라. 너는 왜 판소리를 좋아하게 되었냐?"
"판소리를 들으면 창자의 끼와 힘이 느껴지고, 깊이깊이 감추어져있는 우리네 한을 끄집어내었다가 도로 제자리에 어느새 갖다놓고 찡하게 돌아설 수도 있어서 소리판에 가지요."
"그래 가보자. 판소리의 한도 있지만 내 동생과 함께 하는 낙도 있잖니?"
남고산의 원만한 봉우리가 바라다 보이는 한옥 구들방 찻집에서 오누이는 차를 우려내듯 그렇게 서로를 이해하면서 다담을 마무리한다.
"판소리란 긴 이야기를 사람들이 운집해있는 다양한 장소에서 장단에 맞춰 소리로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 내용은 주로 일상생활에서 교훈이 될만한 내용(흥보가-우애, 심청가-효)이거나 시대의 흐름을 반영한 것들로 구성되어있습니다. 예를 들어 춘향가는 남녀의 사랑과 정절을 표현하기도 하지만 당시의 엄격한 신분사회를 조롱하면서 새로운 질서를 갈망하는 서민들의 애환을 담아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판소리는 인간 삶의 규범과 당대의 염원이 우회적으로 표현되었기에 오랫동안 전승될 수 있었고 이 점이 판소리의 음악적 예술성과는 또 다른 매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럼 심봉사 눈뜨는 대목을 들어보고 잠시 쉴 때 또 말씀드리겠습니다."
해설자 선생님의 구수하고 진지한 내용들이 한참 이어지면 대학원 전문과정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착각과 자부심이 들 때쯤 드디어 창자 소개가 이어진다. 이 때 명창들은 "이판이 씨다고 들었어요. 저도 웬만큼 한다고 하는디 막상 이렇게 가까운 자리에서 한쪽에선 가사를 비춰주고 눈은 똑바로 떠서 비교하시면서 마이크도 없이 허라고 헌께 많이 떨리네요. 그런디 모다 친정 식구같이 알고 헐랑게 조께 부족혀도 이해해주시리라 믿고 헐랍니다." 라고 하기도하고 감기가 들었다고 핑계 아닌 핑계를 대거나 적벽대전의 불지르는 대목을 할 때는 상태가 많이 안 좋으니 모깃불을 한 번 질러보겠다고 겸손해 하시면서 첫 아니리를 떼기도 한다.
아니리 때부터 연방 얼씨구를 외쳐대면 처음 옴직한 대학생들은 슬며시 취임새 넣는 아저씨를 쳐다보고 미소짓고 따라 해보려 하면서 그렇게 소리판은 열기가 더해간다. "허 북도 잘 친다. 물 마실 때 박수치는 거요. 짝짝짝..."
이러한 호사는 전주 해설이 있는 판소리가 아니면 누리기가 힘들다고 본다. 그것도 일주일에 두 번씩 정기적으로 판이 서고 내로라하는 대명창들이 수시로 방문하는 것을 보면 분명 전주는 소리의 고장이요 국악의 수도라 할 만하다. 특히 11월 초에 유네스코에서 판소리를 세계무형유산 걸작으로 지정했다는 사실은 우리 선조들의 삶의 철학이 배어있는 놀이문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공인되었음을 의미하는 것 아닌가? 너무도 반가운 선물이다.
따라서 판소리와 국악계는 온 세상에 다시 태어났으니 자부심을 갖고 명창 명고수들은 더욱 정진하시길 바란다. 각 보존회들은 국내 경연대회 상장으로 세계유산을 사적소유화하고 객관성이 없다는 시비가 일지 않도록 좀 더 노력하신다면 많은 사람들이 놀면서 동양의 근본윤리를 깨닫게 될 것이고, 남 서운하지 않게 하면서 행실을 바로잡는 판소리 문화가 대대로 이어지리라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