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12 | [특집]
창극의 가능성을 주목하는 이유
김정수 | 전북대를 나와 우석대에서 ‘해방기의 희곡 연구’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90년(2003-12-29 16:40:45)
무엇이 창극인가?
언젠가 국악뮤지컬 정도로 분류될 수 있는 작품을 쓰고 연출했을 때, 한 후배에게 관극 소감을 물었다가 이런 대답을 들었다. "글쎄요. 창극도 아니고, 뮤지컬도 아니고…" 최근에는 무대지원사업으로 공연된 한 작품을 두고 어느 언론에서 "뮤지컬이 아니라 창극이더라"는 표현을 평가의 말로 사용했다.
이 두 예를 앞에 드는 이유는 창극의 정의, 혹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이미지에 관한 이야기부터 시작하기 위해서다. 앞은 연극인이고 뒤는 언론인이라는 점에서 비교적 전문적 식견을 갖춘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이처럼 전문가들 사이에도 용어가 통일성을 잃고 제각각 사용되고 있다는 점을 우선 강조하고 싶다.
창극이 무엇일까? 한마디로 판소리를 극화한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가장 간결하고 명쾌하다. 더 이상 논란의 여지도 없어진다. 하지만 이는 가장 협의의 창극일 수 밖에 없다. 이런 논리로는 이 세상의 창극은 다섯 작품밖에 되지 않는다. 그 중에서도 적벽가는 요즘들어 거의 작품으로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이 이외의 창극은 없을까? 아마 많은 사람들이 동조하지는 않을 성 싶다. 한 단어가 상징하고 의미하는 개념은 시대와 공간에 따라 변한다. 백 년 전 창극의 정의와 현대 창극의 정의는 달라질 수 밖에 없고 달라져야만 하는 것이다.
개화기 이후, 한국연극사의 중요한 전환을 창극이 맡았다. 처음으로 판소리가 무대화되면서 지금의 창극으로 발전하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종래의 1인 입창이던 판소리를 각각의 배역으로써 분창하는 연출 형식으로 진보함으로써 연극적인 배역과 분장이 다양해지면서 서구의 근대사실주의 연극의 모습을 갖추었다. 일단은 판소리의 사설과 가락을 그대로 살려서 부르는 <창극 춘향전>, <창극 흥부가>, <창극 심청가> 등의 판소리계 창극이 우선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대본을 새로 짓거나 구전된 이야기에 판소리 가락에 얹어 부르는 창작 창극이 있으니 <장화홍련전>, <만리장성>, <햇님 달님> 등, 일제 이후 만들어진 수없이 많은 창극들이 여기에 속한다. 이들 작품에 삽입된 노래들은 상당부분 판소리에서 추출된 소리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가사와 작창이 보이는 새로운 유형의 창극들이다.
그런 점은 현대에도 마찬가지여서 최근 전북에서 창작된 <비가비명창 권삼득>이나 <그리운 논개> 역시 새롭게 창작된 가사에 작곡과 작창된 작품들로서 의견의 여지없이 창작 창극이라고들 부르고 있으니, 창극은 분명 판소리 다섯바탕을 벗어난 곳에도 존재하는 셈이다. 그러므로 창극은 판소리 뿐만 아니라 판소리형의 소리, 또는 한국음악을 근간으로 하는 음악극으로 확대 정의함이 가장 현대적인 해석이라 할 수 있다.
창극과 뮤지컬, 혹은 오페라?
흔히 창극을 한국의 뮤지컬, 혹은 오페라로 표현하면서 서양음악극과 비교한다. 뮤지컬은 뮤지컬 코메디, 또는 뮤지컬 플레이의 약어로 19세기 미국에서 생겨났으며, 그 근원을 유럽의 대중연극, 오페라·오페레타·발라드 오페라 등에 두고 있는 공연형태를 말한다. 즉 19세기 미국에서 성행한 해학적인 희극에다, 유럽에서 발달한 오페레타를 조화시킨 것이 뮤지컬인 셈이다.
20세기 들어 미국인의 꿈과 향수를 제재로, 미국의 민요와 흑인음악의 멜로디, 그리고 리듬을 적극 수용하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는데, 그런 의미에서 미시시피강을 내왕하는 쇼보트를 무대로 인생의 애환을 그린 <쇼보트>(1927)는 오늘의 뮤지컬 기초라 부를만 하다.
이후 <나는 너를 위해 노래한다>(1931), <포기와 베스>(1935), <회전목마>(1945) <남태평양>(1949) <왕과 나>(1951) <사운드 오브 뮤직>(1959) 등이 제작되면서 미국 뮤지컬의 전형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미국 뮤지컬이라고 모두 가벼운 것은 아니었다. 인종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1957), 유대민족의 애환을 그린 <지붕 위의 바이올린>(1964) <라만차의 사나이>(1965)나, 베트남 전쟁을 반영하여 히피의 생태를 그린 록 뮤지컬 <헤어>(1967) 등은 나름대로 대사회적 발언을 음악에 실어 전달하기도 했다.
1970년대에 들어와 줄거리다운 줄거리가 없는 <코러스라인>(1975), 로큰롤에 의한 <그리스> 등이 뮤지컬의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으며,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
타>(1970), <에비타>(1978), <캐츠>(1981), <스타라이트 익스프레스>(1984), <오페라의 유령>(1986) 등의 브로드웨이 뮤직이 넓어진 세계시장을 공략하며 대성공을 거두었다.
같은 음악극이지만 오페라는 그 근간이 전혀 다르다. 크게 오페레타나 뮤지컬과는 다음 두 가지 조건을 구비해야만 한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갖는다. 첫째, 16세기 말에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음악극의 흐름을 따른 것. 둘째, 대체로 그 작품 전체가 작곡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 즉 모든 대사가 노래로 표현되어야 하는 것이다. 간혹 예외가 있어서 징슈필 계열의 <마적>이나 <마탄의 사수>, 민속 오페라 계열의 <팔려간 신부>, 오페라 코미크로서의 <카르멘> 등은 노래 아닌 대사가 포함되어 있지만 오페라에 포함시키고 있다.
오페라는 복잡한 종합무대예술로 음악적인 요소는 물론이요, 문학 또는 시적인 요소, 연극적인 요소, 미술적인 요소, 무용적인 요소 등이 합쳐진 것인 만큼 매력도 큰 데 비하여, 자칫 작품으로서의 통일성을 잃게 되기 쉽다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 특히 음악적인 요소와 극적인 요소를 어떻게 조화시키는가, 또는 어느 편에 중점을 둘 것인가 하는 등의 문제는 지금까지 항상 오페라의 숙제가 되어 왔다.
다양한 무대 장치와 빠른 극적 템포, 주인공의 내면세계의 형상화를 기본으로 삼고 있는 현대극에 있어 창극, 오페라, 뮤지컬은 이제 외형적인 면에 있어서는 아주 흡사해졌다. 유일하게 음악적인 문제만이 이들을 구분케 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음악극으로서 창극
한국의 서구적 뮤지컬은 1950년대 말 드라마센터에서 막을 연 <포기와 베스>가 처음이었다. 그 후 <삼천만의 향연>(1962)과 <흥부와 놀부>(1963)를 공연이 있었고, 1966년 본격적인 뮤지컬이라 할 수 있는 <살짜기 옵서예>가 공연되어 많은 인기를 끌었다.
한국에서는 미국의 뮤지컬이 공연됨으로써 그 시작을 열었고, 수시로 미국에서 히트한 대형 뮤지컬이 수입되어 공연되었지만, 다분히 한국적인 정서와 주제의식을 갖춘 뮤지컬도 끊임없이 함께 했다. <꽃님이 꽃님이 꽃님이>(1967) <바다여 말하라>(1971) 창작 뮤지컬 <시집가는 날>(74) <아리랑, 아리랑>(1988) <아리송하네요>(1989) <그날이 오면>(1991) <꿈꾸는 철마>(1992) 등이 그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역시 브로드웨이의 뮤지컬이 아닌 창작 뮤지컬의 경우, 과연 뮤지컬이냐 아니냐 하는 논란이 생길 수 있다. 마치 창작 창극의 규정과 같은 운명인 셈이다. 그런 면은 오페라에서도 나타난다. 창작 오페라, 실험적 오페라에 붙는 '오페라'라는 수식어가 과연 합당한가, 라는 고민과도 같다. 물론 아직까지 오페라는 유럽 클래식 음악이라는 명확한 구분점을 지니고 있기에 용어 자체가 주는 유동성은 적은 편이다. 하지만 '뮤지컬'이라는 보통명사이면서 고유명사를 겸하고 있는 용어의 경우는 그 사용이 다소 혼란스러둔 것이 사실이다. '한국적 뮤지컬을 만들자' 라는 화두도 그 지향점이 불분명하긴 마찬가지다. 문제는 극이 아니라 음악에 있기 때문이다.
'한국음악을 통한 뮤지컬'이라는 관점으로 뮤지컬의 음악적 지평을 넓혀 생각할 때, 전북은 최근 10여 년 사이에 가장 독창적인 길을 걸어왔다. 판소리의 본고장이라는 특수성을 감안한다 하여도 뮤지컬 창작에 있어 한국음악의 활용은 기이하다 할 정도였다. 전북에서 해마다 새로 창작되는 뮤지컬은 예외없이 국악기로 연주되고 있는 현상은 타 지역에서 결코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현상이며, 한국적 뮤지컬이라는 전통확립에 한 단초를 제공해주는 현상이기도 하다. 이런 배후에는 몇몇 뛰어난 한국음악 작곡가들의 열린 사고가 큰 몫을 해냈다.
오페라 부문에서도 비슷한 현상들이 있다. 최근 전북에서 제작된 창작오페라의 경우 강한 국악적 영향을 드러내 보여준다. 오페라 <진채선>, <춘향>, < 하 노피곰 도 샤> 같은 작품들은 서양 악기와 함께 국악기를 사용하고 있으며, <진채선>, < 하 노피곰->은 아예 프리마돈나 자리를 판소리꾼에게 양보하기까지 했다. 역시 이것도 서양음악 작곡자이면서 국악적 이해와 관심이 높은 작곡자가 있음으로써 가능한 일임이 확실하고, 전북 지역 아니면 해낼 수 없는 일들로 평가되고 있다.
기본적으로 현대 창작 음악극에서 창극이냐, 뮤지컬이냐, 혹은 오페라냐 하는 논란은 해묵고 별 의미가 없는 것이다. 이 모두가 음악극이라는 이름으로 수용될 수 있는 것이라면 그 작품이 음악적 원천을 무엇으로 삼고 있는냐 하는 문제만 남을 뿐이다. 그런 시대에 창극이 있다. 더 이상 고리타분한 음악도 아니며, 노년 취향의 음악도 아니다. 현대 한국음악의 실험을 통한 자리는 그 이상을 넘어선지 오래다. 현대적으로 제작된 창극들은 초기 창극들과는 완연히 다른 모습들의 무대를 보여준다.
이제 창극은 새로운 한국적 음악극의 모습으로 다양하게 실험될 시간만을 기다리고 있다. 소극장, 중극장에 걸맞는 음악극이 많이 만들어지고, 새로운 뮤지컬 연주매체로서 한국의 악기들이 자연스럽게 사용될 때, 100년 역사의 창극이 유지해온 생명력은 비로소 그 소임을 다할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전북은 판소리 뿐 아니라 음악극의 중심에 서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