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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2 | [문화가 정보]
폭력의 시대, 희망은 있다
최정학 기자(2003-12-29 16:19:54)
스크린을 통해 드러난 진실들은 충격적이었다. "충격적이다. 걸프전이 내가 그동안 알고 있던 것 보다 얼마나 더 비도덕적이고 잔인한 전쟁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 전쟁의 후유증으로 고통받는 이라크인들을 보니, 답답하다." 걸프전의 이면을 집중 조명한 다큐멘터리 '감춰진 전쟁'을 보고 나온 이지선씨(24. 전북대 신방과)의 말이다. 영상을 통해 세상의 불합리를 폭로해온 전주인권영화제가 지난 11월 6일부터 8일까지 3일간 전북대 합동강당에서 열렸다. 전주인권영화제는 전북평화와인권연대·전북여성운동연합·전북민교협 등 시민단체가 공동으로 주관, 영상을 통해 국가와 국가, 국가와 개인, 혹은 개인과 개인간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구조적 폭력과 억압을 고발해 왔다. 8회 째를 맞는 올해의 주제는 "폭력의 시대..., 희망은 있다". 걸프전 당시 사용한 화학탄의 후유증으로 고통받는 이라크 민중들의 비참한 삶, 신자유주의에 따른 노동자 문제, 여성문제, 장애인 문제가 스크린 위에 펼쳐졌다. 상영작은 '활동가가 꼽은 족집게 다큐', '인간의 얼굴을 한 영화', '올해의 인권영화 걸작선', '뒤죽박죽 짬뽕무비' 등 총 네 개의 부문으로 구성되었다. 네 개 부분으로 분류하긴 했지만, 이들을 관통하는 것은 인간의 삶을 파괴하는 사회의 다양한 폭력과 이에 맞서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내기 위해 사람들이 어떻게 저항하고 투쟁하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는 것이다. 개막작은 '거북이 시스터즈'(자애여성공감 제작). 소아마비, 골이형성부전증, 그리고 척추만곡증과 저시력장애를 가지고 있는 영희, 영란, 순천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5년째 함께 살고 있는 이들 1급 장애여성들의 일상을 담담하게 그려, 장애인의 자유로운 이동권은 '특권'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누구나 누려야 할 '자연스러운 권리'임을 말한다. 폐막작으로 선정된 작품은 '광장을 지키는 사람들'(인터넷신문 참소리 제작). 석 달을 넘겨가며 현재 우리사회의 가장 뜨거운 화두가 되고있는 부안 핵폐기장 문제를 다뤘다. '생계를 접고 거리로 나선 주민들의 함성, 핵폐기장만 막을 수 있다면 몇 번이라도 삭발하겠다며 눈물을 닦지 못하는 아주머니들, 등교를 거부한 청소년들, 경찰의 무대철거로부터 광장을 지키기 위해 조립식 무대를 짜며 환한 웃음을 짓는 평범한 주민이었던 수배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왜 그들이 수배자로 전락하면서까지 정부에 대항하며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었는가를 말한다. 제작자와 직접 만나 이야기를 주고받는 '이야기 마당'은 가장 뜨거운 시간이었다. 아무래도 영상을 통해 보는 것보다는 현장의 생생함을 더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기지촌 여성들의 삶을 생생하게 증언한 '나와 부엉이'(기지촌여성선교센터 제작)의 기획에서 제작까지 직접 참가한 정혜진씨(26. 기지촌여성선교센터 회원)는, 촬영이 끝난 후 작품속 주인공들의 삶이 어떻게 변했는지 알려주기도 했다. 이밖에 이라크 전쟁과 부안방폐장 문제를 주제로 한 사진전도 열려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1996년 첫 회를 시작으로, 초기에는 인권영화제를 한다는 것 자체가 투쟁의 하나였을 만큼 어려운 상황을 딛고 지금까지 이어져왔다. 지금 인권영화제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것만해도 커다란 성과라고 할 수 있지만, 아직까지 사람들은 인권 문제를 그저 남 일로만 생각하고 있어 안타깝다." 이번 영화제의 홍보를 맡은 임재은씨(29. 평화와 인권연대)는 "영화제를 하는데 있어 정작 어려운 일은 제정부족 같은 문제들이 아니라 바로 이런 사람들의 냉소와 무관심이다"라고 토로했다. 우리 주위의 소수자들이나 약자들의 인권에 대한 무관심은 전주인권영화제가 넘어야할 또 하나의 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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