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7 | [문화저널]
여성과 문화
남성을 위한, 남성에 의한, 남성문제 제기
『일곱가지 남성 콤플렉스』(여성을 위한 모임, 현암사, 1994)
여성문학연구모임(2003-09-24 10:05:08)
그동안 여성운동 혹은 여성해방운동은 마치 남성의 영역을 여성들이 침범해 들어가려는 시도처럼 오해된 측면이 없지 않다. 이것은 여성들이 오랜 기간 동안 억압되고 빼앗겨온 자신들의 권리를 되찾고자 하는 다양한 노력의 결과가 사회. 경제적인 측면에서 여성들의 활동영역이 확대되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일 것이다. 즉 남성들만의 경쟁으로도 치열한 사회에 여성들까지 끼어들었다거나, 사사건건 따지고 들어서 대하기가 피곤한 여자가 늘어간다는 의식이 아직도 남성들에게서 일소되지 않은 것 같다. 그렇다면 왜 여성들이 자신의 자리를 되찾는 것을 남성들의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이는 것일까? 여기에 우리들이 남성에게 관심을 보이는 이유가 있다.
최근에 『일곱 가지 여성 콤플렉스』의 짝을 이루는 형태로 간행된 『일곱 가지 여성 콤플렉스』는 남성다움이라는 규준과 척도에 억눌려 있는 남성들의 삶을 여성의 눈으로 다시 보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고 쓰여졌다. '남성문제'에 대한 여성들의 관심은 남성은 여성의 적대자가 아니며 여성문제의 해결을 모색하는 과정은 곧 남성들의 건강한 모습을 되찾기 위한 노력과도 연관이 있다는 인식에서 출발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의 저술팀인 「여성을 위한 모임」은 개방형 질문을 포함하여 73개의 문항을 담고 있는 설문조사의 결과를 토대로 남성문제를 기술하고 있다. 여성 콤플렉스는 사회적으로 규정된 여성상에 여성들이 끊임없이 집착하는 과정을 통해서 형성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일곱 가지 여성 콤플렉스』20쪽 참조.) 그런가 하면 남성 콤플렉스는 사회적으로 규정된 남성다움에 대한 강박관념에서 발생한 것이다. 사내대장부 콤플렉스, 온달 콤플렉스, 성 콤플렉스, 지적콤플렉스, 외모 콤플렉스, 장남 콤플렉스, 만능인 콤플렉스는 현대 한국남성들의 다양한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이중에서 외모 콤플렉스와 만능인 콤플렉스를 통해서 현지 우리 사회의 남성들의 모습이 과거에 비해 변화(혹은 혼란)를 겪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미 우리는 『남성연구』(여성모임 사랑 지음, 나라사랑, 1993)에서 현대 남성들의 콤플렉스들을 확인한 바 있다. 두 책을 비교해 보면 남성 콤플렉스의 새로운 양상이 드러난다. 외모 콤플렉스와 만능인 콤플렉스가 그것이다. 산업사회로의 발달과정에서 기존의 남성다움에 새로운 항목이 추가되고 있다. 외모 콤플렉스와 만능인 콤플렉스는 이러한 요구에 부응하려는 남성들의 집착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여성들과는 달리 남성들은 얼굴이 못 나거나 복장이 허름해도 용인되던 시대는 지나갔다. 성공하는 비즈니스맨의 조건으로 적극성과 자신감에, 이제는 육체적 엘리트가 덧붙였다. 이런 경향으로 인해 외적인 이미지를 관리하는 남성들이 늘고 있으며, 남성에게도 외모 콤플렉스가 발생한다. 만능인은 후기 산업사회에서 이상적인 남성형으로 등장하였다. 만능인 콤플렉스란 직장은 물론이고 가정에서도, 심지어 취미 활동에서조차 완숙하고 유능한 인물로 성공하고자 하는 의식이다. 하지만 남성도 여성과 마찬가지로 인간이므로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완벽한 남성상을 획득하기는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그러다보니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좀더 유리한 조건에서 출세에 이르는 길을 단축하고자 하는 온달 콤플렉스도 발생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남성들의 고민이 생겨난다. 남자다운 체격과 남자다운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지식과 외모에 있어서 여성을 압도할 만큼 혹은 사회적으로 성공할 수 있을 만큼 혹은 사회적으로 성공할 수 있을 만큼 뛰어나야 하며, 장남 혹은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하며, 직장에서의 역할과 가정에서의 역할을 모두 잘 해내야 하는 이상적인 남성상, 이러한 남성상에 도달해야 한다는 혹은 도달하지 못 했다는 강박관념이 우리 시대의 남성들을 힘들게 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우리 시대의 남성은 오즈의 마법사처럼 엄청난 가면 뒤에 숨은 작고 약한 인간에 불과한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왜 남성들은 이러한 모습의 남성다움에 집착하는가? 한편으로는 사회적으로 규정된 남성다움을 체화하고자 하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여성에 대해 남성은 본질적으로 우월하다는 의식을 고집하는 것의 표현이 아니겠는가? 여성들이 '남성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이제는 남성들이 그간의 혹은 현재의 허울 좋은 남성다움을 벗고 함께 인간해방의 길에 서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함께 가기 위한 선결요건은 서로에 대한 이해일 것이다. 그 동안 여성문제의 원인과 그 해결을 위한 모색은 그럭저럭 이루어져 왔다. 하지만 남성 자신들의 보다 자유롭고 개성적인 삶을 위해서, 또한 여성해방을 위해서 꼭 필요한 남성문제에 대한 인식은 거의 전무한 상태이다. 이미 『남성연구』를 통해서 우리는 남성문제와 여성문제는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긴밀하게 맞물려 있는 것이며, 남성과 여성은 결국엔 함께 가야 할 반쪽임을 밝힌 바 있다. (『문화저널』 93년 8월호). 그렇다면 왜 우리가 또다시 유사한 이야기를 반복하는가?
『일곱 가지 남성 콤플렉스』는 남성문제에 대한 인식을 제안하는 출발점이라 보아도 좋을 것이다. 물론 우리가 이 책을 통해서 현대 한국사회에서 살아가는 남성들의 전모를 알 수 있다고 하기는 어렵다. 이 책은 설문, 결과에 대한 통계적인 분석에 따라 남성 콤플렉스를 유형별로 분류하고 있어 현대 남성들의 모습에 대한 단편적인 기술에 그치고 있다. 또한 여성들의 시각으로 남성의 삶과 의식을 '객관적'으로 본다는 것은 어느 정도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을 것이다. 보다 깊이 있고 폭넓은 남성에 대한 이해는 남성다움에 대한 '위대한 거부'를 하려는 '남성'에 의해서 가능한 것이 아니겠는가? 위에서 우리가 출발점이라고 한 것은 아직까지도 남성 자신의 손으로 쓰여진 남성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것이고, 이것이 우리가 남성문제를 반복하여 거론하는 이유이다.
흔히 남성들이 많이 변했다고 말한다. 실제로 과거처럼 권위만으로 여성을 통제하려 드는 남성이 줄어들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권위 대신에 또 다른 여성 통제의 기제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남성 콤플렉스의 다양한 면들이 이러한 의구심을 갖게 한다. 남성과 여성은 동등하게 천부의 인권을 가진 주체들임을 인정하지 않는 한 여성 통제의 기제들은 끊임없이 변화된 모습으로 만들어질 것이다. 현대의 남성들이 한편으로는 여성들에게 관대한 척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여전히 남성다움의 환상에 빠져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간절히 바란다. 이제 남성들이 그 이중성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노력을 스스로 기울여 줄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