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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7 | 연재 [여행유감]
내소사가 일깨워주는 현실의 소중함에 대하여
이순영의 부안 내소사
이순영(2019-07-17 10:59:46)

일찍이 마르쉘 푸르스트는 이렇게 말했다. “진정한 여행이란 새로운 풍경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가지는 데 있다”고.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것들을 보고 새로운 감각을 느끼는 것도 여행이 주는 훌륭한 묘미겠으나, 일상의 재발견을 통한 새로운 감각의 충전도 그에 못지않을 것이다. 또한 조지 무어는 “인간은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을 찾아 세계를 여행하고 집에 돌아와 그것을 발견한다”고 말했다. 

내가 내소사를 방문하고 느낀 것이 바로 그랬던 것 같다. 많은 생각과 고민 때문에 아침에 눈이 일찍 떠진 그 날, 그 날 아침에 해야 할 모든 일을 하고도 가라앉지 않던 기분에 복잡했던 나는 자연스럽게 어딘가 떠나야겠다고 마음먹었고, 자연스럽게 내소사 전나무 숲길을 다시 걷고 싶다고 생각한 건 어쩌면 결국 새로운 눈을 가지고, 나를 찾기 위한 여행이었을지도 모른다.  



내소사의 역사에 대해 간략이 말하자면 이러하다. 내소사는 백제 무왕 시기에 혜구두타 스님이 창건한 절로, 가장 번창했을 때는 대(大)소래사, 소(小)소래사까지 있을 정도였으나 화재와 임진왜란 때문에 모든 절이 전소된 이후, 인조때에 이르러 청민선사가 중건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소래사가 내소사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내소사에 가면 제일 먼저 날 반겨주는 것은 일주문과 전나무 숲길이었다. 일주문이란 본디 절을 방문할 경우 만나게 되는 첫 번째 문으로써, 절대적인 진리를 의미한다고 한다. 많은 생각이 들었다. 절대적인 진리란 무엇일까? 행복일까, 건강일까, 모두가 다른 대답을 내놓지만 그 모든 게 절대적인 진리는 아닐까 하는 생각부터, 애초에 현대 사회에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사람이란 없을 것인데 그 절대적인 진리에 가까워지면 그래도 지금 하는 고민을 벗어버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까지. 그런데 대체 지금 난 무엇을 위해 이렇게 아등바등 살고 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일주문은 그런 자신만의 절대적인 진리에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듯 우두커니, 전나무 숲길을 앞에 두고 서 있었다.
전나무 숲길에 들어서자 피톤치드가 코끝을 감싸며 시원한 바람이 느껴졌다. 사실 바로 이 느낌 때문에 다시 오고 싶었던 내소사였다. 가는 길에 한 번, 오는 길에 한 번 거쳐야만 하는 이 전나무 숲길. 절에 들어 갈 때는 마음과 몸을 차분히 해주고, 절에서 나갈 때는 새로운 감정을 만들어주는 이 전나무 숲길이 난 너무나도 좋았었다. 100년도 더 된 울창한 전나무들이 하늘을 보며 곧게 서 있었다. 길을 걸으면서 몸과 마음이 한발자국에 한 움큼씩은 정화되어 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길지도 짧지도 않은 10분정도의 전나무 숲길일 뿐인데 일상에 찌든 각가지 걱정과 스트레스가 날아가는 듯 했다. 머리가 맑아져 기분도 좋아졌다. 왜일까? 조금 더 생각해봤다. 이 전나무들은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보고 무수히 많은 고민들을 보고, 그것들을 대신 저 하늘 높이 가져가주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인가, 부처의 세상에서 곧게 솟은 전나무들이 더욱 듬직해 보였다.  
전나무 숲길 내내 작은 돌들이 쌓아진 돌탑들 또한 눈에 띄었다. 쌓을 수 있는 곳만 있다면 쌓아져있는 돌탑을 보니 다양한 생각이 들었다. 저 돌을 쌓는 사람들은 어떤 소원을 빌었을까 하는 생각부터, 저렇게 많은 탑만큼, 소원의 수도 많겠구나 하는 생각까지. 나 혼자만 세상을 살고 있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바보처럼 혼자 끙끙 앓는 고민을 많이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저 탑 위에 돌 하나를 놓으며 나도 돌탑에 내 고민과 소원을 빌어봤다. 그러면서 최대한 마음을 내려놓고 전나무 숲길을 걸었다.


다음으로 나오는 것은 사천왕문이다. 사천왕문은 마음속에 남아있는 작고 작은 안 좋은 것들마저 없애주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그리고 사천왕문을 지나고 나면 비로소 내소사의 전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뒤에 있는 암벽과 나무들이 내소사를 감싸고 있었고, 그때서야 아! 내소사가 이렇게 아름답고 포근하게 산에 안겨있구나. 과연 내소사를 창건한 혜구두타 스님의 안목은 대단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쯤, 소원이 써진 기와와 종이들이 보였다.
솔직히, 돌탑까지는 정겨운 느낌들이 강했다. 얼기설기, 되는대로, 점점 작아지는 돌들을 하나하나 쌓는 방식이 얼마나 정겨운가. 소원과 기원이라는 것 자체가 인위적이기는 하나 그걸 비는 방식 자체가 얼마나 다정한가. 그러나 기와에 써진 다양한 소원들, 가족의 무사안일부터 개인의 소원성취까지, 하나하나 읽고 있노라면, 나에겐 없는 고민들로 빼곡한 기와를 보고 있노라면 이상하게도, 내가 가진 현실에 대한 고마움이 샘솟기 시작한다. 남의 고통과 고민들을 통해 나의 현실을 위로받고자 함은 아니지만, 남의 소원과 기원을 통해 반대로 나의 상황을 다시 생각해보게 만들어주고, 그러는 사이 나의 현실에 고마움을 느끼는 것은 나 또한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인가 싶기도 하다. 그러면서 저 많은 소원들이 전부 다 이루어지기를 마음속으로 살며시 생각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주위를 둘러보면 이제 안보이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천년도 넘었다는 느티나무부터 시작해서, 보물인 고려동종, 그리고 눈을 들면 대웅전까지, 내소사가 주는 다채로움이 나를 반긴다.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약수터였다. 사람들은 약수를 마시면서 시원함을 말하고 있었다. 나는 절에 있는 약수 웬만하면 꼭 빠지지 않고 마시는 편이다. 특별한 이유는 없지만 왠지 건강해진다는 느낌과 함께 절의 물을 마심으로써 몸속까지 정화가 되는 느낌을 받는 게 좋아서 그렇다. 어렸을 때부터 가족과 산에 가면 약수를 마시곤 했는데 아무래도 그 때 받았던 시원함이 애초에 기본 값이 되어서 그럴지도 모른단 생각, 거기까지 생각하다보니 어느 덧 물 푸는 바구니를 받았다. 과연, 시원하다. 특별한 맛보다도 특별한 기분을 주는 약수라 생각하니 손에 들고 있던 생수가 부끄러워했다.


계단을 올라가 못하나 사용하지 않고 만들었다는 대웅전을 바라봤다. 불교신자는 아니기에 기도를 목적으로 간 것은 아니었고, 또 불교 건축양식이나 역사의 흐름에 따른 변화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초보자 수준이기 때문에 대단한 감상은 할 수 없었지만, 대웅전의 문살에는 국화와 문살이 있었고, 그 안에는 무시할 수 없는 세월의 흔적과 그 소박함이 주는 매력이 이 내소사의 진정한 보물이구나 하는 것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진정한 보물이 주는 편안함과 소박함, 정겨움을 보기 위해 사람들은 여기에 오는구나 하는 것도 잘 알 수 있었다. 
계단에서 앉아서 밑과 위를 천천히 바라봤다, 사진을 찍는 사람들부터 단체로 온 관광을 온 사람들, 그리고 암벽부터 나무까지 이 모든 것들이 평화롭고 하나의 조화를 이루고 있단 생각이 들었다.


내소사가 주는 이 고마운 선물들을 감상하고 천천히 시간을 내어, 마음속의 많은 고민들이 가라앉은 내가 선택한 것은 돌아가기로 마음먹은 것이었다. 내소사가 주는 자연의 소중함부터, 현실의 고마움, 그리고 약수를 보며 느낀 과거에 대한 향수까지, 그리고 계속해서 끊임없이 나는 나와 대화를 하며, 내가 가진 것들에 대한 고마움보다도 불평불만이 많았던 과거의 내 모습과, 여기서 정갈한 모습으로 기도하는 사람들을 보며 그 간절함에 대해서 반성을 했다. 돌아가면 하나하나 다시 세워나가야지. 그리고 내소사처럼 오래된 멋이 주는 사람이 되어야지 하고 생각했다.
돌아가는 전나무 숲길에서는 이미 나는 아까와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는 걸 느꼈다. 아침 일찍부터 나를 옭아매던 고민들로부터 단지 해방되고 싶었던 그 사람이, 이제는 다른 사람이 되어야지, 고민을 털어야지 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생각에 아, 사람의 편안함이란 결국 마음먹기에 달렸구나 하는 걸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준다. 전나무 숲길이 나를 평화롭게 해준다.
다시 한 번 마르쉘 푸르스트의 말에 공감을 해본다. “진정한 여행이란 새로운 풍경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가지는 데 있다.” 두 번, 세 번 생각해도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내소사를 다녀옴으로써 다시 한 번, 마음의 고민을 가라앉힐 수 있어서 구원을 받았다는 생각과 함께, 현실에 대한 반성과 감사함을 느꼈고, 그렇게 한 단계 성숙해지는 나를 발견한다는 생각에 다음 내소사 방문이 줄 “나”를 나는 더 기대해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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