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1994.7 | [문화저널]
작품과 나 우리 가슴에 남아있는 갑오년의 역사 「파랑새요」
김광순 전주대교수 음악과(2003-09-24 09:26:56)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 잎에 앉은 새야 녹두 잎이 깐닥하면 너 죽을 줄 왜 모르니 지난 4월 30일 전주 시청 앞 광장에서는 동학농민혁명 100주년 기념식과 기념대회가 열렸다. 내가 알기로 이 대회는 기념식을 중심으로 전야제, 식전행사, 식후행사를 민간주도의 범국민적 행사로 여러 계층의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숙고하여 기획한 일이었다. 100년 전 도탄에 빠진 백성과 나라를 구하기 위해 궐기했던 고귀한 선현들의 뜻을 기리고, 소중한 정신을 계승하자는 취지를 가진 행사였다. 전야제는「백 년 전, 백년 후」라는 주제를 표현하는 여러 장르의 예술분야의 공연이 있었고 기념대회에서는「바로서는 역사, 다가서는 통일」을 주제로 각양각색의 개성을 가진 다양한 예술가들이 폭넓게 어우러지는 한 판이었다. 이러한 자리가 아니면 쉽게 만날 수 없는 각지에서 모인 많은 사람들이 서로 연합하여 이 대회를 꾸몄다. 나는 뒤늦게 주최측으로부터 음악에 관한 몇 가지를 위촉 받게 되었고, 이 역사적인 큰 뜻을 지닌 행사가 혹시 나로 인하여 그르쳐지지나 않나하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 나에게 부여된 임무는 식전행사의 맨 처음「작곡 한마당」과 기념식 중의「축가」순서였다. 사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주제의 표현에 관한 문제보다는 행사 중의 프로그램 내용이 매우 다양하였으며 이 행사에 참석하는 관객의 취향 또한 도무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어떠한 종류-스타일-의 곡을 어떻게-연주형태-하여야 전체적인 흐름에 부합하면서도 이 행사의 뜻이 제대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일까? 또 다른 걱정은 임시로 가설된 야외무대에서 공연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한마디로 모든 사라들에게 이질감, 거리감이 들지 않는 형식과 내용의 음악으로 개방된 야외 공간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형태의 음악을 만들어야만 했던 것이다. 맨 먼저 무엇을 노래할 것인가를 다음에는 어떻게-연주매체-노래할 것인가를 생각하여 설정하게 되었다. 최종적으로 전체적 흐름과 관객(청중), 주제의 구체적인 표현을 위하여 국악관현악단의 반주에 의한 가사가 있는 성악곡으로 결정하였다. 이유는 어떠한 음악 형태보다도 듣는 사람의 가슴에 가장 강열하게 전달되는 장르가 성악이기에 그리고 시어에서부터 전달되는 정확한 느낌을 담보하기 위하여, 또한 우리 음악은 최소한 우리 민족에게는 누구를 막론하고 거리 없이 느낄 수 있을 것 같기에 국악 관현악단을 배치하였다. 그리하여 식전행사에는 동학혁명이후 일제에서부터 현대까지 그 정신적 전통을 이어주신 신 석정 시인의 '어느 지류에 서서'와 현재에 서서 그때를 회상하는 안도현 시인의 '서울로 가는 전봉준'을 노래하기로 하였다. 기념식의 축가는 '파랑새요'를 요사이 하는 식으로 편곡하기로 하였다. 이는 당시에 불리우던 노래들 중 가장 널리 사랑을 받으며 우리 가슴에 남아있는 유일한 곡이기 때문이었다. 옛 노래라 하여도 짜임새며 그 표현의 유려(流麗)함으로 보아 정말 어떻게 그런 곡이 있을 수 있을까? 단 4개의 음으로 간단명료한 구성이지만 그 음들이 고리되어 만드는 모습은 천의 얼굴을 가진 듯하며, 더욱이 그 상징성과 느낌의 다양함은 이루 다 표현할 길이 없다. 당일의 공연은 무사히 잘 치루어졌다. 짧은 기간이었음에도 도립국악관현악단의 열성적인 합주와 전북대학교 합창단의 정성어린 훌륭한 합창, 그리고 테너 김선식 님의 열창이 미흡한 곡들을 크고 빛나게 울려줌을 진심으로 감사한다. 오늘을 다시 생각한다. 사실 100년이라는 지난 세월이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를 지닌 우리 민족에게 그리 굉장한 시간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나간 100년을 돌아보면 우리의 지금 모습이 얼마나 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가를 새삼 생각하게 된다. 특히 우리민족에게는 지난 100년 동안 참으로 많은 시련과 아픔을 겪어 오늘에 서서 있다. 그때의 그 절규와 참담함이 아직껏 짓눌려옴에도 불구하고 어찌하여 파랑새는 100년 만에 울었는가? 또 100년을 기다려야 하는가? 나는 왜 이제야 동학의 노래들을 돌아보게 되었는지 반성한다. 우리의 음악은 아직도 한 시대의 문화속에서 그 시대를 대변하고 각성시키는 예술로 성숙되지 못하였다는 말인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