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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7 | [문화저널]
백제기행 시원한 부채바람에 실려 녹차한잔 제38회 백제기행
성원철 회사원 서울리보기획(2003-09-23 17:08:43)
미선골-가녀린 코스모스야 특산품인 부채를 만드는 미선골이라 한다. 처음 찾은 곳이 미선공예사인데, 합죽선을 전문으로 맹그는 엄주원 선생이 꾸려가고 있다. 불편한 몸을 추스르며, 잘 정리되지 못한 우리의 근, 현대사처럼 토막토막으로 설명하는데, 지금까지 줄곧 이일에 매달려 보낸 시간의 향기가 귀를 간질인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겪는 번뇌만큼의 공정을 거쳐야 하나의 작품이 나온다니, 어떤 사명감과 열정 없이 단 하나라도 맹글수 있을까? 값 싼 중국산이나 일본산과 다른 점이 바로 기술과 정성이 어울려진 품질에 있다고 한다. 두 번째로 찾은 전주토산품은 태극선을 주로 만드는 상공자원부 지정업체로서 '93엑스포에도 참가할 정도로 제조와 판매를 겸한 제법 규모 있어 보이는 업체이다. 오솔길을 따라 다음 방문처로 가는데 깡마르고 키 작은 코스모스가 골목 어귀 오른쪽에서 메마른 날갯짓으로 나를 맞는다. 잠옷차림으로 쉬고 있던 방춘근 선생이 허둥대며 바지를 주워 입으면서 일행 앞에 선다. 해방 후 작고한 고사동의 한경필 선생으로부터 일을 배웠다는 그는 많은 제자를 두었으나 50여명의 식솔들은 이제 다 떠나고 가족들과 가내공업으로 근근이 맹글고 있단다. 전주팔경이 그려진 작품과 백선을 보면서 설명을 듣는데, 서있는 마루 안쪽 방 맨 구석별에는 거무데데하게 곰팡이가 피어 있고, 가운데 창문 밑에는 헤어진 벽지를 배경으로 더욱 화려한 금색 괘종시게가 무겁게 바늘을 돌리고 있다. 마루 오른편 끝에는 처마까지 맞나온 커다란 냉장고가 위엄스럽게 버티고 있다. 선생은 막 떠나는 일행 가운데 공순도 선생께 태극선 하나를 선사한다. 비슷한 연배라 영감님이라 부른다면서 씁쓸해한다. 다정다감한 선생의 세파에 찌들린 냄새가 나를 사로잡는 건 왜일까? 일행이 골목 어귀까지 노부부의 배웅을 받는데 오른편으로 염주꽃이 잘 가꾸어져 있다. 왼편에선 들어갈 때 보았던 코스모스들이 가슴을 두드린다. 눈물이 핑 돈다. 잠시 머언 하늘을 쳐다보며 눈물을 달랜다. 차라리 풀들이 어울려 있으면 덜 목마를 텐데...깔끔하게 가꾸어진 황토 바닥이 오히려 비정하게 느껴진다. 꼬옥 끌어안고 싶어 가녀린 코스모스야 조금만 기다려봐. 그러잖아도 어제 엄마가 비가 좀 와야 한다고 하셨어. 그러니 너무 슬퍼하지 마. 오목대에서 화개장터까지 시내를 빠져 나가면서 오목대, 남고산성, 사선대 등에 대해 간간히 설명을 들려 준 민지아빠 정철성 선생과 자리를 함께 한 것은 참으로 행운이다. 널려져 있는 지난 시간의 아픔도 담담하게 들려준다. 자기소개시간을 빌어 설예원을 경영하는 이림선생이 녹차의 좋은 점과 특성을 설명한다. 정민지 어린이 다음으로 일행 앞에 서긴 섰는데 내놓을게 없다. 궁하면 통한다고 아까 보았던 코스모스를 끌어안는다. 그게 그렇게 괴로울 줄이야. 자리에 돌아와 얼마 되지 않아 시인 박남준 님이 기행문을 써야 한단다. 사양의 몸짓은 말 뿐이고 두말할 것 없이 그렇게 해야만 하는 걸로 느껴진다. 이때부터 기행문이 떠오를 때마다 밭에 가시 박힌 강아지처럼 낑낑거렸다. 밤재를 지나는데 비릿하면서도 상큼한 밤꽃향기가 차창으로 스친다. 한국방송공사 구례중계소에 가까웠을 때 논바닥 비닐하우스 앞에서 두 꼬마 녀석들이 홀랑 벗고 물장난을 치고 있다. 물줄기는 점점 넓어지고, 피아골 입구에 닿으니 강 양쪽으로 이어진 굵은 줄에 나룻배 하나가 매어져 있다. 섬진강과 화개천이 만나는 곳에서 왼쪽으로 돌아드니 여기가 바로 노래로 듣던 화개장터란다. 쌍계사-진감선사 대공탑비: 잘날 없는 우리 절집 신라 성덕왕 21년(단기3055년)대비, 삼법 두 화상에 의해 옥천사로 창건된 이 절집을 문성왕 2년(단기3173년) 진감선사가 중국 유학 후 차종자를 가지고 이곳 지리산 자락에 심고(차의 유래: 북방설에 해당함), 대가람으로 중창하니 뒤에 송강왕이 쌍계사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지금은 조계종 25본사 가운데 서부경남을 관장하는 총람이다. 일주문은 1977년(단기4310년)중수된 것으로 다포식 겹처마의 팔각지붕으로 되어 있는데, 금강문과 천왕문은 단층 맛배기와집으로 단순미가 돋보이며, 주위와도 더 잘 어울리는 듯하다. 국보 제47호인 진감선사 대공탑비는 바람 잘 날 없는 우리의 절집처럼, 금이 가고 개어진 채 철재 보호대안에서 슬픔을 머금고 덩그러니 서있다. "대통령은 해명하고 내무부장관을 해임하라" 이곳 협곡(화개의 옛 이름)에도 조계종 개혁회의의 바람이 불고 있다. 부처가 절에 앉아 있는 한 바람은 잠자지 않을 것 같다. 보물 제 380호인 부도탑과 그 밖의 부속물들을 알 수 없는 내일로 미루고 일정을 서두른다. 화개제다-쌍계사의 푸름 바람이 벌겋게 숨죽이고 있다. 10년 동안 투자해서 만든 이 기계식 차 공장에서 홍순술 선생의 자전적 강의를 듣는다. 35년 동안 버림으로써 기름을 얻는 삶을 가꾸어온 선생은 우리의 차 문화가 사라진 것에 대해 못내 아쉽게 생각한다. 이웃중국과 일본은 누구나 차 앞에서 평등해지는 전통을 바탕으로 종교, 이념, 그리고 계층을 뛰어 넘어 문화적 숨통을 이어 오고 있는데, 우리는 차 문화를 잃음으로써 전반적인 문화의 골이 깊어졌다고 한다. 선생이 버리는 한 잔의 차 앞에서 각자 찻잎처럼 우려져 평등해지고, 몇 가지 다식과 떡 등을 맛보며 선생에게 기쁨을 준다. 쌍계사의 푸른 바람이 지리산 제다원의 운상차를 실어와 차를 즐기는 선생의 얼굴을 스쳐, 일행의 찻잔 찻잔마다 벌겋게 숨죽이고 있다. 화개천은 이곳에서 밤은 밤대로 낮은 낮대로 섬진강과 만나고, 은어는 또 4월이면 이 물에서 놀고... 화개천 아직도 은어는 살아있구나! 일행과 강바닥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점심을 먹고 은어 잡이 구경을 하는데 몇 사람이 모이자 은어 잡이(까만 은어)가 바위 위에 은어 댓 마리를 올려놓는다. 파닥이던 은어는 금세 눈물을 흘리면서 숨을 죽인다. 옆 사람의 부추김에 못 이겨 은어의 눈물 한 토막을 질겅질겅 씹는다. 국민학교시절 냇가에서 잡은 꽃피리(피라미의 일종) 냄새에 실로 꿰맨 검정 고무신이 아른아른 코를 쑤신다. 7-8월이면 은어에게서 향긋한 수박냄새가 짙게 난다고 한다. 떠나려는 참에 가장 많이 먹은 이가 값을 치르려 하자 까만 은어가 두어 번 거절하다 대뜸 하는 말 '영 그러하시려면 은어를 그대로 살려놓고 가이소"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인지 그이는 할 일없이 물러서고 만다. 그래, 아직도 은어는 살아있구나! 맑은 물에서 나 깊은 바다에서 세상을 배우고 다시 강으로 돌아와서 삶을 꾸리는 은어. 날쌘 몸뚱이가 하나로 훤히 비치는 물속 들 틈에서 노니는 은어. 아직도 은어는 살아 있구나! 지리산 제다원-부드러운 듯 깔끔한 운상차 지리산 제다원으로 가려면 화개천에 걸려 있는 정금다리를 건너야 하는데, 다리 밑 물 속 바위 위에 다슬기가 기어 다니는 모습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혼자서 폐가를 둘러보고 지리산 제다원으로 들어가 일행과 함께 다모씨(김수로왕의 74세손인 김대생의 선생의 부인에 대한 국토방위에 애쓰는 박 영기 선생의 재치 있는 호칭임)의 다론을 듣는다. 인도의 아유타왕국의 공주인 허황옥이 김수로왕에게 시집오면서 폐물과 함께 차씨를 들여왔단다. 이는 차유래에 얽힌 주장 가운데 남방설에 해당한다. 차를 만드는 과정은 크게 여섯 가지로 나뉘는데 마지막으로 맛내기를 하는데 이 과정이 비법에 속하는 것으로 날씨를 염두에 두어야 할 정도로 정확해야 하고, 두 시간 동안 참나무 숯불 앞에서 보살펴야 하는 매우 힘든 공정이란다. 이유는 첨가물을 넣어 맛을 내는 것이 아니라 차가 본래 가지고 있는 품성을 그대로 살려 내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나온 운상차(지리산 제다원의 등록상표)가 일행 앞에서 열정적으로 설명하는 다모씨의 얼굴에서 부드러운 듯 깔끔하게 배어나온다. 첫째, 생잎 따기로 따는 때에 따라 나중에 우전차, 첫물차, 두물차, 세물차 등으로 나뉜다. 둘째 덖기로 생잎의 수분을 없애고 산화를 막기 위한 공정이며, 셋째로 비비기를 통해 찻잎의 겉껍질(피막)을 벗겨내는데, 차가 잘 우려지도록 하기 위함이다. 넷째로 말리기(자연건조)를 거치면서 습기를 없앰으로 신선미를 유지시키며, 다섯째 고르기에서는 잎의 색깔, 덖음, 말림 등을 검사하고 잡티도 골라낸다. 여기서 일차적으로 품질에 따라 등급이 매겨진다. 돌아오는 길-두려운 강물과 부채질로 우러난 다섯 가지 차맛 피아골 맞은 편 강언저리와 산자락이 길게 두 동강나 있다. 새로 길을 닦는가 본데, 아침나절 밤재휴게소 옆마당의 새로 돋은 땅이나 그 길 건너 숲에 짓고 있는 건축물이나 어색하기만 하다. 어쩜 허리 다치고 발 묶인 나의 모습과 저리도 닮았을까? 화개천 양편으로 다랑이 마다 받치고 있던 돌축대는 지리산자락 사람들의 삶의 의지를 고스란히 드러내면서 힘 있게 서 있었는데... 강바닥엔 지프, 승용차, 승합차들이 기어 다니고 있어도 바닥이 맑게 미치는 강물은 잔잔하기만 하여 두려움이 인다. 아낌 받기 못한 것은 끝내 우리에게 질기고 또 아프게 다가오지 않던가. 춘향굴도 지나고 밤재굴도 지났다. 교직에서 정년퇴임한공순도 선생께선 미선공에서 선물로 받은 태극선을 가장 어린 정민지 어린이에게 물려준다. 이어 선생께선 '너와 나의 고향'을 부른다. 참 멋있는 모습이다. 박영기 선생은 시사상식을 들려주고, 박미리 어린이는 물결마저 잔잔한 바닷가에서 갈매기처럼 너울거리고, 정민지 어린이는 코부리 영감님 코를 만지고, 박현철선생은 동편제로 흥부를 몰아 내고, 일행을 추임새로 부채질하여 다섯 가지 맛이 우러난 차를 비우면서 기행을 마친다. 정금마을 폐가가 떠오른다. 마당 한 켠 허물어진 장독대의 반쯤 깨어진 광명단 항아리에 곰삭은 젓이 담겨져 있다. 머리에 흰 수건 두르고 만쯤 굽은 허리를 힘겹게 펴며 금방이라도 바라지(나무로 된 부엌문)를 젖히고 나올듯한 할머니 어느 도회지 콘크리트 긴 의자에 앉아 고향이며 지나올 발자국을 더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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