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6 | [서평]
문화, 일상생활의 결정적 요소이자 물질적 힘
『문화연구 어떻게 할 것인가』(현실문화연구편:1993)
지역사회연구모임(2003-09-23 16:01:56)
나이 서른, 최영미의 표현을 빌자면 '잔치는 끝났고 전통의 어법으로 풀어내자면 '이립(而立)에 이른 나이. 그런 나이에 나는 서있다.
90년을 전후로 한 한국사회의 변화는 실로 놀라운 것이다. 이 시기에 한국사회는 문민정부의 출현과 민족 민주운동의 침체라는 커다란 정치 환경의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또한 이 시기는 지난 30년간의 지속적인 경제적 성장에 힘입은 물질적 풍요가 달성되었던 시기이다.
이에 따라 한국사회의 소비규모도 엄청나게 확대되어 소비영역의 비중이 생산영역 못지않게 증대되어 나타났다. 이는 비단 경제적 차원에서만 한정되어 나타나지 않고 소비문화의 지속적인 확장과 일반대중의 문화적 욕구의 비약적인 성장이라는 엄청난 변화로 나타났다. 즉, 재화의 소비 못지않은 상징과 기호의 소비, 영상매체의 범람, 컴퓨터의 광범한 보급 등은 현대 한국사회를 특정지우는 요소들로 무섭게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징후들은 이른바 '새로운' 어떤 것의 범람을 가져왔다. 각종의 포스트주의를 위시한 '신'사회운동 '신'세대론이 바로 그것이다. 이상의 '새로운 것 들'의 정점에는 문화라는 괴물덩어리가 존재하고 있는 바, 이는 전 매스미디어의 화면과 지면을 장식하고 있을 뿐만이 아니라 학문적 영역에 있어서도 초미의 관심사로 등장하여 수많은 논란과 토론의 대상이 되어왔다. 그러나 이러한 '새로운 것'들은 이것을 바라보는 우리들에게 있어 매우 곤혹스러운 대상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우리가 80년대의 '새롭지 못한 것'을 지반으로 삼고 있었고 그 변화가 불과 서너해 만에 이루어진 것이라 할 때 이것이 주는 당혹감은 실로 크나큰 것이다. 이렇게 곤혹스러운 사정이 바로 이 글에서 비장함으로 화두를 꺼내는 까닭이다.
이 책 『문화연구 어떻게 할 것인가』는 우리의 만발한 문화적 관심의 한 산물이다. 그러므로 곤혹스러운 우리의 촉각을 팽팽히 곧추세우고 이 책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은 90년대 새로운 연구 집단으로 등장한 현실문화연구가 문화교양 시리즈의 첫 번째로 기획물로 펴낸 책이다. 글쓴이의 면면을 보면 문화영역이 가지는 잡다함만큼이나 다양하다. 문학평론가, 음악평론가가 있는가하면 영문학자, 사회학자, 철학자, 노문학자, 언론학자, 신문학자들도 있다. 이들이 지난 서너해(89년에서 93년)동안 여러 지면을 통해 발표했었던 글들을 어떤 것들은 그냥 또 어떤 것들은 새로 수정 보완하여 열 한편의 글을 현실문화연구가 묶어 낸 것이다.
우선 관심이 집중되는 부분은 이 글의 서문이다. 곤혹스러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문화라는 괴물을 바라보는 기본적인 잣대이기에 이 글에서 거의 유일하게 잣대를 제공하고 있는 서문에 눈길이 모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일단 '근대적인'의미의 문화에 대한 관심은 실패했다고 규정하고 문화가 일상생활의 결정적 요소이자 물질적 힘을 가지고 있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문화는 하나의 중심 화된 구조가 아닌 단지 하나의 차이에서 다른 차이로 부단히 미끄러지는 과정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문화연구의 영역은 항상 개방되어 있으며 방법론 또한 항상 유동적인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 열 한편의 글들이 가지는 분석대상은 다종다양하면서 다각적이다. 앞의 몇 편은 한국사회 전반의 문화적 지평을 개괄하는 글들이고 그 뒤의 글들은 지금까지 나름대로의 독자적 영역을 형성하고 있었던 영화, TV, 만화, 대중음악과 관련된 것들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김우창의 글은 김포공항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여기서 그는 공항이 주는 몇 가지 포스트 모더니즘적 언어들을 발견해 낸다. 다시 말해 그의 단상은 공항으로부터 출발하여 포스트 모던한 상황개념으로 상승되기도 하고 하강하기도 하다. 매우 담백한 자세로 포스트모더니티의 성격을 기술하고 있으나 우리의 분석적 관심과는 멀어져 있다. 두 번째 박명진의 글'청소년과 새로운 미디어문화 - 포스트모더니즘이 새로운 대중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분석틀이라는 점을 명백히 하면서 영화, 전자오락, 뮤직비디오 등을 분석하고 있다. 이에 따라 박명진은 새로운 청소년 문화를 형성하는 영상매체의 특징을 스토리의 해체, 모방과 모의, 찰중심화로 정리하고 있다. 세 번째 강내의의 글 '독점자본주의와 문화공간-롯데월드 론'은 하나의 문화공간이자 읽을거리로서의 롯데월드를 대상을 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롯데월드는 우리시대에 새롭게 출현한 특유한 문화공간이며 하나의 독자세계(입장의 무제한성, '볼거리' '팔거리'제공, 자족성, 대체경험)를 형성하고 있는 그런 공간이다. 이는 막대한 자본과 권력이 결합됨으로서 가능한 것이고 또 그런 의미에서 롯데월드는 해방의 공간이면서 동시에 커다란 억압의 장치라는 것이다. 네 번째 김진석의 글 '더 빨리 가거나 더 늦게 가는, 대중의 문화'는 대중문화에 새로운 이해를 제공하고 있다. 여기에서 그는 기존의 대중문화에 대한 잘못된 이해방식의 대표격으로 '경제결정론'과 '상품미학'을 들고 있다. 그에 의하면 대중문화에 대한 경제 결정론적 이해, 혹은 계급지배의 장이라는 이해는 적어도 90년대에 들어선 이 시대에서는 쓸모없는 것이 되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대중문화를 소비하는 충돌은 어느 한 집단에만 머무르지 않고 보편화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경제적 관계가 일차적으로 지배하는 그런 부차적인 것도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대립과 갈등이 이제는 매우 다양하고 복잡한 양상을 띠고 전개된다고 보고 있으며 대중문화의 정보나 의미보다 매체가 훨씬 중요한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다음에는 김종엽의 글 '포스트 모던 어드벤처'가 등장한다. 그가 분석 대상으로 하고 있는 것은 <인디아나 존스: 애틀란타의 운명>이라는 어드벤처 게임으로 게임의 공간 안으로 들어가 매체의 특성을 밝히는데 초점을 두고 있다. 여섯 번째의 글은 강영희의 '김수현론'으로 현재 가장 성공적인 대중문학으로 손꼽히는 김수현의 작품세계를 다룬 것이고, 일곱 번째 글은 여화 '터미네이터'의 시간개념에 대한 분석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 다음으로는 김소영의 글과 음악평론가 강헌의 김현식론이 뒤를 잇고 있다. 열 번째의 글 '화장, 리비도의 정치경제학'에서 이득재는 지금까지의 글들과는 좀더 다른 방식에서 자본의 논리를 강조하고 있다.
마지막 글로는 박재동의 만화를 다룬 황지우의 '권력에 대한 웃음-박재동 만화 아이콘 분석'이 있다.
이 책의 전체적 운율은 포스트모더니즘이다. 비록 이 책의 각 부분이 90년대 한국사회 각각의 문화적 영역, 즉 전근대성, 근대성, 탈근대성이 두루 혼재된 문화현장을 탐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러하다.
'당황스러움'과 '곤혹감'으로부터의 탈출해보고자 했던 애초의 의도는 이 책의 서두에서부터 막히게 된다. 서문에서 이미 문화를 재는 투명한 잣대의 부재를 선언하고 있고, 있다면 다양한 문화현실과 다양한 방법만이 존재한다고 모든 문을 활짝 열어놓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실제로 이 책의 본글 열 한편의 분석대상과 분석방법에서 확인되는데, 여기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의 현장이 주는 현란함과 고난이도의 수사만이 어른거릴 뿐 만족스러운 해답을 발견할 수 없다. 오히려 여기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귀한 것은 문화가 더 이상 하위에 머무르면서 보조적 역할에 그치지 않고 직접적으로 물질적 힘을 갖고 있다는 점에 있다.
문화에 대한 관심의 증폭이 '새로운'변화의 조건 속에서 열려진 것이라는 점은 앞서 지적한 바 있다. 이것은 관심의 저편에 존재하였던 영역에 참정권을 부여한다는 차원을 넘어서 사회과학적 검토의 필요성이 필수적으로 요구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는 '새로운'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든 거부하는 사람들이든, 특히 우리와 같이 곤혹스러워 하는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절실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