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6 | [문화저널]
우리악기 우리음악을 아십니까?
여과된 장중한 소리의 매력
거문고
윤화중 전북대 교수 국악학과(2003-09-23 15:49:43)
지금부터 15년쯤 풍류를 즐긴답시고 거문고를 가지고 경기도 한탄강에 간 적이 있었다. 서울의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열을 지어 기다리는데 밤색 비닐케이스를 보고 호기심이 이는 분들은 대부분 이렇게 물었다.
"그게 낚싯대요, 사냥총이요?"
한 10년 전쯤, 뒤늦게 우리 음악공부를 시작하여 서울 거리를 그 커다란 밤색 케이스를 들고 다닐 치라면 뒤에서 이렇게 말하곤 했다.
"야 가야금이다. 가야금"
요즘 전주에서 거문고를 들고 다니면 학생들이 귀엽게 종알댄다.
"거문고는 여섯 줄, 가야금은 열두 줄"
금년 1월 고전문학을 전공하는 교수들의 학회에서 거문고를 연주했다. 연주가 끝난 후 연세가 지긋한 교수 한 분이 거문고 소리에 굉장한 관심을 보이셨다. 그분은 국민학교를 다니기 전부터 엄한 조부 밑에서 한문을 배웠고, 유명한 실학자의 후손이며, 경상도 출신이었다. 한문학을 전공하며 국악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던 분이 갑자기 거문고의 음악에 매료당하셨다.
구라파에서 피아노가 귀족들의 교양필수였듯이 옛날 선비들은 거문고가 그랬다. 영산회상 같은 풍류를 타고 가곡 반주를 즐겨 했다. 식자들이 즐긴 악기에서 숱한 거문고 악보가 전해질 수 있어서, 정악의 변천을 거문고 악보인 금보로 연구, 추적할 수 있다.
그러한 내력이 면면히 전해 내려와 그 한문학 교수님도 불현듯 거문고 소리에 매료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통일신라시대에 대표적인 향악기를 '삼현삼죽(三絃三竹)'이라 하였으니 삼현이란 3가지 대표적인 현악기 즉, 거문고, 가야금, 비파이다. 이중 비파는 전통이 끊어졌고 전통현악기의 대표는 가야금이 맡았다. 흔히 가야금은 여성의 소리, 거문고는 남성의 소리를 지니고 있다고한다. 사람에게 가장 호소력 있는 소리는 첫째가 인성, 즉 사람의 소리이고 둘째가 관악기 소리이며, 현악기의 소리가 가장 호소력이 없다 한다. 가야금은 현악기이지만 음색이 밝고 감정의 노출이 많아 감정이입이 쉽다.
물질의 부족을 형이상학적인 풍부함으로 초월할 수 있다는 교훈으로 우리는 유명한 백결의 일화를 알고 있다. 신라시대 가난한 선비인 백결이 명절을 맞아 떡거리가 없는 부인의 한탄을 듣고 거문고로 떡방아 소리를 연주했는데 그 음악이 방아소리를 방불케 했다는...그러나 백결선생은 신라 자비왕(458-478)때의 사람이고 거문고가 신라에서 널리 퍼진 때는 8세기경의 사람인 옥보고 이후이다. 「삼국사기」악지에 보면 '가야국의 가실왕(6세기경)이 당나라의 악기를 보고서 가야고를 만들었다'하는데 가약구이 발생한 변한에는 우리의 고대 현악기인 '고'가 존재했으니 가실왕은 고대현악기를 '개량'하여 가야고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니 떡방아 소리를 냈다는 백결의 거문고는 시기상 거문고가 아니고 가야금의 전신인 '고'라는 악기로 추정된다.
거문고가 문헌에 최초로 언급된 것은 고구려 때이다. 『삼국사기』악지에 '진나라 사람이 칠현금을 고구려에 보냈는데, 고구려 사람들은 비록 그것이 악기인줄 알았으나, 그 악기의 성음이나 연주법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 당시 제이상(第二相)이었던 왕악산이 그 본래의 모양을 그대로 두고 법제를 개량하여 새 악기를 만들었으며, 겸해서 일백곡을 지어 연주했더니 검은 학이 날아와 춤을 추었다. 그래서 새로 개량한 악기를 현악금 이라고 이름을 지었는데, 후에는 다만 현금이라고 불렀다'는 기록이 있다. 중국의 칠현금을 거문고로 개량한 왕악산은 4세기경 사람이나, 이보다 앞선 시대로 추정되는 황해도 안악이나 만주의 통구, 즙안에 있는 고분의 벽화는 거문고가 그 이전에 존재했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거문고의 앞판은 오동나무이고 뒷판은 밤나무로 만든다. 줄은 총6개로 생사(生絲)를 가공해 꼬아 만든다. 줄6개중 3개는 가야금과 같이 안족(雁足)이라는 고임새를 사용하여 고정된 음을 내게 되었다. 나머지 3줄은 16개의 괘위에 올려진다. 괘는 기타의 서포트와 같다. 기타는 서포트의 간격이 정확히 반음이 되도록 조정되어 있는데, 거문고는 괘(괘)의 간격이 약 한음이 되도록 배열되어 있고, 이 괘 위에서 현을 누르고 밀어 음을 조절한다.
술대는 오른손에 쥐고 발현을 하여 소리를 내고 왼손은 괘위의 음을 밀고 떨어 음을 만들어 낸다. 연주할 때 사람 몸에 제일 가까운 줄은 문현(文絃)이라 하며 안족위에 얹혀져 고정된 소리를 낸다.(약Eb-G),둘째, 셋째, 넷째 줄은 괘위에 얹혀 있는데 왼손의 장지와 약지로 둘째 줄인 유현(遊絃)과 셋째 줄인 대현(大絃)을 누르고 민다. 유현은 가늘고, 대현은 거문고의 줄 중에서 가장 굵다. 음악은 상대적으로 가벼운 유현과 묵직한 대현을 적절히 번갈아 타게 되어 있다. 괘위에 있으나 음이 고정되어 있는 넷째 줄과, 안족에 얹혀 있는 다섯째, 여섯째 줄은 옥타브상관으로 다르긴 하나 모두 같은 음고를 가지고 있다. 차례대로 괘상청, 괘하청, 무현이라 부른다. 이 세음은 동시에 연주되는 경우가 많은데 같은 음이지만 줄의 굵기와 옥타브가 다르고 배음이 풍부하여 거문고의 음악을 풍요롭게 해 준다.
거문고는 현이 굵어, 여과된 장중한 소리를 낸다. 음색자체가 절제된 소리라 감정표현이 쉽지 않다. 바로 이점이 거문고의 매력이기도 하다. 줄이 굵어 가야금처럼 손가락으로 뜯을 수 없고 술대로 친다. 술대는 연필정도 굵기의 단단하게 자란 해죽(海竹)이다. 현이 굵은 소리만큼 소리가 무겁고, 술대로 치기 때문에 술대가 통에 부딪는 소리가 어우러져 다이나믹이 강하다. 바이올린이나, 아쟁, 해금처럼 찰현악기가 아닌, 발현악기이고 또 현이 굵어 음이 지속되는 시간이 짧다. 연주자의 왼손은 계속 농현을 하고 있고, 소리는 이미 들리지 않고... 심정적인 소리는 계속되어, 산 굽이굽이 돌아가는 실낱같은 아련한 산길이기도 하고, 동양호의 여백의 미에 견주어 지기도 한다. 그러므로 거문고를 포함하여 우리음악 연주는 현장에서 보어야 한다. 모든 연주가 살아있으려면 현장에서 호흡을 같이 해야 하는데 호흡을 같이 한다는 것은 기가 통한다는 의미에서 바로 적절한 표현이다.
레코드
-정악(正樂)
중광지곡(重光止哭) 한국전통음악대전집 제6집 국립국악원 LP
현악영산회상(絃樂靈山回想): 조선조 민간음악인데 선비들이 즐겨 탔던 일종의 모듬곡(조곡組曲)이다. 거문고가 중심이 되기 때문에 '거문고 회상'이라고도 하며, 관악기가 주로 되는 대풍류(竹風流)의 대가 되는 '줄풍류'의 대표적인 곡이다. 상령산, 중령산, 세령산, 가락더리, 삼현도드리, 하현도드리, 염불도드리, 타령, 군악 등 도합 9악장으로 이루어져있는 관악협주곡이다.
이오규 거문고 독주곡집. 영산회상을 거문고 솔로로 연주, 서울음반, LP
거문고 다스름 한국전통음악전집 제11집 황득주LP
다스름본은 본 곡을 연주하기 전에 조현(調絃)을 끝내고, 조현의 여부와 탄법의 요체를 위한 간단한 가락의 시주이다. 그러므로 거문고 다스름은 짧지만 거문고에 가장 어울리는 아름다운 가락과 공교하고 독특한 기법으로 되어있다. 거문고 정악의 두 가지 선법인 우조(羽調)와 계면조의 각기 다른 선율의 진수를 함축하고 있다.
-민악(民樂)
산조(散調)한국 전통음악대전집 제12집 신쾌동LP
거문고 산조는 악기의 음색이 절제되고 여과된 성음인 바 희로애락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한조와 어우러지는 독특한 멋이 있다.
산조 및 거문고 병창 오아시스 레코드사 신쾌동LP
산조 한국의 전통음악(국악보급진흥회)한갑득 테잎 10번
산조 국악의 향연(중앙일보사)김윤덕 LP10-11
-창작곡
일출 외 정대석 성음 L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