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6 | [문화저널]
새로 찾는 전북미술사
자신감 넘치는 필치로 그려낸 포도그림
최석환
이철량 전북대교수 미술교육과(2003-09-23 15:44:05)
대부분의 화가들에 대한 기록이 거의 남아있지 않은 것처럼 최석환에 대한 자료도 극히 빈약하다. 그의 작품이 산수화와 문인화에 걸쳐 비교적 다양한 작품이 남아 있는 점으로 비추어 당시에 화가로서 상당한 활동을 하였을 것으로 믿어진다. 특히 그는 여러 화제 중에서도 포도그림을 잘하여 다작을 하였다고 전해지나 당시에 전북 옥구군 임피(臨皮)에서 살았었다는 기록 외에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지금까지 알려진 그의 작품을 통하여 보면 그는 전문화가로서 보다는 학문에 뜻을 두고 향리에 은거하면서 책을 읽으며 틈틈이 그림에 몰두하였던 것으로 믿어진다. 이러한 추정은 그의 작품 속에서 쉽게 발견되는데 이를테면 지금까지 알려진 작품들의 대부분에 화제를 놓고 있으며 그림보다는 오히려 화제글씨가 매우 뛰어나다는 점이다. 또한 문장에도 뜻이 깊어 그림에만 전념하였던 일반 화가들의 한계를 뛰어 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출중한 문장에 비해 그림에서 나타나는 격조는 그리 높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어떻든 최석환은 이 지역이 낳은 뛰어난 사대부화가로 지목될 수 있다.
알려진 작품들 중에서 유일한 산수화로서 「하경산수(夏景山水)」도는 그가 포도그림을 중심으로 한 문인화 뿐만 아니라 산수화에까지 다방면에 걸쳐 관심을 보였다는 것과 그 산수에 담겨진 화제가 자연을 관조하면서 살아가는 최석환의 심기가 잘 드러나고 있다는 점에 관심을 끈다. 화폭이 그리 크지 않은 작은 그림으로서 연작으로 된 두 그림은 산수풍경은 거의 화면중앙까지만 그리고 나서 중앙에서 상단부는 넓은 공간으로 남기고 써넣은 화제가 오히려 그림을 압도하고 있다. 이러한 경우는 그의 작품의 내용을 그림에서 보다 오히려 화제 속에서 찾으려 하였음을 알 수 있고 그가 시문(時文)에 상당한 경지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흐르는 구름은 공산에 둘려있고, 절벽은 푸르고 푸르구나, 마땅히 지초(芝草)를 캐는 사람이 있을 텐데, 우중(雨中)에 연기만 덮여 있는 것 같구나"이렇게 쓰여진 화제의 내용은 최석환이 향리에 머물면서 자신의 심기를 자연에 의탁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시의 내용과 그림에서 나타나고 있는 자연의 형상이 잘 어울려지고 있는데 이는 그가 분명 뛰어난 사대부 화가였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두 작품으로만 통해 보면 그는 산수에 그리 대단한 기량을 갖고 있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이 그림이 대체적으로 조선조 말기 특히 19C후반에 몇몇 화가들에서 보였던 붓과 담채의 효과를 드러내고 있으나 기법의 특징은 특히 미점을 주로 사용하고 있다. 미점(米点 미이 최초로 사용하였던 기법으로 미불은 1051에 태어난 중국 북송시대 화가로서 중국에서 대표적 사대부 문인화가 이다.) 그는 비가내린 후의 안개 낀 산을 점으로 찍어 내렸고 이후 그러한 기법을 미점법이라 불렀다는 조선조 중기이후에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하여 18C화간에서 널리 활용되었다. 최석환이 언덕과 나무 그리고 먼 산의 모습까지 전부 미점으로만 처리하고 있는 그가 특히 중국 전래의 남종화계열의 화풍에 심취해 있었다고 보여지며 또한 미점을 찍고 부드러운 담묵과 엷은 채색으로 고요한 서정적 분위기를 묘사해 내고 있는 점으로 보아 문기 짙은 남종화풍을 상당히 깊게 이해하고 있는 듯하다. 뿐만 아니라 소재나 화면 구성에 있어서도 이점을 잘 보여주고 있는데, 이를테면 강변의 한적하고 고요한 어느 언저리에 초당을 짓고 독서에 열중하며 자연과 벗하는 선비의 고고한 기품을 담아내는 소재는 산수화에서 가장 폭넓게 사용되었는데, 이 그림에서도 앞부분 언덕너머에 두 채의 초당을 배치하고 왼편에서는 선비가 독서에 열중하는 모습이며, 오른편에는 그림에서는 강 한가운데에 낚싯배를 띄워 놓고 있는 모습이 한가롭기가 그지없다. 이렇듯 한적한 분위기의 연출은 화면을 다루는 모습에서도 잘 드러나는데 두 작품 모두 하단 좌측에 대각선으로 놓여진 언덕을 기점으로 하여 중경, 원경이 좌변을 타고 하나의 고리로 연결되면서 강을 감싸듯이 돌아가며 널찍하고 한적한 강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이렇듯 화면 전체가 남종화의 세계를 담아내고 있으면서 한편으론 산과 언덕 등을 굵기의 변화가 거의 없는 윤곽선을 사용하고 속도감 있는 필치의 성글은 미점으로 처리해내는 방법과 수채화에서 느끼는 담채 처리가 19C후반에 잠시 나타났던 화풍의 모습이 엿보인다. 이렇든 산수화에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이 작품에서는 그리 높지 않은 화격을 보이고 있는 점은 문학적 깊이와 회화적 표현이 일치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산수화 이외에도 노송(老松)이나 국화 등을 그린 작품들이 있으나 그림보다는 글씨에 능숙함을 보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 외에 특히 포도그림을 많이 그렸다고 전해지는데 8복 병풍 속에서 보여지는 그의 포도 그림은 그다 다른 어느 소재보다도 훨씬 자신감 넘치는 필치로 처리하고 있음을 본다. 이는 그가 상당히 많은 양의 포도그림을 그렸음을 보여주는 필치이며 필치는 마치 물흐르듯 막힘없이 활용하고 있다. 또한 그가 포도에 대해 깊게 이해를 가지고 있었음을 포도 잎과 줄기 등의 묘사에서 잘 보여주는데, 매우 정확하고 사실적인 모습으로 그려 그림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에서 가장 크게 지적되어지는 아쉬운 부분은 그림이 양식화되어 자연스럽게 뻗어나간 포도줄기가 변화 없이 반복되어지고 있는 점과 포도 잎의 모양도 거의 같은 형태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포도 잎에서 보여주는 대단한 사실적 접근이 반복되는 같은 모양의 잎에서 오는 지루함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이는 화면의 짜임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는데, 각기 다른 폭으로 그려진 병풍그림에서 보면 포도 넝쿨의 구성이 거의 같은 형식으로 반복되고 있다. 마치 두 폭이 한 쌍으로 연결된 듯한 모양을 취하고 있으며 좌변이나 우변에서 원형을 이루고 뻗어나간 줄기의 짜임새가 일정한 틀을 이루며 반복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렇듯 그의 활달하고 유연한 필세의 능숙함에도 불구하고 그림의 형식이 거의 일정한 틀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은 최석환이 전문화가가 아니고 사대부(士大夫)로서 여기로 그렸음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그의 포도그림은 각기 다른 폭으로 되어있는 병풍에서 보다 국립 전주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대형작품에서 그 진가가 발휘되고 있다. 어떻든 최석환은 조선조 사대부들이 그린 포도그림의 전형을 잘 보여주는, 이 지역이 배출한 걸출한 화가였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