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6 | [저널초점]
우리 삶, 우리문화/입거리
사람중심으로 만들어진 우리 옷이 필요하다
우지영「여럿이 함께」의류사업부(2003-09-23 15:36:13)
머리말
옷은 사람과 그 시대의 정신을 반영하고 반면에 사람과 그 시대의 정신에도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한복은 옛선조들의 어떠한 정신문화를 담고 있었을까.
내용물을 담는 용기에 맞추어야 하는 서구의 '담는 문화'에 비해 우리문하는 내용물의 극소화와 극대화가 자유로운 '싸는 문화'이다. 싸는 문화에서 가장 좋은 예가 치마와 보자기이다.
우리의 치마에는 아이를 감싸 안을 때는 포대기로, 그릇을 닦을 때는 행주로, 얼굴을 가리고 다니던 쓰개치마, 추운 바람이 불 땐 바람막이 옷으로, 설움이 복받쳐 눈물이 날 땐 손수건이 되는 일체로의 포용(包容)과 사랑으로의 접합(接合)에 가치를 두는 구심(求心)적인 한국인의 가치관이 담겨있다.
둘째로, 우리의 옷은 꼭 들어맞게 만드는 법이 없다. 언제나 체형보다 여유를 두어 푼푼하게 지어 속옷고름만 조이고 허리띠만 조이면 성정에 구애받지 않고 장기간 입었으며 여러 사람이 한 옷을 입을 수 있는 경제성과 공동체의식이 담겨져 있는 여유의 문화를 갖고 있다.
여유분을 많이 둔 것은 옷감의 재료가 풍부해서도 아니고, 낭비가 심해서도 아니다. 옛 속담에 '옷이 몸에 붙으면 복이 들어갈 틈이 없다'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 선조들은 여유는 복(福)이 드나드는 공간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셋째로, 한복은 저고리 밑단의 개구부(開口部)도 꽉 조여지지 않고 바람이 새어나오게 되어있었으며, 소매 끝동은 소매통보다는 좁아져 있으나 폐쇄적이지는 않다. 바지 또한 바지 밑단이 바지통보가 좁아지거나 양복바지에 비하면 천천하고 저고리의 여밈도 앞 정면에서 여미데 되어있는 그 어떤 옷보다 열린 문화다.
마지막으로, 옷감의 염색은 몸의 기(氣)를 더하고 방충 등의 효과를 가진 여러 가지 약초들을 이용하였다. 옷을 제2의 피부라 여기며 옷 중심이 아닌, 인간중심으로 우리의 옷 문화를 이끌어 왔던 것이다. 이처럼 우리의 옷에는 민족의 여유와 지혜, 공동체의식이 가득 담겨있다.
그러나 현재는 어떠한가. 사대주의, 소비향락주의, 물질 중심적 사고가 팽배된 사회구조 속에서 만들어진 옷을 입고 우리는 자본주의 인간으로 거듭 태어날 것을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강요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물밀 듯 들어오던 외래문화가 큰 작용을 했다고 본다. 그렇다면 외래문화가 우리의 옷 문화를 얼마나 기형적으로 만들었으며 반만년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 민족의 옷 문화는 어떻게 계승해나갈 것인가를 지금부터 짚어보고자 한다.
몸말
1. 서양 옷이 들어오면서 변화된 우리의 옷문화
위에서 언급했듯이 여유와 정(精)이 가득한 옷을 입고 살아왔던 우리민족은 처음에는 몸에 꽉 조이고 입체적인 양(洋)옷을 꺼려했다. 개화기때 개화파들에 의해 양복(洋服)이 처음 입혀지게 되었으나 주로 일제의 앞잡이로 일했던 사람들에 의해 입혀졌으며, 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별기군'이라는 신식군대의 군복도 일본인이 교관으로 있었던 것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처음에는 웃옷의 깃은 한복과 같으나 단추로 여미고 바지 통은 양복바지 보다 넓은 한(韓), 양(洋)의 절충형이었다. 그러나 일제 식민지 때 우리문화 말살정책으로 단발령 등 양옷을 입는 것을 강요당하면서 어떻게 우리의 것으로 받아들일 것인가를 고민할 틈도 없이 일본식으로 변형된 양옷을 입게 된 것이다.
해방이후에는 우리의 경제구조도 자본주의 구조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더불어 일본에 의해 시작된 섬유산업도 비대해지기 시작했다. 수출에 의존하는 우리 경제구도에서 반이 섬유산업으로 메워져가면서 70년대 하반기에는 대기업들이 앞장서서 '기술향상'을 명목으로 외국상표를 도입해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86년 아시아 체육대회를 치루면서 완전히 굴복해 미국의 압력에 의해 외국상표도입이 자율화되었고 현대는 수입 완제품으로 직수입되어 전국에 깔리게 된 것이다. 그래서 지금의 모양새와 상표만 따오는 게 아니라 옷감, 무늬, 제작까지 서양화가 아니라 서양의 것이 그대로 우리 민족에게 입혀지게 되는 것이다.
성 기능 장애와 질염을 일으키는 꽉 끼는 청바지에, 작업을 하는 노동자가 생명을 잃을 정도로 유독한 공업용 염료로 염색된 옷을 입으며, 알록달록 화려한 색에 뜻도 모를 영자가 가득 새겨진 티셔츠를 입으면서 우리는 매일매일 조금씩 죽어가고 있는 것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외래문화가 침투되면서 지금은 사회, 경제, 문화 모든 것이 서구화되고, 옷문화 또한 미국 캘리포니아의 TOM의 옷이나 한국 서울에 있는 철수의 옷이나 똑같아졌다. 언젠가 한 학자가 전 세계 문화권을 구분하는데 아시아에서는 중국 유교문화권과 일본의 독립된 일본문화권을 가지고 있는데 한국은 어느 문화권으로 포함시켜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지구는 하나, 세계가 하나가 되는 것도 좋지만, 지금의 우리 옷문화 속에는 민족의 자주적 정신이 어디에 담겨져 있다는 것인가.
이러한 고민의 흐름이 일기 시작했다.
2. 겨레옷의 등장
이처럼 외래문화가 들어오면서 넉넉함과 공동체의식이 담겨있는 한복은 고급스럽고 사치스러운 행사 옷으로 자리를 잡아가게 되었고, 도대체 어디의 옷이라고 규정할 수도 없는 요란한 변형한복들이 쏟아지게 되었다. 그러나 80년대 초반, 국적을 잃어가고 있는 우리 문화 속에서 민족의 정신이 담겨진 우리의 것을 되찾고자 하는 자주적 문화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 운동은 우리 삶게 가장 기본적인 입거리, 먹거리, 살림터, 놀이문화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고, 그 움직임이 집중되었다. 그 중의 입거리 문화에서 활동성이 강조되었던 일옷과 민족정신이 담긴 모양새들을 계승한 변형한복이 모습을 드러냈다.
필자는 이런 품새의 변형한복을 '겨례옷'이라고 이름 짓고자 한다.
이 겨례옷은 '민족생활문화연구소'에 의해 처음 시도되었다. 우리 것을 되찾고자 하는 몇몇 사람들의 손에 의해 옛것의 좋은 점과 현 시기에 입기 불편한 것들을 보완하면서 다양한 모양새로 만들어지고 있다.
이제야 서양의 옷을 받아들이는 데 진정한 우리의 정신을 잃지 않고 체화 시키는 작업이 사직된 것이다. 옛것을 찾는다고 해서 무조건 옛날과 똑같이 살아가라고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올바른 계승은 낡은 것은 버리고 옛것의 장점을 지금의 우리에게 맞게 변화시켜 체화시켜 나가자는 것이다.
3. '겨례옷의' 현주소
'겨례옷'을 만드는 이들은 이 세상에서 사람에게 가장 편안하고 사람중심으로 만들어진 한복의 품새를 계승 보급하고자 한다. 사람 중심적 사고와 함께 더불어 사는 참된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그간 외래문화에 썩어가고 있는 자신을 보호하고자 한복을 입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나 일반 한복의 비싼 가격과 까다로운 손질 때문에 엄두도 못내고 있는 상황에서 '겨례옷'의 등장은 그들에게 생활의 큰 활력소와 함께 외래문화를 배격하는 무기가 된 것이다.
이제부터 민족의 넉넉함이 담긴 옛한복의 품새를 계승하면서 현대의 감각에 맞추어 변형시킨 '겨례옷'의 특징은 어떠한 것인가 구체적으로 예기해 보고자 한다.
첫째. 품새를 보자.
한복의 가장 큰 장점인 육체에 가장 구속력을 적게 주는 육체본위와, 몸에 굴절이 많은 부분에 마찰을 극소화한 여유로움을 살리는데 가장 큰 의의를 두고 있다. 저고리의 모양새에 있어서도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여러 가지 모양새를 계승하고자 한다. 더불어 옛 선조들은 농경정착 문화로 인해서 주머니가 없었지만 현재는 이동량이 커서 옷에 주머니를 달았고, 사계절의 뚜렷한 기후였기에 옷고름이나 끈으로 살짝 여미었던 것을 현재는 단추나, 지퍼, 후크 등을 이용하여 간편하게 입을 수 있게 변형시켰다.
바지나, 소매래배 등의 품도 현대인의 활동에 불편을 주지 않을 정도로 약간 줄여진 모양이다. 그래서 지금 현재 겨레옷의 모양새 종류는 온트임(앞여밈이 완전히 트여진 덮개옷), 반트임(T-Shirt의 모양을 딴 가슴까지만 트여진 웃옷), 바지(대님, 허리끈이 고정되어 있거나 단추, 지퍼 등으로 허리여밈을 간편하게 했고, 옛 한복바지보다 통이 조금 좁다) 치마, 아이옷 등 다양한 모양새가 만들어지고 있다.
두 번째 옷감이다.
흔히들 한복의 옷감으로 명주, 양단, 노방 같은 고급실크 종류나 모시, 삼베 등을 생각하는데 이런 옷감은 가격이 너무 비싸고 손질이 많이 가서 현대인들이 일상복으로 입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이러한 점을 보완하기 위해 겨례옷은 주로 면, 마같은 자연소재나 면마혼봉의 여러 가지 가공된 옷감을 이용하고 있다.
세 번째 색깔이다.
처음에는 일옷의 색으로 좀 어두운 색깔들이었지만 요즘은 밝고 화사하게 변화시켜 현대인의 감각에 맞추며, 자연물에서 뽑아낼 수 있는 색깔들을 사용하고 있다.
네 번째, 가격이다.
일반한복은 현재 시장가격으로 15만원에서 30만 원 선인데 '겨례옷'은 한복을 입고자 하는 많은 소시민들에게 보급하기 위해 그 가격의 4분의 1정도로 만들고 있다.
그 외에도 소매나 몸판에 절개를 넣어 배색을 하기도 하고, 전통무늬를 나염이나 자수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찍어서 현대적인 감각으로 맘껏 멋을 부린 것들도 있다.
맺음말
우리의 옷문화가 나아가야 할 방향
지금까지 우리는 민족정신이 담긴 우리의 옷문화가 외세문화에 의해 어떻게 변화되었으며, 우리의 옷문화를 되찾고자 하는 움직임은 어떠했는지 알아보았다.
올해 초 수입개방이 결정되면서 우리의 섬유시장에는 이미 구석구석 서구의 것이 침투되고 있다. 원자재나 봉재 등은 값싼 노동력을 갖고 있는 중국이나 동남아에서 돌아오고 있으며, 미국이나 유럽 등지에서는 수입완제품으로 옷만이 아닌 장신구, 침구류, 식품류까지 온갖 생활용품을 한 브랜드 이름으로 직수입해 들어오고 있다. 옷을 들여오려면 나머지 생활용품까지 한꺼번에 들여와야만 할 것을 강요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우리의 옷문화를 지켜나가려면 옷을 만들어 내는 이들도 입는 사람들도 분별력과 자긍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미 대기업들이 생산원가를 맞추기 위해 해외시장에 생산 공장을 세우기 시작하면서 국내에는 점점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 부족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만들어 내거나 수입해오는 옷들이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입는 이들 또한 색깔이 예쁘다고 해서 영자로 "CRUSHERS(으깨지는 사람들)" "DUSTY(먼지)"라고 적혀있는 옷을 입고 다닐 때 유행처럼 번져나가는 외래문화에 자신도 모르게 끌려가는 꼴 밖에 더 되겠는가?
요즘은 T-Shirt모양새에 아름다운 우리말을 새겨 넣은 것. 한복의 모양새를 접목시켜야 하는 '겨례옷'은 아직까지는 어디까지 옛것을 계승하고, 서구의 틀들은 어디까지 받아들여야 하는지, 어떤 것은 겨레 옷이고 어떤 것은 아니다라고 확연히 구분 짓지 못하는 과도기 속에 있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노력한다면 올바른 우리의 자주적인 옷문화를 생활 속에서 정착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람 중심으로 만들어진 우리 옷, 민족의 정신과 염원이 담겨진 민족의 옷문화를 되찾는 일, 이는 우리의 몸과 마음을 되찾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