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5 | [시]
후회도 없이
나희덕(2003-09-23 14:32:55)
후회도 없이
나희덕
뒤엉켜 살지 않고는 온전할 수 없었던
등나무, 그 시간들이
이제 뼈만 남아 흐르고 있다
지주목이든 제 식솔이든
휘감고 뻗어가는 것만이 진실이었다는 듯
무성했던 집념의 흔적들을 내보인다
초록의 이불 걷어내고야
등불 같던 꽃송이 깨뜨리고 나서야
냉기 가득한 뼈 속에 바람이 분다
더 이상 휘감을 것도 없는 날에는
허공을 허우적거리다가
제 몸이나 몇 바퀴 더 감아보면서
하늘이 머리카락 잡아당기면
끄덩이 잡힐 채 벽에 머리나 찧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