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5 | [문화저널]
동학농민혁명 백주년기념 사업현장
민족 민주 정신 되살리고 통일실현 앞당기는 의지 다짐
동학농민혁명 백주년 기념대회
편집부(2003-09-23 13:59:33)
4월 29일과 30일 전주시가지와 전주 시청광장을 비롯한 전주시 일원은 갑오년 농민군들의 후손들이 실어내는 뜨거운 함성으로 채워졌다.
동학농민혁명 백주년 기념대회
지난 2월 동학농민혁명 백주년 해의 문을 열어제낀 고부봉기역사맞이굿에 이어진 두 번째 대규모 행사「동학농민혁명 백주년 기념대회」는 후대에 남겨진 사람들의 작은 힘을 모아 선조들의 큰 뜻을 기념하고 우리 역사를 바로 찾아 진정한 민주화와 통일을 앞당기는 의지를 모으고 실천을 다짐하는 자리였다.
「바로 서는 역사, 다가서는 통일」을 주제로 한 이 대회는 우리 역사를 바로 찾고 통일을 앞당기고자 하는 오늘을 사는 사람들의 의지를 다지고 그 목소리를 합쳐 스스로를 확인하며 우리 스스로 민주개혁의 주체임을 선포하는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었다.
백주년 기념사업을 집약하는 기념대회를 4월 30일로 결정한 것은 「호남창의대장소」를 설치, 전봉준을 총대장으로 추대하고 격문과 4대 명의를 선포하여 혁명의 주체와 조직을 갖추고 그 대의를 만방에 선언한「백산봉기」일에 맞춘 것이다.
이번 행사는 29일의 전야제와 30일의 본대회로 구성돼 펼쳐졌다.
전북지역에서 활동하는 연극 음악 미술 등 각 분야의 문화예술패 6백여 명과 서울 지역에서 가극단‘금강’을 비롯, 노래마을 꽃다지 안치환 신형원 강산에 유열 등이 특별 출연한 이 기념대회는「백 년 전 백년 후」를 주제로 한 29일의 전야제로 막을 올렸다. 기념대회의 의미를 살리고 그 분위기를 고조시켜 대중들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이어내기 위한 문화 마당으로 꾸려진 이날 전야제는 하오 5시부터 다가 공원에서 객사-풍남문-경기전-팔달로-실내체육관까지 이르는 길놀이로 문을 열어 저녁 7시 전주실내체육관 광장에서 대중가수와 문화일꾼들이 함께 하는 기념공연「녹두장군 말달리던 호남벌판에」와 전주집체극패의 집체극「아, 백년이여」(연출 곽병창) 공연으로 절정을 이루었다. 특히 집체극「아, 백년이여」는 이 지역 연극인들의 역량을 새롭게 보여준 무대였다. 갑오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백년의 과정을 형상화 한 이 작품은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적 의의를 조명하고 그 역사의 현재적 의미를 오늘을 살 고 잇는 사람들에게 인식시켜주는 내용을 담았으며 이지역의 극단들이 함께 꾸려낸 첫 집체극 작품이라는 점에서 각별한 관심을 모았다.
30일의 본 대회는 상오 10시 다가공원에서 풍남문 경기전 관통로를 잇는 거리 상황극으로 시작됐다. 각 장소에서 역사적 사건을 재구성해 올린 상황극은 시민들의 눈길을 모으기에 충분한 문화적 체험이었다.
이어 하오 1시 30분부터는 시청광장에서 기념식을 준비하는 식전 공개행사가 막을 올렸다. 식전 식후 공개행사는 전북도립국악단과 전북대 합창단, 노래패 선언, 우석대 무용과 소고패, 그리고 서울지역의 문화패와 대중가수들이 참여하는 대규모 문화공연으로 꾸려져 참가자들의 감동과 신명을 북돋아냈다. 2시에 열린 이날 기념식은 동학농민혁명 1백주년의 의미를 새롭게 인식시키는 계기가 되기에 족했다. 백산창의문 낭독과 대정부건의문이 채택돼 발표된 이 기념식에는 정부의 인사들과 재야인사가 자리를 함께 해 기념대회의 취지와 의미를 더해 주었다.
전야제와 함께 대중들의 관심을 끌었던 문화행사는 특히 이 지역 문화예술부문의 역량을 새롭게 확인시켜준 무대가 되었다. 이 행사의 백미로 꼽혔던 우석대 무용과의 소고패 춤이나 도립국악단의 연주, 전북대합창단과 노래패 선언의 새로운 모습 등은 바로 이번 문화공연의 성과물로 꼽혀진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이번 기념대회는 일단 시민들의 참여도를 적극적으로 이어내는데는 실패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기념대회 이틀 전부터 전주시가지에 나부꼈던 대회를 알리는 5백여 개의 깃발들, 전주시가지 한중심부 시청 앞을 가로막은 대형무대 위의 다양한 공연물들이 시민들의 참여를 뜨겁게 고대했지만 30일 오후 시청 광장은 행사가 끝나는 시간까지 채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학농민혁명 백주년 기념대회는 바로 오늘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역사에 대한 인식을 고스란히 드러낸 자리였던 셈이다. 바로 이러한 안타까움은 한 가지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다.
백주년 기념사업은 우리 역사를 바로 찾는 작업의「시작」이고 그것의 힘은 우리 모두의 의지로 실려져야 한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