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더 이상 행복을 이야기 하지 않는다. 가까운 누군가에게 '당신, 행복해?'라고 묻는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를 짐작해보자. 질문을 받은 사람은 아마 대부분 왜 이 질문을 하는지에 대해서 먼저 캐물을 것이다. 우리에게 행복은 인생의 큰 계기를 통해서나 떠올릴 수 있는 것이 되어버렸다. 하루하루를 버텨가듯 보내면서 서로의 안위와 생존을 걱정하는 것에 익숙해진 우리는 무난히 입학을 하고, 간신히 돈을 벌고, 무사히 결혼과 출산을 하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행복을 잡을 수 없는 파랑새처럼 느끼게 되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우리는 왜 행복하지 않은가?
'행복한 나라의 조건'은 부유하지만 불행한 독일인 저자가 만난 OECD선정 '가장 행복한 13개국'의 300인이 들려주는 행복의 조건들을 담은 책이다. 독일이 불행하다니, 여기서부터 엄청난 괴리감이 느껴진다. 최근 언론에 계속해서 등장하던, 승마 배우기 좋다는 바로 그 나라 아닌가. 과연 행복에 대한 저자의 문제 제기에 공감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되지만, 한편 궁금해졌다. 행복한 나라를 관통하는 조건이란게 있긴 있는 걸까?
스웨덴, 핀란드 등 북유럽과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그리고 코스타리카를 비롯한 중남미의 평범한 주민들을 만나고 인터뷰하면서 저자가 정리한 행복의 조건은 다르고 또 같았다.
불안한 치안, 가난한 경제사정, 식민지배에서 독재까지 이어지는 정치 불안까지 누군가에겐 총체적 난국인 라틴아메리카의 국민들은 삶을 즐기는 태도로 스스로의 행복을 만든다. 그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저자는 행복은 스스로 결정한 적극적인 삶의 자세이자 단련된 몸의 근육이라고 말한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인생에 좋은 것은 있기 마련이다. 힘들 때도 있지만, 좋을 때도 있다. 다 잘될 거다. 이런 그들의 믿음을 든든히 뒷받침 하는 것은 끈끈한 가족관계를 비롯한 친밀하고 따뜻한 인간관계이다. 저자가 만난 라틴아메리카의 행복학 전문가는 개인적인 행복의 두 가지 조건은 인간관계와 재량껏 쓸 수 있는 여가라고 말한다. 소득 수준과 무관한, 따뜻한 인간관계가 있고 스스로에게 만족감을 주는 활동을 할 수 있다면, 굳이 더 많은 것을 소비하고 소유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물질이 중요한 건 다른 것이 결핍되었기 때문이다. 더 가난한 나라의 국민이 더 행복하다면 물질적 욕구를 대체할 수 있는 인간관계가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적었다.
스위스와 스웨덴을 비롯한 북유럽 국가의 행복은 모든 국민이 행복해지도록 돌보겠다는 국가의 의지와 완전한 자유와 존중을 믿는 국민의 신뢰에 있었다. '아무도 믿지 못하는 것보다는 가끔 속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서로에게 거의 무조건적인 신뢰를 보낸다. 타인을 신뢰하는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당연히 더 행복하다. 상대방을 믿으면 상대도 나를 믿을 확률이 높아진다. 직원들이 게을러서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하면 채찍이 필요하겠지만, 직원들이 일을 즐거워하고 그냥 두어도 잘한다고 생각하면 채찍은 필요없다. 믿는다는 것은 상대를 존중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당연히 채찍을 맞을 때보다 존중받을 때 더 많은 일을 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북유럽 국가들의 높은 노동생산성의 비결이자, 공공교육에서 더 많은 자유를 아이들에게 주는 이유였다. 회사는 직원을, 부모는 아이의 능력을 전적으로 신뢰한다. 그리고 이런 신뢰에는 모두가 정당한 대우를 받아야한다는 믿음이 깔려있다. '당신이 특별한 존재라거나 우리보다 더 우수하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얀테 법칙은 그들의 삶 곳곳에 녹아 있으며, 때문에 자신의 성공이나 직함을 자랑하는 일도 없다. 모든 사람은 동등한 권리를 누리고 동등한 대우를 받으며 각자가 원하는 대로 살 수 있다. 어떤 삶이든 무엇이든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국민들에게 큰 행복감을 준다. 자유로운 선택을 위한 토론과 제약을 없애기 위한 제안은 늘 환영받는다. 그것이 사회를 발전시키고 공동체에 기여하는 것이라는 공감대가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들 나라의 행복은 모두는 모두를 위해 더 좋은 것을 선택할 것이라는 신뢰를 기반으로 했다.
공통적으로 모든 행복한 국민들은 여유시간을 중요하게 여겼다. 보다 친밀하고 따뜻한 인간관계를 위해서는 상대방의 마음을 읽을 여유가 필요하다. 시간을 최대로 사용하지 말고, 조금의 여유를 두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라고 전한다. 서로에게 좀 더 집중할 수 있도록 조금 틈을 두라고 말한다. 사회에서도 시간은 반드시 필요하다. 사회 안의 신뢰와 연대는 시간과 더불어 자란다. 목표를 고민하고 책임을 져야하는 자유에는 스스로의 결정을 숙고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만인의 동일한 가치에 기초를 둔 평등사회 역시 오랜 토론과 조율과정을 통해서 얻어졌 다고 이 책에서는 말한다.
또 하나, 개인의 행복은 공동체 전체가 행복을 추구할 때 비로소 지속가능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앞서 말한 인간관계가 개인의 행복에 있어 중요한 것은 행복과 즐거움은 전염되기 때문이다. 서로가 뿜어낸 행복 에너지가 공동체 안에 퍼지면서 내게도 행복을 준다.서로의 행복을 위해서 우리는 자신은 물론 이웃에게도 최대한 행복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행복을 남에게 선사하는 것은 내가 행복해질 수 있는 중요한 비결이다.
책장을 덮으며 느낀 것이지만, 행복한 나라의 현재가 반드시 국민의 민족성으로 연관되어진 것은 아니다. 가장 앞서가는 시민의식과 완벽한 복지제도를 자랑하는 스웨덴은 사실 100여년 전만 해도 유럽에서 가장 못살고, 학력 수준도 가장 낮은 나라였다. 그런 스웨덴을 가장 행복한 나라로 바꿔 놓은 변화의 시작은 정치였다. 평등과 복지, 민주를 기치로 하는 진보정당이었던 사회민주당이 40여년간 안정적으로 집권하면서 만든 정치적 변화가 복지국가 스웨덴의 기틀을 만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의 수준은 그 나라의 시민 수준이 결정한다.'는 것은 반드시 옳은 말은 아니다. 좋은 정치는 좋은 시민을 만들 수 있고, 좋은 나라를 만들어 후세에 물려줄 수 있다. 이제 우리가 왜 행복하지 않았는지,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어렴풋이 알 수 있을 것 같다. 결국 문제는 정치였다. 그리고 만약 그렇다면 행복한 공동체 대한민국은 결코 불가능하지 않다.